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 - 유하 산문집, 개정증보판
유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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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유하'가 서른 셋에 처음으로 발표한 산문집을 17년 세월이 흐른 후에 새로 내 놓았다. 그 동안 시인은 '영화감독'이란 타이틀을 이름 앞에 추가하였고 이제 더 이상 청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1부에서는 시네마 키드로 동시상영 영화관과 세운상가를 누비고 다니던 학창 시절의 추억담, 2부에는 시인이자 영화감독으로서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각, 3부는 영화, 재즈, 음악에 대한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글들로 꾸며져있다.

 

쉰 고개를 앞에 둔 시인은 "돌이켜 보면, 시와 영화를 향한 열망이 이 책을 쓰게 한 것 같다"고 술회한다. 청년 시절 그는 '추억'이라는 단어에 오랫동안 붙잡혀 있었다고 한다. 육십 년대 생 특히, 대도시 언저리에서 학창시절은 보낸 이들의 추억에서 대중문화의 이미지가 차지하는 영역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세운상가 키드, 종로3가와 청계천의 / 아황산 가스가 팔 할의 나를 키웠다. / 청계천 구루마의 거리, 마도의 향불 아래 / 마성기와 견질녀, 꿀단지, 여신봉, 면도사 미스 리 // ...... // 나는 부유하는 육체의 세운상가 / 곰팡이를 반성하지 않는 곰팡이, / 그리하여 곰팡이꽃의 극치를 향해가는 영혼"

 

위의 시가 수록된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은 육십 년대에 태어나 칠십 년대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지은이는 이들을 '이소룡 세대'라고 칭한다)의 키치적 감수성이 충만하다. 이 책을 지배하는 정서도 역시 그러하다.

 

안 방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TV가 보여주는 만화 영화의 세계는 처음으로 '재미'라는 감각을 일깨어 주었다. '황금박쥐', '요괴인간', '타이거 마스크', '서부소년 차돌이'에 넋을 빼앗겼던 기억이 난다. 만화방과 영화관에서 풍기던 쾨쾨한 냄새도 아련하다. 심야 FM방송에서 들었던 그 팝송들의 멜로디가 귓가를 맴돈다.

 

바로 윗 세대처럼 근엄함의 가면을 쓴 채 대중문화라면 무조건 낮추어 보지도 않고, 아래 세대처럼 영혼과 육체가 완벽하게 대중문화와 합일되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이제는 완전히 복고풍이 되어버린 70~80년대적 감수성을 가진 지금의 사십대들이 아련하게 서로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그런 글로 채워져 있다.

 

"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 미래는 현실 속의 나에게 아직 고정화된 관념이고 어느 정도 읽혀진 정보 그 자체이다. 그러나 추억의 이미지란 고정된 풍경이 아니라, 그것을 담는 자의 마음의 모양에 따라 수시로 변화되는 액체성의 풍경이다." 지은이가 던지는 이 문장이 마음에 깊이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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