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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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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이후 전국이 노동투쟁으로 뜨겁던 1987년 8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 공예품 공장의 식당 천장에서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죽은 32구의 시체가 발견된다. 흔히 '오대양 사건'으로 통하는 이 엽기적인 사건은 당시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지만, 그 자세한 사건의 경위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사이비 종교집단의 집단 자살극으로 수사가 마무리되었다. 당시 부검 의사는 세 구의 시체는 자살로 보이지만, 나머지는 교살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어 누군가에 의해 계획적으로 행해진 집단 타살이라고 주장하여 여운을 남겼다.

작가는 오대양 사건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끌어 왔지만 종교적 집단의 집단 자살 또는 타살이라는 겉모습 정도만 차용한 듯하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이나 주요 인물들의 사연 등이 오대양 사건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기 보다는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세계라는 느낌이 강하다. 작가가 이 소설을 위해 오대양 사건에서 빌어 온 것은 집단 자살(타살)이라는 사건의 외양보다는 희생자들이 일종의 공동체 생활을 해 왔다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 여자들은 공장의 사장을 '어머니'라 부르고 공동생활을 한다. 사유재산은 인정되지 않고 모든 수입은 어머니에게만 돌아가는 등 어머니의 카리스마에 절대복종하지만 결코 자신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집단자살로 희생된 여자들의 자식들이다. 이들 역시 자신의 엄마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섬기고 '이모'라고 불리는 다른 여자들, 그녀들의 자식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며 성장한다.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이들은 뿔뿔이 헤어지게 되지만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나게 되고 자신의 엄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한 곳에 모여 공동생활을 시작한다.

소설 속에는 중국의 오지 어딘가에 있다는 여인국 '모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곳의 아이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집안의 모든 재산은 딸이 물려 받는다. 여자들은 남자들을 만나 자유롭게 사랑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 결혼이 없기에 이혼도 없으며 그에 따른 상처도 없다. 한 남자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만 사랑이 식으면 그를 붙잡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은 다른 남자에게 옮겨간다.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모르고 여자들은 자기의 아이들을 지배하지 않고 품어 줄 뿐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바라는 것은 평화롭고 소박한 삶이었고 이러한 삶은 오히려 아버지라는 존재가 부재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다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가 읽힌다. 특히, 인기가수 김준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서늘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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