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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코넬 울리치'는 한국 미스터리 독자에게는 본명보다는 '윌리엄 아이리쉬'라는 필명으로 더 친숙하다. 이는 그가 필명으로 발표된 '환상의 여인'외 다른 작품들, 예컨데, '검은 옷의 신부', '상복의 랑데뷰', '검은 커튼' 등과 걸작이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았거나 출판되었더라도 예전에 절판되어 쉽게 구해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1930년대부터 1968년 사망할 때까지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생생한 서스펜스를 추구하는 작품을 백여 편이나 발표하여 '누아르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누아르'는 프랑스어로 '검은, 어두운 혹은 우울한'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소설이나 영화라는 명사와 함께 쓰이면 이 단어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누아르 스타일은 두려움, 죄와 외로움, 몰락과 절망, 성적인 망상과 사회 부패, 세상은 우리를 제물로 삼는 악한 세력에 의해 통제당한다는 느낌, 해피엔드를 거부하고 가혹한 운명에 의해 해결되는 것을 선호하지만, 항상 깜짝 놀랄 만한 시적인 언어나 영상으로 바뀌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그가 1945년에 '조지 호플리'라는 필명으로 발표하였고,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가 선정한 '최고의 스릴러 70편'에 선정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서정적인 제목을 달려 있지만, 차갑고 어두운 도시의 밤을 배경으로 서서히 조여 오는 죽음의 공포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두려움을 코넬 울리치 특유의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로등 불 빛만이 차가운 도시의 밤, 젊은 형사 '숀'은 우연히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는 '진 레이드'라는 이름의 여자를 구하게 된다. 간신히 그녀를 진정시키고, 부호의 외동딸인 진을 자살로까지 몰고 간 사연을 듣게 된다.
'진'은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로부터 아버지 '할란 레이드'가 출장 길에 비행기를 타서는 안 된다는 예언 비슷한 이야기를 듣지만 무시해 버린다. 그런데, 할란이 예약한 그 비행기가 사고로 추락하여 탑승자가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실제로 발생하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탑승직전 공항에 도착한 전보를 처리하느라 비행기를 타지 않아 화를 면한다. 할란은 진으로부터 비행기 추락사실과 자신의 생존이 이미 예언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언을 했다는 '톰 킨스'라는 인물을 찾아간다. 처음에는 톰 킨스를 믿지 못했던 할란과 진이지만, 그의 예언들이 하나 둘씩 맞아떨어지자 점점 그에게 빠져 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은 3주 안에, 정확히 자정에, 그것도 사자의 아가리 아래에서 죽을 것이다"라는 톰 킨스의 예언은 할란의 정신을 처참하게 망가뜨리고, 곁에서 이를 지켜보며 괴로워하던 진은 자살이라는 충동적 행동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숀은 그가 존경하는 상관인 '맥마너스'에게 진을 데려가 도움을 요청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할란을 구해내기 위하여 그와 동료들은 그 동안 톰 킨스가 행한 예언의 진실에 대하여 조사하기 시작한다.
오래 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이 소설은 무척 흥미롭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섬뜩한 공포와 긴장, 흥분을 이끌어 내는 코넬 울리치의 진가가 잘 드러나 있고, 고전 특유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