오늘이 여행입니다 - 나를 일으켜 세워준 예술가들의 숨결과 하나 된 여정
유지안 지음 / 라온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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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나그네 인생이라 하면 왠지 낭만 있게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하는 처지에 있는 그런 삶이었으니. 유목민들이 계절을 따라 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것도 여행이라 하지 않는다. 대항해 시대에 미지의 땅을 찾아 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범선이라는 교통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류는 산업 혁명 이후 증기기관차를 발명하고, 이후 자동차와 비행기 등 이동수단을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물류 이동 뿐만 아니라 여객 운송이 활성화되면서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견문을 넓히는 여행은 귀족들의 전유물에서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일이 되었다. 비록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넘게 국외 여행이 제한되기도 했지만, 최근에 다시 여행이 재개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직접 나가지 못할 때는 영상 매체 또는 사진이 포함된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것이 훌륭한 대인이 될 수 있다. 먼저 가서 보고 느낀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고, 독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새롭게 알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미 진부한 말이지만 여행 또한 아는 만큼 보이고,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읽은 유지안의 여행 에세이는 담백하면서도 찰진 느낌이 있다. 여느 패키지 여행이 아닌, 그러면서도 자유로운 여행도 아닌 ‘목적’에 충실한 묵직한 여행 이야기들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 마치 정밀 유도 미사일 같이 평생에 추앙(!)하던 작가들의 흔적을 찾아 세계 곳곳을 수 년에 걸쳐 답사한 기록이기에 그러하다. 단지 여행이 좋고, 걷는 것을 좋아해서 떠난 여행이 아님을 프롤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생 마음에 그리던 활자 속의 작가들-물론 쇼팽 등의 음악가, 고흐 등의 화가도 있다-의 숨결이 남아 있는 그곳을 찾아 저자는 결코 쉽지 않은 노정을 시작한다. 저자의 여정을 같이 따라 읽어가다 보면 익히 아는 작가, 음악가, 화가도 있지만, 솔직히 잘 모르는 이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이번 기회에 저항 시인 나짐 히크메트라는 인물을 새로 알게 되었으니 족하지 않은가. 익숙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사고의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책 한 권 읽는데 들이는 공력과 시간 값 이상은 충분히 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함에 안주하려 한다. 은퇴 후 인생 제2막을 살아가는 저자의 뚜벅이 여행길을 행간으로 쫓아가다 보면 타성이 젖어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비쳐진다. 꼭 저자처럼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할때 새로운 생각을 하려 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느 다짐을 해 본다.

저자는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등이 산책했던 길을 따라 걷고, 작가의 창작 공간을 둘러 본다. 호젓한 길을 걸으며 생각을 가다듬은 다음 정해진 시각에 ‘묵직한’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대문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젼 없으면 불안해지는 작금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창작을 위해 그보다 많은 시간을 산책하며 생각을 가다듬고, 그 시대와 인간 군상을 작품 속에 담아낸 그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저자 유지안은 장장 900일에 이르는 여행을 통해 별처럼 빛나는 인물들의 삶의 자취를 직접 찾아가 오감으로 느낀 것을 사진과 활자로 정리하여 2차원의 지면으로 독자에게 소개해 준다. 저자가 여행을 통해 인생의 고민을 조금씩 풀어나간 것처럼 책을 읽어 나가며 위로를 받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받았다. 각 장별로 테마를 정하고 거기에 6~7곳의 여행지와 작가를 소개한다. 자유롭게 떠나 위로하고 치유를 받고, 긍정의 힘을 갖고 용기로 도전하고 극복하며 자신의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여행이 이 책의 주제가 된다. 아, 그래서 인생을 알려면 여행을 떠나라고 하는 모양이다. 1킬로그램이 안되는 책이 읽다보면 엄청 무거움을 느끼게 된다. 저자의 사유와 사람과 인생을 바라보면 통찰의 무게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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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는 작가가 사용한 펜과 잉크, 신문, 놋쇠 촛대 등이 놓여 있다. 정원 숲에서 깊은 사색을 하며 생각을 정리한 작가는 이 묵직한 책상 앞에서 규칙적인 집필 활동을 했으리라. 대문호의 성실함에 숙연해진다.(103p)

작가의 생가와 주변 저택들을 걷는 시간은 마치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읽는 기분이었다. 작가가 세례를 받고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자니 셰익스피어 시대를 걸었던 하루가 감동으로 다가온다.(2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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