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평점 :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
"자정 넘으면 /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시인의 이름을 알린 시 "사평역에서"의 앞 부분과 끝 부분이다. 학창시절 나는 이 시를 참 좋아했었다. 한 동안 그를, 그의 시를 잊고 살았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문장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시인은 '타고르'의 시를 깊이 사랑했단다. 그의 사랑은 뱅골어로 씌어진 아름다운 시편들을 한국어로 직접 옮기고 싶은 열망으로까지 이르러 타고르의 꿈과 이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산티니케탄'에서 날마다 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고 때론 쩗은 여행을 떠나며 540여일을 보낸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소박한 사람들을 가슴 깊이 느끼며 지낸 하루하루의 일상을 잔잔하게 기록한 이 책을 내 놓았다.
하루 24시간 86,400초를 다 기억하고 싶었던 시간들이 있었다고 시인은 말한다. 스무 살의 시인은 어떤 1초는 무슨 빛깔의 몸을 지였는지, 어떤 1초는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1초는 지금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지, 어떤 1초는 왜 깊은 한숨을 쉬는지 다 느끼고 기억하고 싶었단다. 그래야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의 시인은 그 때 그 시절의 나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또 살았다. 그런데, 산티니케탄에서 생애 두 번째로 삶이 지닌 1초 1초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540일, 46,656,000초의 시간들이 한 초 한 초 꽃다발을 들고 다가와 다정하게 손을 흔들고 지나가고, 시인도 그들을 향해 오래 오래 손을 흔들고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쉽고도 소박한 언어로 일상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위의 고백처럼 하나 하나의 문장에 시인의 감성과 사색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처음에 나오는 종이배를 파는 아이의 이야기부터 이 책에 매혹되었다. 오랜만에 아름다운 언어와 향기로운 문장을 보았다. 마음이 우울해질 때면 다시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