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척기 -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안재홍 지음, 정민 풀어씀 / 해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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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31년에 간행된 민세 '안재홍' 선생의 '백두산 등척기'를 다시 풀어 쓴 글이다. 발표 당시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원문은 난해한 한문 투의 문장이라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없는 글이다. 정민 교수는 이미 여러 고전을 당대의 언어로 옮기는 번역 작업을 진행했었고, 특히 '한시'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깨우쳐 주신 분이다.

그는 고전이나 근대 시기의 글이라도 오늘날의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번역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저 한자어를 풀이하거나 주석을 다는 것에서 나아가 문장의 결까지 바꾸어야만 그 문장의 알맹이를 당대의 독자들이 알차게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이 글의 첫 머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맑고 신선한 아침 공기에 차창 속의 잠을 깼다. 부스스 일어나 파란 커튼을 걷는다. 해사하고 어슴푸레한 이른 아침, 고요한 공기 속에 그새 떠나가는 기차의 덜컹대는 소리만 속스러운 소음을 일으킨다"

참으로 아름답고 신선한 문장이다. '내용은 빼거나 보태지 않는다. 한자말은 풀어 쓴다. 긴 글은 짧게 끊는다. 구문은 현대어법에 맞게 바꾼다. 한 문장도 남김없이 다 바꾸고 하나도 빠뜨림 없이 그대로 실었다'는 원칙에 따라 민세 선생의 명문을 쉽게 읽을 수 있게 풀어 준 정민 교수의 작업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민세 선생의 '백두산 등척기'는 1930년 7월 23일 밤 11시에 경성역을 출발하여 8월 7일 오후 5시 기차로 북청역을 떠나기까지 16일간의 기행문이다. 기차로 원산과 무산을 거쳐 농사동과 신무치, 무두봉을 지나 천지에 오르고, 허항령과 포태리를 경유하여 혜산진에 내려 풍산과 북청을 경유한 노정이었다.

당시 민세 선생은 조선일보 주필의 자격으로 변영로, 김찬영, 성순영, 김상용, 황오 등과 작반하여 이 기행에 참여하였다. 식물과 곤충 채집에 몰두하는 교사들이 여럿 글 속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백두산 순례 뿐 아니라 생태 조사를 겸했던 기행으로도 보인다.

민세 선생의 글은 꼼꼼한 묘사와 간결한 정리가 돋보이고 백두산의 곳곳을 샅샅이 그려내어, 마치 그 풍광이 눈에 보이는 듯 생생하다. 그 뿐만 아니라 변경지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고매한 인품과 상고사에 대한 선생의 식견과 통찰력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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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0-12-0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두산을 다녀 오신 분들께, 그리고 백두산을 가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께 정말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 같습니다. 저는 2007년 여름에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아들과 함께 '종주 산행'을 다녀왔는데, 정말 그 당시 느꼈던 벅찬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쯤 우리 땅을 거쳐 백두산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듯 싶어 무척이나 기대했었는데, 남북한 위정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어느새 헛된 희망이 되고 만 것 같아 너무나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