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
쑤퉁 지음, 김재영 옮김 / 비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팜므파탈'(Femme Fatale)은 거부할 수 없는 성적 매력을 무기로 남자들을 유혹하여 권력이나 부와 같은 자신이 원하는 세속적인 가치를 획득한 후 상대방 남자들을 파멸로 이끄는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팜므파탈 이미지는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의 문학작품에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이래 다양한 예술 장르로 확산되었다. 이는 산업화 영향으로 전근대적 가치관이 무너짐에 따라 여성들도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진출하기 시작한 사회상과 관련이 있으며, 순종적 수동적 위치에서 자신을 지배할 지도 모르는 존재로 돌변하는 여자에게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 치명적인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남자들의 이중 심리를 반영하기도 한다.

당나라 태종의 후궁으로 입궐하였지만 고종의 황후가 되고 종국에는 황제의 자리에 올라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로 기록된 '측천무후'야 말로 팜므파탈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남성중심의 역사관으로 왜곡된 시각이 아니더라도 역사에 기록된 사실 자체만으로 그이는 이러한 혐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선대 황제의 후궁 신분에서 현 황제를 유혹하여 그의 여자가 되는 것이나, 자기의 재입궁을 도운 은인격인 왕황후를 내 쫓고 자신이 황후가 되는 과정쯤이야 역사상 그다지 드물지도 않는 궁중암투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친아들을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씩이나 차례로 희생시키며 절대권력을 구축하는 과정은 권력욕의 화신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할 정도이다. 하지만, 측천무후는 반대파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하는 공포정치를 실시한 반면에 능력 위주로 관료를 등용하는 기풍을 진작하고 민생의 안정을 꾀하는 등 후대에 이르러 '開元의 治'라고 불리는 당나라 전성기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작가 '쑤퉁'은 이렇게 평가가 엇갈리는 이 문제적 인물의 일대기를 '욕망의 서사'라는 관점으로 소설로 형상화하였다. '무조'라는 이름의 여인이 욕망을 성취해 가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따라가면서 담담하지만 유려한 필체로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특히 여자로서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이나 선과 악,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는 권력을 향한 욕망의 각축장 안에서는 무의미해진다. 특히, 화자(話者)의 싯점이 돌연 바뀌어 생모의 손에 의해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는 황태자 '홍'과 '중종', '예종'의 시선에서 포착한 측천무후의 여정은 욕망에 대한 소름 끼치도록 집요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그 비극성이 고조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이래 정치는 거의 남성들의 영역이었다. 어느 시대이고 우두머리는 남자의 몫이었을 뿐 아니라 그 밑에서 정치를 집행하는 이들도 죄다 남자였다. 이러한 역사에 반기를 들고 스스로 황제가 된 것도 모자라 남편의 왕조(李氏)가 아니라 자신의 왕조(武氏)를 열려고 했던 무측천의 생애는 공과를 떠나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에 대해 작가는 "나는 소설을 현실적인 것 아니면 역사적인 것, 구체적인 것 아니면 추상적인 것으로 나누어 생각한다. 그런데 '측천무후'만은 예외이다. 그것은 나의 유일한 역사소설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던 역사적 인물의 내면에서 분출하는 끝 없는 욕망과 삶의 여정에 천작하는 이 작품은 최근에 읽은 다른 소설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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