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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평점 :
마침내 '아유카와 데쓰야'의 작품을 읽었다.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일본의 유명잡지인 '문예춘추'가 1986년에 선정한 '일본 미스터리 100선'이라는 리스트를 어느 미스터리 사이트에서 보게 된 이후이다. 그 리스트는 일본추리작가협회를 비롯한 각계의 미스터리 전문가와 애호가들이 선정하였다는데 제1위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였고, 당시 내가 좋아했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이 3위였다. '아유카와 데쓰야'는 '검은 트렁크'라는 작품이 8위로 베스트 Ten에 이름을 올렸고, 이외에도 '검은 백조'(38위), '리라장 사건'(48위). '죽음이 있는 풍경'(70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 미스터리 100선'은 나에게 일본 추리소설을 고르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이후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시리즈가 처음 나왔을 때도, 동서추리문고가 복간이 되었을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 동안 엄청나게 일본소설들이 출간되는 붐에 편승하여 적지 않는 일본 추리소설도 국내에 출간되었지만 기다리고 있던 '아유카와 데쓰야'의 작품은 좀처럼 소개되지 않았다. 아마도 60년대에 주요 대표작을 발표한 옛날 작가를 소개하기가 출판사 측에서도 약간은 주저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야츠지 유키토'를 비롯한 신본격 작가들의 미스터리를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로 성장하도록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는 '원조'들의 본격 미스터리를 간절히 읽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나오자마자 바로 구해 놓았다가 오늘 단 번에 읽었다. 오랜 기다림이 있은 후의 만남이라 책을 읽고나서 여러 가지 상념들이 스쳐 지난다. 먼저, '명물허전'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본격 추리의 장르적 경향인 공정한 추론과 논리에 의한 지적 게임과 절묘한 트릭과 알리바이 깨기가 기본적으로 작품 저변에 깔리고, 이야기는 폐쇄된 공간에서의 연쇄살인, 경찰의 수사로는 전혀 밝혀 낼 수 없는 사건의 진상, 천재형 탐정의 명쾌한 해결로 이어진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미스터리 장치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멋진 작품이다.
1958년에 발표된 이 소설을 너무 늦게 만나게 된 점이 또한 아쉽다. '긴다이치 시리즈'도 그러했지만 적어도 70년대에는 소개되었거나, 아니면 내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나이에 이 작품을 만났다면 이 소설에 더욱 매혹되었을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이 허술한 구석이 몇 군데 눈에 들어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사회파 미스터리가 왜 한 동안 일본 미스터리의 주류가 되었는지도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도 당시 일본 미스터리계는 이 소설과 같이 고전 미스터리의 정교한 복제보다는 미스터리 장르 자체를 자국화하는데 더 끌렸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