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기에 치앙마이만큼 좋은 곳도 없지 싶다. 꽃잎이 흩날리는 나른한 더위에, 우리는 조금씩 죽고, 발작적으로 잠시 젊어진다. 마른 등껍질의 오늘내일하는 나무지만, 가지 끝에선 샛노란 꽃이 핀다. 그게 우리다. 우리는 봄처럼 밝은 죽음이다.
누구든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아이처럼 예쁘지 않다. 웃어도 자지러지는 관객이 없다. 그래서 늙음은 쓸쓸하고, 마냥 불리하다.
"만일 내가 새로 세운 가설이 옳다면 지금으로서는 퍼즐을완성할 조각이 하나 모자라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 조각은 과거에 있어."
이런 이야기라면 누구에게나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우연히 과거의 지인과 재회하고 얼마간 서먹한 시간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또 보자" 하고 말하며 헤어진다. 대개, 이런 유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기적적으로 교차한 두 인생은 그 후, 두번 다시 교차하지 않고 그저 시간만이 흘러간다.
인생 속에는 진실이 없네. 진실은 허구 속에만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