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지식 치매 백과사전 -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치매 가족 가이드북!’
홍경환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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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100세 인생 시대라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각종 성인병은 물론이고 암, 심혈관 관련 질환이 무병장수를 원하는 인간의 소망을 위협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조용한 복병이 있으니 바로 치매다. 예전에는 나이 먹은 사람만 걸리는 줄 알았는데 치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아보니 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치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완치-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다는 정도의 상식을 갖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아직 내 일 또는 가족의 일이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을 것이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현대인의 삶은 신경계와 뇌-대뇌와 소뇌-에 매일, 매순간 많은 부하를 주고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물론 극심한 외로움이 현대인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능가하는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기에 더욱 관심을 갖고 대응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치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 있다면 주목할 만한 신간이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는 부친을 9년째 간병하고 있는 저자 홍경환이 그간의 간병 경험과 치매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여 낸 ‘절대지식 치매 백과사전’이다.

저자는 치매에 대해 ‘단순한 돌봄’에서 ‘같이 살아가기’를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 머리말에서 이 백과사전을 부분적으로 읽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줄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치매 환자를 모시고 있는 가족들에게도 용기를 주는 말을 한다. 치매를 극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저자의 당부대로 처음부터 찬찬히 책을 읽다 보면 실제 저자가 부친 간병을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알수 있다.

독자는 책장을 넘기면서 치매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알아가게 된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이전까지 자연스러웠던 대부분의 것들이 리셋되는 경험은 순간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 환자와 보호자를 압박해 온다. 그저 병상에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감’ 때문에 이곳 저곳을 헤매 다니게 되고, 보호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듯 골목 골목을 찾아 헤매야 한다. 저자는 치매라는 질병을 ‘뇌의 작동 원리’로 설명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기 진단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진단을 받고 나서는 제대로 된 치료를 병행해야 악화되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매 가족이 겪는 고통은 상상 그 이상이라고 한다. 솔직히 안 겪어봐서 체감이 되지 않는다. 환자가 생기면 집안의 가구 배치부터 출입문, 창문 등 여러 곳을 손봐야 한다. 또 환자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을 곳곳에 두어 불안감을 최소화해야 하는 등 보호자들이 신경쓰고 챙겨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이 백과 사전이 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지원을 받는 방법과 제출해야 할 서류들까지 소개한다. 모두 경험자의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라 눈높이가 다르다. 저자는 치매 환자의 건강 관리를 위한 약과 음식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사실 아직은 나의 일이 아니라 주마간산 격으로 1독을 하면서 느낀 점.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평소에 건강을 위한 습관-잘 자고, 잘 먹고, 잘 쉬는-이 치매 등 질병 예방의 비결 아닌 비결임을 재확인했다는 것!

*** ***
치매에 걸렸더니 스트레스에 취약한 뇌가 되어 버렸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가 되니 다시 치매를 악화시키는 무한 질주 시스템이 만들어져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치매 환자들에게는 수면제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수면제는 코티솔을 분비하고 억제하는 시스템을 리셋시키는 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치매 환자의 수면 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스트레스 관리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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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2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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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가급적 손과 눈에서 멀리 하는 것이 좋다. 한번 빠져 들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또한 그러하다. 며칠 전 행성 1권을 읽고나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방송과 너튜브를 끊고 2권을 바로 읽기 시작했다. 베르베르 작가의 매력은 뻔한 듯한 스토리 전개를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적절하게 인용해 가며 풀어나간다. 예전엔 학생이 있는 집엔 좀 무리를 해서라도 세계대백과사전 전집을 할부로라도 들여놓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이야 포털 검색을 하면 인터넷 백과사전이 경쟁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상이다. 정보는 넘치지만 정말 이 순간에, 상황에 필요한 것인지 분별해 내는 통찰이 더 필요한 세상임을 절감한다.

‘제3의 눈’이란 도구를 통해 인간과 동물 간, 동물과 동물 간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치를 미리 만들어 놓고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의 바탕에는 방대한 인류 지식의 창고-‘절상백’-가 자리하고 있음을 책장을 넘기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물론 절상백에 실린 자료들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가 싶기는 하다. 그래도 심오하고 심각한 책이 아닌 술술 잘 읽히는 소설책임을 감안하면 베르베르의 작품들은 재미와 흥미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거기에 더해 작가는 인간과 인류 문명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고양이-암고양이 바스테트-와 쥐-티무르-의 입을 통해 던진다.번영을 구가하던 인류가 멸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시험쥐 출신의 티무르는 말한다.

자업자득!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는 인류에게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관성처럼 인간의 물욕과 탐욕의 질주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동물들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애완동물, 축산동물, 야생동물로 구분되어 자연스럽지 않은 삶을 살아내야 한다.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인종과 종교, 국경에 따라 태어날 때 거의 대부분의 인생이 규정되고,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한다. 종교조차도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경전에 내세우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정치와 경제 영역 또한 다르지 않다. 암고양이 바스테트의 눈에 비친 인간 그룹의 모습이 그러하다. 작가는 지혜롭게도 인간 세상에 대한 통찰과 비판을 동물-고양이 바스테트와 실험쥐 출신 티무르-의 입을 통해 펼쳐간다.

에피소드 하나. 군인 장성은 티무르가 이끄는 쥐군단을 섬멸하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는 안을 주장하는데, 대부분이 찬성을 한다. 뒷일-핵폭발로 인한 방사능 문제 등-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꼭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과 오버랩된다. 다음세대에게 자연 생태계가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물려 줘야 하는데, 인류는 현세의 편익을 위해 어떤 짓을 벌이고 있는가? 하얀 쥐 티무르는 90쪽에서 인간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밝힌다. 책을 읽으며 그저 재미있는 소설 한 편 읽었다고 생각하고 그치면… 고양이와 쥐들보다 못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꼴이 될 것이다. 285쪽에 적힌 대로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할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
인간들은 쓸모도 없는 물건을 끝없이 만들어 소비하고 낭비했어. 그 식탐은 또 누가 따라갈 수 있겠어? 인간들이 수시로 타고 다니는 자동차와 배와 비행기는 뿌연 오염 물질을 만들어 내고 기온을 상승시켰어.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고 숲이 불타고 야생종들이 사라졌지. 인간들이 <가축화된 종>이라고 부르는 동물들은 그들의 노예나 다름없어. 소, 돼지, 닭, 양 같은 동물이 공산품처럼 대량 소비되기 시작했지. 쥐는 인간들이 가장 좋아하는 실험 대상이 됐어. 어린애들이 학교에서 해부 수업을 한답시고 마취도 제대로 안 된 내 동족들을 해부용 칼로 난도질했지. <90p>

인간들 유전자 깊숙한 곳에는 죽음의 충동이 새겨져 있어. 외부의 적을 향해 파괴적 본능을 표출하지 않으면 끝내는 자기 자시늘 향해 총구를 돌리는 게 인간들이지. <209p>

인간들은 스스로 무지함을 자각하고 보완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유일한 동물이야. 그게 바로 인간의 강점이지. 반면 다른 동물들은 그렇지 않아. 생존에 필요한 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 무지에 대한 인간들의 인식은 다른 동물 종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난 생각해. 우리도 인간들처럼 배움을 통해 무지를 보완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 <2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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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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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 3부작 중 3부인 행성 1, 2권이 출간되었다. 강렬한 표지 디자인에 순건 압도되는 느낌이 든다. 뉴욕의 상징물 자유의 여신상에 고양이 얼굴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크게 뜬 눈과 꽉 다문 입술을 보면 인류의 운명, 아니 지구 생태계의 운명을 고양이가 쥐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작가 베르베르가 롱런을 할 수 있는 힘은 발상의 전환이 아닌가 한다. 작년에 읽은 제2부 문명 1,2권에서도 이런 모습이 잘 나타난다.

프랑스 파리에서 인간 집사와 함께 평온한 삶을 살던 암컷 고양이 바스테트. 어느날 광신주의자들의 테러와 거리를 뒤덮은 쥐들이 옮기는 페스트 등 감염병으로 인간 문명이 서서히 무너져 간다. 쥐들이 연합하여 인간 세계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고양이와 개, 돼지 등 인간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동물들이 쥐 군대와 대적하지만 중과부적이다. 결국 주인공 고양이 바스테트와 동료 피타고라스, 인간 집사 나탈리 등이 광신주의자들과 쥐의 공격을 피해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도착한다.

이 과정에서 바스테트는 USB 단자로 연결-제3의 눈을 활용-하여 인간이 사용하는 인터넷망에 접속하여 인류 문명의 모든 것을 흡수(?)하게 된다. 한 마디로 고양이가 인간 지능 그 이상의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쥐 군단을 지휘하는 강력한 지도자 티무르 또한 제3의 눈을 갖게 되어 인간과 연대한 동물 그룹을 몰아부친다. 뉴욕에 도착한 바스테트와 인간 집사 무리들은 이제 살았다는 안도의 순간도 잠시, 티무르가 이끄는 쥐들이 대서양을 건너서 추격해 오는 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서부터 3부 행성이 시작된다. 뉴욕의 거대한 마천루마다 인간들이 고공 공중(?) 생활을 하고 있다. 바스테트 일행은 뉴욕에 모여 있는 생존자 무리-인간과 동물 연합-와 만나고 공동 대응을 한다. 쥐들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회색 쥐를 이끄는 대장과 대서양을 건너온 흰쥐 티무르 무리도 서로 연합작전을 모색한다. 사랑을 나누는 것 뿐만 아니라 전투 전략과 전술, 총회에서 정치적인 결단과 설득, 회유와 협상을 주도적으로 하는 고양이 바스테트의 모습을 보면 여느 인간 지도자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중간 중간마다 이야기의 맥락에 맞춰 끼워 넣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내용이 실마리를 준다. 세상에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인 것이 양립할 수 있는가? 아이러니한 상황이 역사 속에서는 의외로 반복된다. 고양이와 쥐의 대립 사이에 끼여 있는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 세상의 이이러니를 작가는 희화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

문득 인간이란 존재의 문제가 뭔지 알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행복보다 불행을 위해 쓴다. 인간들은 신이라는 것을 상상해 만들어 내고 그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서슴없이 죽인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대상이 바람을 피운다고 상상하고 그 사람과 헤어진다. (123-124p)

“인간들 역사를 공부해 보니까 시대마다 적어도 한 가지 위험은 반드시 존재했더군요. 또 그럴 때마다 당신들 조상 중에서 누군가가 등장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더군요.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 세상에 인간이나 고양이가 존재할 수가 없었겠죠” (2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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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
앨런 라이트먼 지음, 송근아 옮김 / 아이콤마(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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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우주에 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전남 고흥의 나로우주센터에서 들려온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누리호 발사 전 점검에서 문제를 발견하여 당일 발사는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최신 소식을 보니 21일에 발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우주에 관한 인간의 호기심과 탐구는 수천년전부터 시작되었다. 낮과 밤, 계절의 변화, 조수와 간만의 차이, 계절마다 찾아오는 태풍과 홍수, 해일 등 자연 현상의 원인을 찾는 노력에서 천문학과 점성술이 발전했다. 근대 과학의 태동기에 망원경의 개발과 물리학과 수학의 발전을 통해 인류는 단순한 추정에서 변증이 가능한 가설을 정립해 나갔다. 그 결과 지난 수백년 동안 지구 역사상 유래없는 번영과 문명의 발전을 일궈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로병사 등 인체의 신비를 탐구하는 것과 미지의 우주 공간을 탐사하는 여정에는 아직도 지나온 길보다 가야할 길이 훨씬 많이 남았다.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을 궁금해 하고, 이것을 풀어나가는 일에 시대를 초월하는 천재적 인물들이 평생을 바쳐서 어둠 속에 등대불과 같은 성과들을 쌓아두어서 후세들이 그것을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만난 작은(?) 책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은 사실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장 큰 것을 다루는 어마어마하게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한 책이다. 독자로 하여금 하염없이 작은 세계로, 반대로 한 없이 큰 세계로 이끌어 가는 저자 앨런 라이트맨의 필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저자는 천체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소설을 쓰는 인문학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의 신간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은 저자의 사색을 담은 과학 에세이라 할 수 있다. 그럼 무엇에 대한 사색인가? 이 책은 모두 3부로 나눠서 우주와 세상, 사람의 마음, 무한의 개념을 지난 수천년 간의 과학적 성과와 함께 저자의 경험과 사색의 알갱이를 소화하기 좋게 담아 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고, 공을 들여서 씹고 삼키고 소화를 시키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작은 책이지만 가볍게 생각해서는 낭패를 볼 수 있는 이유이다. 물리와 천문학, 수학과 생물학, 의학의 발전을 이끌어온 과학적 성과를 글로 읽어내는 기본기를 독자가 갖추고 있어야 함을 체감한다. 특정 약만 먹으면 저절로 다이어트가 된다는 과장 광고처럼 단기간에 지성과 논리 사고력을 뚝딱 장착할 지름길은 없다. 단지 좋은 스승과 책의 도움을 받아서 한걸음씩 진보해 나가는 것일 뿐.

이 책을 읽으며 얻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저자가 다른 동료 과학자의 집을 방문하는 광경을 묘사하는 부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알려 주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과학하는 사람들의 특성인가 싶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기초과학과 수학 이론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미합중국의 시스템이 눈에 띈다. 당장의 성과가 아닌 우직하게 연구하여 기술과 학문의 진보라는 계단을 하나 더 쌓는 순수한 치열함이 이 작은 책에서 배어나온다.

*** ***
때는 일요일 오후 당시 나는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던 집의 내 방에 혼자 서서 창밖의 텅 빈 거리를 보며, 아주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기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몸 밖에서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짧았던 순간, 나는 광대한 시간의 틈새에서 찰나의 깜박임만으로 내 인생의 전부를, 이 행성의 전 생애를, 내가 존재하기 이전의 무한한 시간과 그 이후의 무한한 시간을 모두 본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 짧았던 감각 속에는 무한한 우주도 들어 있었다, 몸도 마음도 없이, 나는 태양계 너머, 심지어 은하보다 훨씬 너머에 있는 거대한 우주 공간 위에 둥둥 떠 있었고, 그 우주는 계속해서 쭉쭉 더 뻗어 나가고 있었다. 나는 자신이 아주 하찮고 조그마한 점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저 나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그들이 남긴 작은 흔적들조차 전혀 개의치 않는 광대한 우주의 작은 점에 불과했다. (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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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의 쓸모 - 보통 사람들도 이해하는 새로운 미래의 언어, 증보개정판 쓸모 시리즈 2
한화택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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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아니 산수 과목을 일찌감치 포기했던 일명 수포자(!)에 눈에 들어온 강렬한 붉은 표지의 책. 미적분의 쓸모는 ‘보통 사람들도 이해하는 새로운 미래의 언어’라고 미분과 적분을 다룬다. 미분과 적분 수업 시간에 수학 교과서에 이런 저런 그림을 그리며 종이 울리기를 기다린 사람이 이 책을 서점 진열대에서 집어들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기꺼이 미적분의 쓸모를 선택해서 시간과 에너지, 책값을 들여서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학창 시절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한 이유 중 이거 안 배워도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풀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참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수학을 수학하는 과정을 포기하면 안되는 안되는 이유를 저자 한화택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수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생각해 보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접어들고 나서 직면하는 문제 중 하나가 논리적 사고가 어렵다는 점이다. 여론조사나 경제 지표의 변화 이런 것들을 언론이나 인플루언서의 시각이나 해석을 통해서가 아닌 스스로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의 부재를 실감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삶에 만족한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어디 인생이 그러한가?

저자는 가속도, 기울기, 최적화, 기하학, 스토크스 유동 방정식 등을 미분과 적분 공식으로 먼저 설명을 한다. 솔직히 수포자라면 공식과 그래프는 그냥 넘어가도 좋다. 다만 이 책을 끝까지 읽어갈 수 있는 매력은 다른 곳에 있다. 우리 일상 생활의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 미분과 적분의 수고로움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을 오히려 찾기가 쉽지 않다. 다만 그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 흔히 스포츠나 기술 경쟁을 이야기할 때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말한다. 인간의 고도 문명의 근간에는 자연 법칙에 대한 탐구와 관찰, 이것을 이론으로 정립하고 객관화하는 과정을 거쳐 지식의 전승을 통해 진보를 거듭해 왔음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 그래서 수학적 사고가 필요하구나” 하고 공감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어렵게 느껴지는 수학의 세계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자동차 과속단속 카메라의 작동 원리, 이세돌9단을 이긴 알파고를 이긴 인공지능의 원리, 코로나19 확진자 발생룰을 어떻게 계산하는지? 재난지원금을 어느 계층에 지급해야 사회 경제적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복잡한 기술과 정교한 건축 구조물의 바탕에도 예외없이 미분과 적분을 비롯한 물리와 수학의 치열한 사고의 결과물들이 스며들어 있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가다 보면 수학이 왜 필요한지 공감을 하게 된다. 다만 나 대신 그 수고로움을 대신해 준 수많은 수학자와 물리학자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 ***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그렇다. 자연은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신체 중 어떠한 부분도 어색하게 직선으로 이루어진 부분이 없으며, 조류의 알 또한 타원을 닮은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의 선은 어디서나 연속적이며 부드럽게 휘어진다. 수학적으로 볼 때 자연은 2차, 3차 이상의 모든 고차도함수가 연속적인 곡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84~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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