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삼국시대 때 전파된 이후 불교는 오랫동안 우리네 곁에 있었다. 알게 모르게 한민족의 형성에 큰 부분을 차지해 온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비록 잘 알지 못하면서도 아무도 불교에 대해 모른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고 일갈하신 큰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불교는 그냥 불교이고, 절은 절이고, 스님은 스님이다. 공기처럼 바람처럼 그냥 그렇게 있다.
한국에도 종교분쟁이라는 것이 시작되는 듯 사회 일각이 소란스러운 요즘, 너무 가까이에 있어 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은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무식의 소치겠지만 불교에 대한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 보아도 사실 잘 모르겠다. 불교의 가르침 자체가 '불립문자'라고는 하지만, 배움이 깊지 않은 사람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들이 드물다.
100페이지 남짓되는 이 책은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군데 군데 불교 교리에 대한 심오한 철학도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은 상원사에서 '동안거'를 지낸 '지허'라는 스님의 일상과 선방의 풍경을 담담하게 보여 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1973년에 처음 발표된 글이라는데 지은이에 대한 정보는 불확실하다.
'安居'란 스님들이 사찰에서 산문 밖 출입을 일절 삼가고 참선 수행에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원래 '우기'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바르사(varsa)'에서 나온 말로 우기가 되면 수행자들이 큰 비를 만나 다칠 수도 있고, 숲 속이나 들판을 걸어 다니다가 벌레들을 밟아 무심코 살상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므로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여름 석 달 동안 안거에 들도록 하라"고 말씀하신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름에만 실시되었던 안거가 사시사철의 변화가 뚜렷한 중국이나 한국에 와서는 여름과 겨울에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되게 되었다.
그 중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부터 시작하여(결제) 다음해 1월 15일까지(해제) 섯 달 동안 진행이 된다. 동안거에 참여한 스님들은 매일 새벽 2시30분에 기침하여 9시에 취침하기까지 하루 12시간을 각자가 쥔 화두에 따라 참선 수행을 한다. 때로는 며칠씩 잠을 자지 않거나 눕지 않거나 말을 하지 않는(묵언수행) 등 '용맹정진'을 하기도 한다.
수도승에게는 五欲七情이 용납되지 않고 三不足(食,衣,睡)으로 살아야 하며 彼岸에로의 길이 열려져 있지도 않고 涅槃이 눈 앞에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인간은 끝내 견성하지 않으면 안될 苦集(고통의 덩어리)의 존재임을 자각하고 스스로 苦의 땅 위에, 苦의 집을 짓고, 苦로써 울타리를 치고, 苦의 옷을 입고, 苦를 먹고, 苦의 멍에를 쓰고, 苦에 포용된 채, 苦의 조임을 받아 가면서도 苦을 넘어서려는 의지만을 붙들고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동안거 해제 후 스님들이 각자의 길로 헤어질 때의 작별인사도 "성불하십시오"이다.
짧은 글이지만 생각할 꺼리를 많이 남겨 준 책이다. 두고두고 조금씩 다시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