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평점 :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허기를 채우는 것과 다를 게 뭐냐 싶다. 여행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결국은 서로 다른 종류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지은이는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스무 권 가량 영어책을 번역한 번역가란다. 강원도 시골에서 지낸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번역한 책의 면면을 보니 의외로 문학류 보다는 실용서 같은 비교적 딱딱한 내용의 책들이 많았다. 그이는 책과 영화로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습성을 지닌 예민한 여자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어딘가를 여행하기 전에 그 곳을 배경으로 한 책이나 영화로 예행 연습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고도 한다. 이 책에 '동유럽 독서 여행기'라는 부제가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프라하에서 지은이는 영화 '타인의 삶'과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프란츠 카프카'의 '성'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린다. 두브로브니크에서는 '존 레넌'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과 영화 '이터널 선샤인'과 함께 '토머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조지프 헬러'의 '캐치-22' 등이 나온다. 슬로베니아에서는 '슬라보예 지젝'의 '이라크, 빌려온 항아리'와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 공화국으로' 등이 언급되어 있다. 지은이는 종횡무진 영화, 음악, 소설 작품을 언급하고 이들은 하나하나 주를 달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이 이 책이 다른 여행 에세이와의 차별성을 부각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지은이가 떠돈 곳은 체코의 '프라하'와 '베네소프',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와 '자그레브' 그리고 슬로베니아의 '류블라냐'와 '블레드'이다. 그이의 여행에는 '비노'라 불리는 또 한 명의 여자와 함께 한다. 시종 딱딱한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명의 여자가 경험하는 아기자기한 여행 이야기도 있다. 여행기는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저가 항공편으로 프라하로 떠나는 순간부터 슬로베니아 블레드의 기차역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는 기차에서 끝이 난다. 지은이의 글은 담백하면서도 묘한 감칠 맛이 있어 읽기에 지겹지는 않았다.
제목으로 쓰인 '굴라쉬 브런치'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책 속에 그 의미가 나왔다. 굴라쉬는 체코의 전통요리인데 소고기와 야채를 넣고 끓인 걸쭉한 국물이 한국의 육개장을 방불케 하여 지은이의 입 맛에 잘 맞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책 제목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