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눈으로 본 창세기
김준 지음 / 두란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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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아직 예수를 믿기 전의 일이다. 국민윤리 시간에 그리스 철학을 배웠다. 친구들 간에 그 당시를 풍미했던 궤변론자 소피스트를 흉내내기가 유행했다. 그 중에 하나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이었다. 당시 나는 당연히 달걀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신라의 박혁거세와 가야의 김수로 왕, 고구려를 세운 주몽도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알을 누가 낳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당시 나는 논쟁에서 밀리지는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손에 쥔 신간 '과학자의 눈으로 본 창세기'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과학과 신앙이 조화롭게 균형 잡힌 책이라고 해서 읽게 되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에 대해 우리는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닭이 먼저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 연대기가 말하는 실제 나이(real age)와 과학이 말하는 겉보기 나이(apparent age)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자.
새들은 완전히 자란 생명체로 창조되었고, 복을 받았으며,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담과 하와도 완전한 성인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 (91쪽)

저자는 생명공학자로 현재는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김준 박사이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천지창조는 온 우주를 창조한 제1일부터 하늘의 별과 달, 지구의 하늘과 땅, 바다를 지으시고, 동물과 식물을 가득 채우신 다음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손수 지으신 제6일까지의 역동적인 기록을 신앙적 관점 뿐만 아니라 생명과학자의 이성적인 관점으로도 접근을 했다.

누가 일주일을 7일로 정했을까? 지구의 공전에 따른 태양년은 정확히 따지면 365일이 아니라 365일 5시간 48분 46초가 된다. 4년마다 생기는 여분의 하루를 윤달로써 보완한다. 사실 7일이라는 구분은 태양년에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개념이 어디서부터 나왔을까? 답은 간단하다. 바로 하나님으로부터다. 즉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따른 것이다.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7일 구분이 가장 만족할 만하다는 것을 모든 세기와 모든 나라에서 경험적으로 입증해 왔다. 일주일을 7일이 아닌 10일로 바꾸고자 한 시도가 있었다. 1793년 프랑스혁명 주도자들은 7일 제도를 폐지하고 10일제를 도입했다가 혁명의 실패와 함께 7일제로 되돌려야만 했다. 러시아와 스리랑카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7일제로 되돌아왔다.
(144쪽)

제2장에서는 인간의 창조와 타락을 심도 있게 다룬다. 인간의 창조와 타락의 결과 실락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읽다보면 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일 수 밖에 없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단절되고 훼손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없음을 성경은 단호히 말한다. 

마지막 제3장은 노아의 홍수와 새 언약이다. 인간의 죄악이 온 땅에 가득차자 하나님은 대홍수를 내려 인간을 심판한다. 단 노아 가족만을 그루터기처럼 남겨 놓고 새 언약을 주신다. 

만약 노아의 홍수가 세계적인 사건이 아니었다면 홍수 이후의 새 언약은 전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단지 한 지역에 국한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 몇 명, 동물 몇 마리에 제한된 것이 된다. 이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무지개가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나는 것과 같이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적인 사건이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무지개 약속도 전 세계적인 것이다.(261쪽)

아직도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헷갈리는가? 그럼 이 책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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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루케이도의 예수의 유산 - 광야를 끝내는 믿음의 결단
맥스 루케이도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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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호수아서가 전해 주는 가장 크고도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실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속의 땅에서 살기를 바라실 뿐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신다. (275쪽)

맥스 루케이도의 신간 예수의 유산 275쪽에서는 구약 성경 여호수아서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하나님과 동행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믿음과 순종, 반대로 불신과 불순종의 역사와 결과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실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삶이 왜 이렇게 답답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찾아낼 수 있다. 저자 맥스 루케이도 목사는 약속의 땅을 예비하신 하나님께서 마침내 성자 예수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영단번의 속죄제와 화목제가 되셨음을 설파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각 장에 주제에 맞는 다양한 경험과 실제 사례들이 실려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고 역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또한 각 장의 마지막 챕터에는 자기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점검해 보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순종하기를 결단하는 기도문을 제시하고 있다. 때문에 독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의 삶에 적용하고 지혜를 구함으로써 보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한단계 성장할 수 있다. 계속 애굽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광야에서 헤매고 있을 것인가? 

 

가나안은 지구 상에서 가장 알짜배기 땅 중에 하나였다.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요충지이며 지중해를 면했다. 가는 곳마다 비옥한 들판이요 풍광이 수려한 골짜기였다. 무엇보다 그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선물이었다. 거의 7세기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12:7)   (중략)
나중에 여기서 구속자가 태어나 살게 된다. 그분은 자신의 피로 이 땅을 흠뻑 적시고 부활로 이 땅을 뒤흔드셨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여호수아서는 땅 없는 국가가 땅을 차지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호수아서의 요점은 구속의 역사를 위한 발판을 보존했다는 것이다. 사탄의 대응 전략은 간단했다. 그것은 약속의 땅을 오염시켜 약속된 아들의 탄생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파멸시켜 하나님의 역사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전쟁은 사실상 영적인 전쟁이었다.
(98~99쪽)


여호수아서의 클라막스는 아무래도 여리고성 공략이 아닌가 한다. 요단 강을 건너 첫번째 장벽인 여리고성. 하나님은 강성한 그곳을 당신의 방법으로 무너뜨렸다. 이스라엘 군대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을 의뢰할 때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일도 가능하다는 교훈을 주신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금방 이것을 잊고 두번째 공격 목표인 아이성을 공격할 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실책을 저지른다. 그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오늘날에도 성도의 삶 가운데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나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뭔가를 해내려 할 때,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을 때 어떠한지 이 책을 읽으며 돌이켜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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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사는 부부 제자도
프랜시스 챈.리사 챈 지음, 이나경 옮김 / 두란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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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을 하고, 결혼을 가족과 친지, 이웃들 앞에서 하고 나면 부부(夫婦)가 된다. 성경(1:24)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하고 있다. 결혼 생활은 남녀 간의 사랑하는 감정으로만 결코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 헌신이 뒷받침되어야 유지 가능하다. 또한 결혼 제도는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씀하신 교훈들을 충실히 이해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프랜시스 챈 목사와 아내 리사 챈의 공저인 ‘(하나님 앞에서 사는) 부부 제자도는 오늘날을 사는 크리스천 부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결단하게 한다. 파트 1서로를 바라보는 부부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부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파트 2에서는 한 팀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부부 제자도의 구체적 실천을 촉구한다.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결혼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결혼을 통해 부부가 된 성도는 자신들의 인생을 허락하시고 현재의 환경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맡겨 준 사명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의 뜻이 가장 잘 드러나는 한 구절을 소개한다.

부모의 소망은 하나님 뿐이고, 자년의 소망도 하나님 뿐이어야 한다. 성령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않으면 부모 노릇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종으로 전락하고 만다. 성령이 없다면, 아이들은 결국 주님의 뜻을 거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은 모든 걸 변화시킨다.<230>

 

오늘날 한국 사회는 무한 경쟁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다. 자녀들을 학원으로, 독서실로 인도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세상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잡는 것을 우선시 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을 놓치면 안된다.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이다. 진학과 취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부부는 둘 또는 자녀들과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부부와 가정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부부 제자도는 그런 깨우침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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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 - 성령에 대한 균형 잡힌 안내서
조용목.최완기 지음 / 두란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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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하면 왠지 신비한 능력이나 초자연적인 기적이 먼저 생각난다. 그래서 지난 날 성령에 대한 끝()이 다른() 이단들이 많이 등장하여 성도들을 미혹하게 했다.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0~11)

 

이번에 두란노에서 새로 출간한 책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는 성령에 대한 균형 잡힌 안내서를 표방하고 있다. 조용목 목사와 최완기 목사가 공동 저자이다. 한국교회는 그간 오순절 계열과 장로교, 감리교 등이 성령론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름으로 인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성령이 하나님이라는 가장 간명한 사실을 직시한다면 이런 소모적인 논쟁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정상운 박사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독교 교리는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 곧 신앙의 보고를 서술하는 진리이지만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각자의 기존 교리적 편견을 버리고 성경적 증언에 귀 기울이는 정()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다보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영적인 삶이 달라지는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의 차이는? 방언은 성령 세례를 받은 증거인가? 병고침의 은사, 곧 신유는 오늘날도 유효한가? 성령을 받은 사람이 맺는 삶의 열매는 무엇인가? 성령께서 일하실 때 성도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이런 것들이 궁금한가? 그러면 이 책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를 읽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지름길와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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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컬처 - 복음과 문화가 충돌할 때
데이비드 플랫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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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이 복잡하고 지난한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자녀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경우가 많다.

“복음을 거스를 것인가, 세상을 거스를 것인가”

래디털의 저자 데이비드 플랫 목사의 신작 '가운터 컬처'는 이런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내가 선 땅의 고통에 복음으로 답하라!

 

세상 사람들이 문화의 발전과 진보를 핑계 삼아서 하나님이 정한 선악의 기준을 인간의 편리에 맞게 바꾸려는 시도를 온전한 복음의 가르침으로 맞서야 한다고 데이비드 플랫 목사는 '카운터 컬처'에서 주장한다.

 

복음은 기독교 신앙의 생명선인 동시에 대항문화의 원천이기도 하다. 진실한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복음은 저마다 속한 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회적인 이슈들에 맞서도록 크리스천들을 몰아간다. 뿐만 아니라, 안팎을 둘러싼 문화와 실제로 충돌하는 상황을 빚어내기도 한다.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한 성경적인 입장들이 갈수록 멸시와 배척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령, 동성에게는 호감을 느낀다 해도 결혼할 뜻을 품거나 사랑을 표현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조만간 크리스천들은 이와 관련한 논의가 벌어질 때마다 충돌을 빚고 싶지는 않지만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궁색한 처지에 몰릴 공산이 크다. (19쪽)
 

‘카운터 컬처’는 모두 3개 파트에서 10개의 사회적, 문화적 이슈를 다룬다. 제1장은 복음과 문화에 대한 개관을 다루고 제2장에서는 복음과 가난, 복음과 낙태, 고아와 과부, 성 착취 등의 문제를 다룬다.

 

살인이나 자살과 마찬가지로 임신중절은 인간이 삶과 죽음을 마음대로 주무를 힘을 가진 존재라고 내세우는 짓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창조주 하나님 단 한 분께만 살고 죽는 시점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낙태는 주님의 권위를 향한 정면 도전이나 다름없다.
임신중절은 창조주의 권위를 모독하는 처사일 뿐만 아니라 그 분의 창조 사역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모태'에서 아기의 '장기'를 어떻게 짜 맞추시는지 묘사하는 시편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엄마 뱃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살피던 기자는 갑자기 격한 찬양을 쏟아낸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창조주께서 인간을 빚으시는 모습을 떠올리니 터져 나오는 찬송을 억누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98쪽)

‘카운터 컬처’ 제3장에서 데이비드 플랫 목사는 복음과 결혼, 복음과 성윤리, 복음과 인종, 복음과 신앙의 자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족속에 대한 현안을 세상 문화의 관점과 성경이 명백히 밝히는 복음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음행을 피하라'(고전 6:18). 짤막한 이 한 구절은 성경에 기록된 성적인 금지 조항들을 모두 아울러 압축한 명령이다. 결혼하지 않은 싱글 남녀들이 섹스에 빠져들고, 결혼한 부부들이 남편, 또는 아내가 아닌 상대와 성적인 관계를 맺으며,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성매매가 일상일 만큼 성이 범람하는 도시,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 2천 년이 지난 오늘의 세계도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당시 문화 속에 자리 잡은 교회를 향해, 그리고 현대 문화 가운데 서 있는 교회를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음행을 피하라. 결혼해 남편과 아내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라면 성적인 생각과 시선, 욕구와 접촉, 말과 행동을 모두 삼가라. 핑계대지 말라. 합리화하지 말라. 거기서 도망치라. 힘닿는 대로 서둘러 피하라."
하나님은 거룩한 영광을 위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225~226쪽)

‘카운터 컬처’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다음과 같다. 세상 문화와 복음이 충돌할 때는 성도인 내가 문제 의식을 가질 때라는 점이다. 왜냐면 이미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 문화가 주는 안락함과 편리, 쾌락에 안주하고 있다면 복음의 가르침 사이에서 갈등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 속에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마땅히 져야 할 자기 십자가를 놓지 않아야 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좁은 길이지만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그 순간에 같이 걸어주심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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