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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서비스데이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어쩌다 보니 '슈카와 미나토'의 작품을 다섯 편이나 읽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라는 말이 서두에 붙은 이유는 그의 작품에 열광적이지도 않으면서 의외로 국내에 번역된 그의 소설을 모두 보아 버렸기 때문이다. 세피아 빛 이미지의 도시를 배경으로 우울하고 섬뜩하면서도 향수를 자극하는 이야기를 엮어 내는 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참 부담없이 읽힌다. 이는 그가 만들어 내는 소설적 공간이 독자들의 아련한 추억을 들추어 내고,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자극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그가 창조한 '노스탤직 호러'의 세계는 나오키상을 수상한 '꽃밥'에서 가장 두드러지지만 이 작품집도 이러한 경향에서 크게 빗나가지는 않는다. 모두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작품집의 대표작은 아무래도 '오늘은 서비스데이'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표제작일 뿐 아니라 분량도 중편에 가까울 정도 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단 하루, 어떤 소원이든지 이루어지는 날이 있다는 것이 주요한 설정이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아주 특별한 이 서비스데이는 정작 그 당사자는 전혀 모른다는데 아이러니가 있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정리해고 위기에 있고, 가정에서는 부인이나 자식들에게서 전혀 관심을 못 받고 있는 초라한 중년 남자가 뜻하지 않게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아주 특별한 하루를 경험하게 된다.
'도쿄 행복 클럽'은 '타인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연상되는 블랙 미스터리 분위기의 단편이다. 범죄사건이나 사고에 연루된 물건을 수집해 품평회를 여는 수집가들의 모임 이야기인데, 굴적된 형태로 행복감을 느끼려는 현대인의 추악한 단면을 그리고 있다. 서늘한 마지막 마무리가 인상적인 단편으로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가장 좋았다. 처녀귀신이 등장하는 '창공 괴담'은 제목과는 달리 매우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의 이야기이다. 오른손만으로 존재하는 '루미코'라는 이름의 귀신은 마치 우렁각시처럼 방 주인을 위하여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해 놓는다. '기합입문'은 훗날 유명한 운동선수로 성공한 한 남자가 어린 시절에 가재 낚시를 통해 인생의 값진 교훈을 배운다는 이야기이다. '푸르른 강가에서'는 자살로 죽은 젊은 여성이 저승으로 건너가는 삼도천의 뱃사공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집에서 그려진 세계는 일상과 판타지가 뒤섞여 있다. 신이 등장하고 귀신이 등장하는 판타지 세계에 인간사의 다양한 일상의 모습들이 능청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일상 속의 비일상 또는 살짝 뒤틀린 일상 속에서 작가는 유머와 함께 약간의 독을 가미하여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를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