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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작가는 이 소설을 끝내고 나서 한참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하였고 자신의 대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소매치기를 직업으로 삼은 청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소설로 그는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직접 자기 손으로 그 해 출간된 작품 중에서 선정한 '오에 겐자부로 상'을 수상하였다.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가 모호한 일본에서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탄탄한 문체와 순문학의 왕도를 걷는 고전적 테마성을 가진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리 길지 않은 이 소설을 단숨에 읽고 난 후, 과연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소설의 외형은 전형적인 장르문학의 그것이다. 가히 천재적인 소매치기 솜씨를 가진 주인공 앞에 타인의 운명까지 지배하려는 절대적인 악의 화신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여 주인공에게 거부할 수 없는 일거리를 맡긴다는 것이 주된 이야기의 흐름인데 다른 미스터리 스릴러 작품과 구조적인 차이를 갈라 내기란 어려운 것 같다.
주인공은 부유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골라 지하철이든, 백화점이든, 클래식 공연장이든 가리지 않고 절묘하게 지갑을 빼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결코 들어가서는 안 될 타인의 영역으로 뻗친 손가락 사이에 지갑이 끼워지는 순간, 그 아슬아슬하고도 짜릿한 전율 속에서 일종의 쾌감까지 느끼는 지경이다. 이렇게 천재적이라고 할 만한 소매치기 기술로 인해 돈 걱정도 별로 없고, 세상의 규칙 따위에 얽매이지도 않은 채 자유롭게 살아간다. 그런데, 그의 앞에 나타난 '기자키'라는 인물은 절대적인 무게감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궁지에 몰린 주인공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서 주인공의 운명마저 자신의 손아귀에서 조정하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소매치기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주인공의 삶은 정상적인 궤도와는 어긋난 사회적 '루저'의 그것이다. 유일한 친구는 거대한 악의 세력에게 이용만 당하고는 무참하게 버려졌고,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우연히 알게 된 한 소년에게 그가 애착을 느끼는 것도 외톨이로 세상에 내던져졌던 과거 자기의 모습이 투영되어서 일 것이다. 소매치기를 반복한다는 것 외에 주인공의 삶은 평범하고도 선량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선량하지만 사회적 관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기자키로 대표되는 거대한 세력은 이렇게 고립된 한 개인의 운명쯤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파괴할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