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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2006년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선택' 이후 소설부문 베스트셀러에 추리소설이 상위권에 오르기는 참 오랜만의 일이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 곧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몇몇 미스터리 사이트에서 화제가 되었고 서평도 줄줄이 올라왔다. 스포일러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읽지 않은 추리소설에 대한 서평은 대충 훑어보고 마는데, 이 소설은 믿을 만한 미스터리 매니아 사이에서도 대체로 평이 좋아 필독서로 찜해 놓았다가 마침내 읽었다.
자세한 출판사의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이 소설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기대는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도 출간이후 '제29회 소설추리 신인상', '2008년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2009년 서점대상' 등 독자와 평단의 호평을 함께 받은 화제작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성공한 작품이 한국에서는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왕왕 있는데 이는 원작과의 출간시차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원작이 발표된 당시에는 참신한 기법과 당대의 사회적 이슈를 잘 반영하였더라도 몇 년의 시간이 경과하면 웬지 낡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경우에는 거의 원작과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 소개되었기 때문에 소설의 배경이나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생뚱맞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책 읽기의 몰입감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사건자체가 복잡하다거나 기발한 트릭을 구사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원동력은 먼저 정제된 문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소설 초반에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강한 임팩트를 독자에게 안기고, 충격적인 사건 이후의 진행과정을 각기 다른 화자의 시각을 통해 묘사하기 때문에 단순한 사건에 숨어 있는 단순하지 않는 진실들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성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이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화자의 주관적인 감정이 많이 개입되어 있는 점이 다르다.
중학교 여교사로 근무하는 '유코'는 봄 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담임으로써 이런 저런 소회를 얘기하던 중 얼마 전 불행한 사고로 죽은 자신의 어린 딸이 실은 살해 당했고, 그 범인은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누군가 중에 있다는 폭탄발언을 한다. 시간마저 얼어 버린 듯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감정을 절제하고 담담하게 사건의 전모를 들려준 후 유코는 법률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어린 범인들에게 자기만의 방법으로 죄의 대가를 묻는다. 이상이 제1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처럼 제1장 '성직자'는 어린 딸을 잃은 유코의 고백으로 이루어진다. 시종 담담한 어조로 묘사되는 불행한 사건의 전말과 유코가 선택한 결말은 정말 충격적이다. 제2장 '순교자'는 담임 선생님이 충격적인 고백과 함께 교단을 떠난 후 남겨진 학생들 사이에서 1학기 동안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반장인 '미즈키'의 시각으로 묘사되고, 제3장 '자애자'는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B의 어머니가 쓴 일기형식으로 충격적인 그 사건의 후일담이 다른 각도에서 반복된다. 제4장 '구도자'에서는 소년B가 알고 있는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고, 제5장 '신봉자'는 소년A의 시점에서 사건이 재구성된다. 그리고, 마지막장인 '전도자'에서는 다시 유코의 고백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전복된다.
이 소설은 원래 '성직자'라는 제목의 단편으로 발표되었다가 장편으로 개작하였다고 하는데, 단편 추리로써 '성직자'는 소름 끼칠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하여 2장에서 6장에 이르는 부분은 독자들의 선호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이 소설이 처녀작이라고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첫 작품을 이 정도 수준으로 써낼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재능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다짐과 같이 데뷰작이 대표작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