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는 양들의 축연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네자와 호노부'는 '소시민 시리즈'로 처음 만났다. 고교생 콤비가 등장하는 일상의 미스터리를 맛깔스럽게 다루면서도 미스터리의 깊이도 만만치 않아 눈 여겨 보았는데, 신본격 미스터리 경향을 정면으로 내세운 '인사이트 밀'에서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역량을 한껏 과시하였다. 2008년에 나온 이 연작 단편집을 일관하는 세 가지 요소는 '마지막 일격', '왜 그랬는가?', '오래된 명문가의 이야기' 등이다.

'명문가의 아름다운 아가씨와 그녀를 모시는 몸종'이라는 설정은 수 많은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구도이지만, 나는 언제나 박경리 선생의 '토지'에 등장하는 '서희'와 '봉선이'가 가장 먼저 떠 오른다. 기품있고 명민한 아가씨를 대신하여 위험에 뛰어들어 곡절을 겪게 되는 몸종의 운명, 주종 관계를 떠나 친구와 같은 정을 나누는 두 여자의 삶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이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 중에서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와 '타마노 이스즈의 명예' 두 편의 이야기는 '아가씨와 하녀'라는 이러한 고전적인 구도를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고풍스럽게 전개되던 아름다운 이야기는 충격적인 반전과 함께 완전히 전복된다.

'북관의 죄인'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들려 준 출생의 비밀에 따라 명문가문에 입적하게 되지만 하녀와 다를 바 없는 처지인 아가씨의 눈에 비친 가문의 후계자를 둘러싼 암투의 전말을 다루고 있다. 수록작 중 가장 미스터리의 깊이가 강했다.

'산장 비문'은 부호의 별장을 관리하는 여자가 겨울 산 속에서 조난자를 구출하면서 벌어지는 서늘한 이야기이다. 어딘지 '스티븐 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야기이다.

표제작인 '덧 없는 양들의 만찬'은 예기치 않은 유산을 받은 졸부가 신비한 이력을 가진 요리사를 고용하는데 그녀는 어느 누구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음식을 내 놓는다. 어두운 환상을 구현한 기담의 느낌이 강하다.

이 연작집의 부제는 'The Babel Club Chronicle'인데, 각각의 이야기는 상류계급의 아가씨들만 가입할 수 있다는 '바벨'이라는 독서모임과 연결되어 있다. 그 때문인지 작품 속에는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여러 가지 코드들이 숨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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