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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ㅣ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오리하라 이치'는 '서술트릭'에 천작하는 작가이다. 서술트릭 기법은 작가의 서술 그 자체가 트릭으로 작용한다. 즉, 등장인물, 플롯, 서술 방식 등에 독자들을 빗나간 해석으로 유도하는 교묘한 미스디렉션(misdirection) 장치를 설치하여 감쪽같이 독자들을 속인다. 서술트릭 작품은 대개 마지막 책장에 가까워졌을 때에 이르러 이야기 자체를 완전히 반전시키는 트릭이 밝혀지고 독자들은 경악한다. 책장을 다시 앞으로 넘겨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부분들이 의미가 있었음을 확인한다. 서술트릭은 기본적으로 독자를 기만하는 요소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공정한 추리게임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별로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서술트릭의 걸작은 마지막 한 문장에 그 때까지 독자들이 구축해 놓은 세계가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지적인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
집요할 정도로 서술트릭을 추구하는 그의 미스터리는 '오리하라 월드'라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 두 작품이 소개된 '도착 시리즈'로 그의 소설을 처음 만났다. 도발적으로 독자들과 한판대결을 선언하는 듯한 도착 시리즈는 미스터리는 지적인 게임이라는 공식에 충실한 재기발랄한 작품이었다. 묵직한 맛은 없지만 유쾌한 소품이었기 때문에 후속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者 시리즈' 중 한 편이다. 여전히 서술트릭이 구사되어 있지만 '사회파' 미스터리적인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이는 이 시리즈가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서 소재를 가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실종자는 '고베 소년 살인' 혹은 '사카키바라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고 한다. 그것은 1997년 고베시의 한 중학교 교문 앞에서 절단된 초등학생의 머리가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채 발견된 엽기적인 사건을 일컫는다. 그 사건의 범인은 당시 나이로 14살 밖에 안 되는 소년이었다. 그는 미성년자인 탓에 소년법의 적용을 받아 그저 '소년 A'로만 알려졌을 뿐, 신상에 관한 정보는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소년 범죄의 경우 인권 보호 차원에서 범인의 신상이 철저하게 보호되기 때문에 이제 이십대의 청년으로 성장했을 소년 A는 일본의 어느 곳에서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피해자의 부모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작가는 이러한 소년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점도 제기하고 있다.
서술트릭의 특성상 책을 읽기 전에 리뷰나 책 소개를 유심히 읽지 않기를 권하고 싶다. 스포일러는 서술트릭의 최대 '적'이다. 개인적인 평가를 말하면 나는 이 소설이 충분히 재미있었다. 그래서, 시리즈의 다른 작품인 행방불명자, 원죄자, 도망자를 읽어보고픈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