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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천천히 태어난다 - 우리 시대 명장 11인의 뜨거운 인생
김서령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지은이가 제목으로 빌려온 문구, '삶은 천천히 태어나는 것'는 작가 생텍쥐페리의 '전시 조종사'에 나온다. 삶은 하루하루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인생 전체를 관망하는 광각 렌즈같은 것도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은이는 이 문구가 적힌 쪽지를 10년도 넘게 냉장고 문 앞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냉장고 문 앞에 무엇인가를 붙여 놓는다는 행동에서 그이가 '생활인'의 감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지은이는 몇 몇 잡지와 신문사를 거치며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 온 칼럼니스트이다. 나는 그이의 글을 某 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 그 글은 지은이의 이름에 끌렸기 보다 인터뷰의 대상이 된 인물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읽었다.
지은이는 수 년간 인터뷰어 노릇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숱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이는 자기가 만난 사람들은 각자가 독자적인 하나의 '세계'였고 수백 년 시간이 축적되고 수만 킬로의 공간을 압축해 둔 거대한 '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았다고 술회한다. 그이는 이제 명성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똑같은 지점에서 주저앉고 하찮은 자극에도 생채기가 생기는 연약한 피부에 둘러싸여 있을 뿐이며 거리에서 부딪히는 수만의 인파도 그 제각각 내부에는 우주에 버금가는 고뇌와 깨달음이 내장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상의 텍스트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11편의 글은 지은이가 2005년부터 2008년 사이에 시사 월간지의 인터뷰 칼럼에 실었던 것이다. 인터뷰의 대상은 주로 문화 예술계에 몸 담고 있는 인사들이다. 소설가 '최인호', 소리꾼 '장사익', 화가 '박대성', 사진작가 '최민식', 목수 '이정섭', 건축가 '김석철', 작곡가 '강석희', 서예가 '김양동' 등 여덟 분에다 넓게 보면 가나아트의 '이호재' 회장이나 광주요 '조태권' 대표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시골의사'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박경철' 원장만 이질적이다.
인터뷰를 행한 시기가 다소 오래 전이기 때문에 책으로 묶으면서 이들의 최근 근황이나 당시 인터뷰의 뒷 이야기를 짤막하게 붙여 놓았다. 애초 잡지에 처음 실렸던 글인지는 몰라도 잡지에 수록된 인터뷰 기사에서 흔히 보이는 정형성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담백한 글이지만 밋밋하다고 달리 말할 수도 있다. 인터뷰 대상자도 당시에는 달랐겠지만 바로 지금 시점으로 보면 화제의 중심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