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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타이어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케이도 준'은 대학졸업 후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력은 출세작인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에서 은행이라는 조직의 생리와 그 그늘에서 살아가는 은행원들의 묘사에 생생한 리얼리티를 부여하였다.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고 금융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개척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의 소설은 본격 미스터리로 읽히기 보다는 사회성이 강한 리얼리즘 소설로 읽힌다. 이 작품을 포함하여 겨우 두 작품을 읽은 주제라 섣부른 평가일 수는 있지만 말이다.
이 소설에는 굴지의 자동차 회사인 대기업과 운송업을 하는 중소기업, 그리고 이들과 거래하는 은행이 등장한다. 작가는 공식적으로는 '실존하는 개인이나 단체, 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픽션'임을 밝히고 있지만, 사실상 이 소설은 2002년 미쓰비시 자동차의 대형 트럭 타이어 분리에 의한 사상 사고와 미쓰비시의 리콜 은폐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선친이 운영하던 운송회사를 물려받아 10년째 꾸려 가던 '아카마쓰'에게 큰 위기가 닥친다. 주요 거래처의 물품을 운송하던 트럭에서 갑자기 타이어가 분리되더니 불운하게도 그 타이어에 지나가는 행인이 맞아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경찰과 트럭 제조회사는 사고의 원인을 정비 불량 쪽으로 몰고 가지만 그는 이를 납득할 수가 없다. 비슷한 사고가 다른 운송회사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트럭의 구조적 결함이 의심되지만 그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고의 여파로 회사는 도산할 위기에 처해지지만 그는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과, 회사 직원들과 함께 대기업과의 힘든 싸움을 시작한다.
이 소설에는 '타이어 분리에 의한 보행자 사망 사고'라는 하나의 사건을 놓고 각기 다른 조직에 속해 있는 인물들의 입장이 충돌한다. 사망 사고를 일으킨 운송회사 사장, 트럭 제조사 직원, 사고를 일으킨 중소기업과 자동차 제조사인 대기업과 거래하는 은행 직원, 사건의 진상을 파고드는 주간지 기자, 사고를 조사하는 경찰이 그들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안위를 위해 또는 조직의 안위를 위해 진실을 회피하기도 하고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볼만한 부분도 여기에 있다. 작가는 '기업'이라는 조직의 생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으며 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온갖 권모술수와 암투 및 추문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두 권으로 분권해도 될 정도인 두터운 분량이 무색하게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흡입력있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사건 당사자들의 다양한 입장을 넘나들면서도 이야기의 큰 축은 대기업에 홀로 맞서는 한 남자의 외로운 싸움에 맞추어져 있다. 거대기업과의 불가능한 싸움에서 그가 이길 수 있을지, 진실이 과연 승리할 수 있을지 끝까지 긴장감을 풀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