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론 커리 주니어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이다. 마치, 인간에게 내리는 신의 목소리를 방불케 하는 전지적 화자의 나레이션이 소설의 중심을 잡고, 주인공 '주니어'와 그를 둘러 싼 인물들인 '에이미', '로드니', '데비', 존'은  1인칭 시점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지구종말은 그리 놀라울 것도 없는 소재이지만, 작가는 별개처럼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결국 한 곳으로 수렴되는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와 독특한 2인칭 문장을 구사하며 판타지와 성장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참신한 스토리텔링을 완성하였다.

한 남자가 어느 산의 꼭대기에 홀로 앉아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고 있다. 2010년 6월 15일 해왕성 근처 카이퍼 벨트에서 떨어져 나온 혜성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 2,800만개 이상의 폭발 에너지로 지구와 충돌하게 된 날이 마침내 다가온 것이다. '주니어'라는 이름을 가진 서른 여섯 살 남자는 지구상 다른 모든 인간들과 동일한 운명을 맞이하고 있지만, 수십 억 인간 중에서 유일하게 지구종말의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우선, 이 시기를 즐겨라! 자신의 생존을 거의 전적으로 타인에게 맡길 수 있는 다시 없을 시기이니" 엄마의 자궁 속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자라나는 그 순간부터 주니어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듣는다. 그 목소리는 태아나 아기가 알아야 할 것에서부터 무시무시한 지구종말의 예고까지를 망라하고 있었다.

개인에게 있어 종말의 의미는 죽음이다. 죽는다는 것은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둘러싸고 있던 모든 세계가 사라진다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 금기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자신의 선택으로 종말의 순간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죽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세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 주니어에게 닥친 운명은 자신의 소멸과 세상의 종말이 동시에 찾아올 뿐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그냥 주어졌다는 것이다.

"어젯밤에 나는 울 뻔했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여느 때처럼 레드삭스 달력에 X 표시를 한 다음, 어차피 29년 274일 뒤에는 모든 것이 사라질 텐데 형이 마약 중독자라는 사실이 뭐 그리 대수인가 하고 생각했다" 이러한 문장에서 독자들은 어린 주니어가 장차 짊어져야 할 고독과 허무의 사슬을 가슴 시리도록 느낄 수가 있다.

이 소설은 세상종말의 비밀을 안고 살아야 할 남자의 성장 이야기임과 동시에 열 여섯에 처음 만나 기나긴 인연을 이어 가는 연인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알코올과 약물로 서서히 붕괴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가슴 뭉클한 가족 이야기 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소설은 묵시론적인 판타지이다. 왜, 이 작품을 판타지라고 하는지는 직접 읽어서 확인해 보기를 권유한다. 그리고, 미스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스포일러'는 꼭 피해야 한다. 이야기 구조 자체를 김 빠지게도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운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라고 주인공에게, 나아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그 '목소리'의 의미가 반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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