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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다 케이스케 지음, 고정아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막 여름 방학이 끝나 새 학기 첫 시험을 보고 일찍 집에 돌아온 날 '혼다'는 우연한 계기로 초등학교 때 이웃에 살던 형에게 선물 받았던 이탈리아제 자전거를 떠올린다. 창고 구석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부속품들을 모두 꺼내어 먼지 투성이 본체는 깨끗이 닦고, 녹이 쓴 부분은 손질한 후 새로 조립한 자전거는 'BIANCHI'라는 남색 로고가 잘 어울리는 눈부신 경주용 자전거로 변모한다.
다음날, 새벽 일찍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여 육상부의 아침 훈련도 자전거를 탄 채로 참여한 혼다는 충동적인 일탈을 감행한다. 자기의 돈으로 동급생과 후배들의 음료수까지 사 와야 하는 심부름을 피해 자전거의 방향을 학교와 반대쪽으로 돌린 채 무작정 질주해 버린 것이다.
"도심을 향하는 상행선 전철이나 수많은 자동차들과는 정반대로 나는 달린다. 아침부터 세상의 흐름에 거슬러 반대로 움직이다니, 매우 자극적이었다. 학교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페달을 한 번 회전시킬 때마다 왠지 흥분이 되었다. 평일 오전, 수업을 빼먹었다는 죄책감이 짜릿한 스릴감을 가져다 주었다"
처음에는 첫 교시 수업 전까지만 친구들을 피하는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자전거 위에서 바라본 거리의 풍경에 빠지고, 질주가 주는 근원을 알 수없는 쾌감으로 인하여 아무 것도 아닌 듯했던 작은 일탈은 눈덩이 커지듯 커져 버린다. 그리하여,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난 그는 꼬박 일주일 동안을 먼지와 바람을 가르고, 빗방울을 떨치며 끊임없이 낯 선 거리를 달리고 새로운 풍경을 만나며 무작정 질주한다.
"어쨌거나 한 번 지나온 길은 달리고 싶지 않다. 정말이지 어디든 상관없다. 북쪽이든 남쪽이든. 안장에 올라앉은 나는 방파제 자전거 도로에 서서 어젯밤에 잤던 벤치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북쪽으로 가면 아키타현. 남쪽으로 가면 니이가타현. 어느 쪽이든 해안가를 달리고 싶다"
작가 '하라 케이스케'는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3년에 제40회 문예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데뷰하였다. 고교재학 중 또는 10대 등단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일본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일본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예작가이다. 이 작품은 2008년에 발표하였고 중편 정도 분량의 소품이다. 작가 자신과 그 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현재를 살아가는 고등학생들의 일상과 감성을 그대로 소설로 옮긴 듯한 느낌을 준다. 대화가 아니라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통해 상대방과 소통하는 것이 더 편한 새로운 세대의 생생한 언어를 만날 수 있다.
'혼다'가 왜 질주해야만 했는지는 생각의 영역이 아니라 느낌의 영역인 것 같아 그 평가를 유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소설 속에서 공감이 가는 장면은 자신의 여정과 느낌을 초등학교 동창인 '스즈키'에게 계속 알려 주는 부분이다. 소설 전반을 걸쳐 착 가라앉은 톤의 나레이션 때문에 주인공의 모습이 다소 성숙해 보이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남성 호르몬으로 충만한 육신의 내면에는 어쩔 수 없는 청춘의 치기가 도사리고 있음을 이 에피소드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