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올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 '이시모치 아사미'는 본격 미스터리를 추구하는 작가로 읽힌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를 시작으로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와 '달의 문'에 이르기까지 짧은 기간에 연이어 나온 세 편의 작품을 모두 읽은 느낌이 그렇다. 본격 미스터리는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복잡한 사건이 결말에 이르러 인과관계에 딱 맞게 설명되어질 때 맛보는 짜릿함이나, 예기치 않는 결말이지만 충분하게 '납득'될 때 느껴지는 희열이 매력이다.

전작에서도 그렇게 느꼈지만 이 작가는 뭔가 기대감은 주지만, 머리나 가슴 어느 한쪽으로도 속 시원하게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이 소설은 오로지 미스터리로서의 재미 측면에서만 보면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와 '귀를 막고 밤을 달린다'의 중간 정도 위치에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2005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에 랭크되었고, '달의 문'은 2003년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후보작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보는 관점은 비슷한가 보다.

이 소설에는 3개의 상황이 그려지고 있다. 첫째는 평범한 3인조 남녀에 의한 항공기 납치이고, 둘째는 납치된 항공기안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사건이고, 셋째는 납치범이 따르는 '스승님'에 의한 개기월식 이벤트가 그것이다.

'사토미', '마카베', '가키자키'는 자신들이 진심으로 추앙하는 스승님이 운영하는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심한 마음의 상처를 스승님의 도움으로 극복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스승님은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불순한 목적으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거나 마음의 상처로 말미암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른바 '등교거부' 아이들을 위한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스승님이 유괴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어 버린다. 이러한 사태를 맞아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 왔던 세 사람이 선택한 방법은 '항공기 납치'라는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여기에서 일차적인 의문이 생긴다. 단순한 무고 때문에 발생한 돌발적인 구속사건에 항공기 납치라는 어마어마한 일로 대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을 소설 말미까지 끌고 가는 힘을 보여 주어야 할 텐데 작가는 중도에 그 끈을 놓아 버린 점이 아쉬웠다. 또한, 항공기 납치 과정의 현실성 여부는 이 소설의 본질이 항공기 납치에 중점을 둔 스릴러는 아니라고 보았으므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몇 군데 허술한 점이 보였다.

납치범에 의해 통제되고 있던 항공기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그 해결 과정이야말로 본격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있는 이 소설의 핵심부분이다. 피해자는 '사토미'에게 아기를 인질로 빼앗긴 여자였고 장소는 화장실이다. 피해자는 혼자 화장실에 들어갔고 정황상으로 결코 자살로 여겨지지는 않는데 손목에 상처를 입고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돌발적인 사태를 맞아 납치범 3인조는 마침 그 주위에 있던 한 남자를 지목하여 그로 하여금 사건을 조사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자마미'라는 별명으로만 불리는 남자는 냉철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는 몇 가지 가설로 납치범이 서로를 의심하게 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하기도 하지만, '마카베'를 주요 파트너로 삼아 하나씩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해명하는 과정 속에서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트릭 자체가 기발한 것은 아니지만, 납치된 비행기 속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납치범으로 부터 의뢰를 받은 아마추어 탐정이 그것을 해결한다는 설정은 참신하였다.

마지막 '개기월식 이벤트'는 납치행위와 그들이 요구사항으로 내건 조건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근거가 되는 중요한 요소인데, 그 이유가 미리 어느 정도 설명되기 때문에 그 긴장감이 덜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은 이 소설이 판타지로 빠지지 않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이지만 과연 그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약했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남지만 본격 미스터리로 읽을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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