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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조용호 지음 / 문이당 / 2010년 7월
평점 :
노래가 지닌 정서적인 힘은 막강하다. 지금도 대학생으로 처음 맞은 삼월의 이미지는 교문 근처에 짙게 베여 있는 최루가스 냄새와 교정에서 울려 퍼지던 생소했던 노래가락, 노랫말들의 기억만 압도적이다. 다음 강의를 기다리며 하릴없이 앉아 있는 귓가에 끊임없이 들려 오던 그 노래들에 알게 모르게 점점 익숙해져 갔다. 어떤 노래는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전해 주었다. 몇 번의 주저 끝에 끼게 된 스크럼 대열 속에서 그 노래들을 소리 높여 부를 때면 왜 인지 모를 전율이 온 몸을 쓸고 지나갔다. 오월, 어느 날 학생회관 앞 광장에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구경한 노래패의 공연은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라이브 콘서트라고 할 수 있다. 그 날, 나는 한 곡의 노래가 이다지도 깊게 사람의 마음 속을, 가슴 속을. 머리 속을 후벼 파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80년대 대학 노래패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을 386세대의 후일담류 이야기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지만 그때 그 노래들에 대한 순정을 기억하며 읽었다. 대학시절 노래패로 활동한 작가의 경험이 이야기 저변에 은근하지만 깊게 베여 있다. 오랜만에 칠레의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의 이름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도 소설 속의 그들처럼 '끝나지 않는 노래'라는 책을 읽으며, 군부와 미국 때문에 결국 좌절되고 마는 칠레 민중의 투쟁에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들이 노래패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묘사된 민요운동을 포함한 노래운동에 대한 일부 묘사나 제3세계 음악에 대한 소개 등의 요소를 벗겨 내고 나면 이 소설은 사랑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만 남는다. 주인공 '연우'는 타고난 가객이다. 본시 가객이란 숙명적으로 일상에 발을 붙이고 살기란 어려운 법이다. 탄탄한 이성과 목소리의 깊은 울림으로도 좋은 노래가 나올 수 있지만, 그리만 해서는 사람들을 완전히 감동시키기에는 약간 모자란 점이 있다. 가객은 가객다워야 하는 법이다. 가객의 숙명을 타고난 듯한 연우에게 '승미'는 이해심 깊은 아내이자 음악의 동반자이다. 그리고, 화자인 나는 연우의 절친한 친구이자 승미의 신뢰할만한 선배로 대학시절부터 둘의 곁을 지켜 왔다. 그런데, 나의 가슴 속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승미가 담겨 있다.
어느 날, 연우는 갑자기 사라져 버리더니 자신의 지난 시절을 기록한 비망록을 나에게 보낸다. 비망록에는 '사라진 노래를 찾아 떠난다'며 칠레의 가수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 '생에 감사 드리며'가 유언처럼 적혀 있었다. 승미의 부탁으로 연우의 행방을 찾아 나서며, 나는 그가 노래패 후배였던 '선화'와 운명적인 만남과 헤어짐을 이어 온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소설에는 3개의 사랑이 등장한다. 불꽃과 같이 타올랐던 연우와 선화의 사랑에 비해 연우와 승미, 승미와 나의 사랑은 치명적인 사랑의 주변부를 맴도는 운명이긴 하지만 그 비중이 너무 낮은 점이 다소 아쉬웠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노래를 매개로 사랑의 쓸쓸함과 운명의 어긋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