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와 거기 - GQ 에디터 장우철이 하필 그날 마주친 계절과 생각과 이름들
장우철 지음 / 난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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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유명 잡지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이 바닥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 녀석 하나는 늘 스스로를 일러 '글쟁이'라고 하는데, 매사를 '글로 밥 벌어 먹는 힘들다'로 결론을 내는 묘한 대화법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니 그 친구가 생각난다.

 

책 속의 문장은 여기 저기 사방팔방을 정신없이 주유한다. 지은이는 딱히 여행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여기 저기를 쏘다녔다고 한다. 그 속에서 마주친 풍경과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는 '거기'에 있는 것과 '여기'서 생각나는 것이 이어져 있음을 깨 닿는다. 그리고, 거기에서 찍은 사진과 여기에서 끌어올린 생각을 묶어 생애 첫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여기와 거기'는 이렇듯 지은이가 길 위에서 마주친 계절과 생각과 이름들의 합집합이다. 이것들은 한 편의 시로, 짧은 잠언으로, 리뷰로, 여행 에세이로, 인터뷰로 변주되고 있다. 이를테면, 벚꽃이 흩날리는 사월에 예전 어느 해 십이월에 했던 가수 '이소라'와의 인터뷰가 문득 생각나서 그 기억을 들춰 보이는 식이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하릴없이 잡지를 슬슬 뒤적이다 마음에 드는 구절만 찾아 읽을 때 나의 선택을 받곤 하는 그런 글들이 대부분이라 아무 생각없이 술술 읽힌다. 쉽게 읽혀지지만 정말 아무 생각없이 금방 읽힌다.
 
감성 에세이 류의 글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요즘 왜 이런 책들을 심심찮게 읽는지 모르겠다. 한해 한해 지나며 점점 스스로 감성을 생산하지 못해서 인가 보다. 그런데, 세련되게 편집되고 잘 다듬어진 글과 사진들이 나쁘진 않지만 내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 오지는 않는다. 이 또한 나이 탓인가?

 

다만, 아래 문장을 읽을 때 한 번, 오래 전 어느 날 새벽 첫 차를 타기 위해 '거기' 이태원 클럽 문을 나서며 맡았던 신산했던 공기의 감촉이 '여기' 따뜻하게 데워진 침대 속에서 불현듯 생각이 났다.

 

"새벽에 지하 클럽을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이미 오고 있었다. 묵직한 철문이 닫히자 공중은 귀머거리. 광장은 비었는데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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