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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의 불행학 특강 - 세 번의 죽음과 서른 여섯 권의 책
마리샤 페슬 지음, 이미선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신세대 작가라는 '마리샤 페슬'의 데뷰작으로 '새로운 세대를 위한 놀라운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발표 그 해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10대 소설로 선정된 화제작이다. '특강을 위한 커리큘럼'이라는 형태를 취하여 서른 여섯개의 '강의'와 '기말고사'라는 기발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강의 마다 필독서를 제시하고 있다. 필독서는 1강의 '오셀로'부터 36강의 '변신이야기'까지 고전과 현대물을 막론하고 주로 불행과 비극을 다룬 35편의 문학작품과 1편의 가공작품으로 되어 있는데 작가는 필독서의 내용이나 주제가 소설 속의 이야기와 교묘하게 얽혀 있도록 장치하고 있다.
예를 들면 1강의 필독서는 '오셀로'인데, '세익스피어'의 원작 속 오셀로 장군은 장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인 '데스데모나'와 결혼 후 함께 전쟁터로 떠난다. 하지만, 부하 '이아고'의 음모에 빠져 질투에 눈이 멀게 된 오셀로는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비극을 맞는다. 소설 속 주인공 '블루'의 어머니 '나타샤'도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 세살 연상에 고아로 태어난 '가레스 반 미어'와 결혼했지만 자동차 사고로 길지 않는 생을 마감한다.
필독서 뿐 아니라 이 소설 속에는 수 많은 문학, 음악, 영화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작품에 붙어 있는 방대한 주석들은 '블루'의 내면과 사건의 인과를 재구성해 나가는 동시에 복선으로도 깔린다. 작가는 학창시절 방학이면 엄청난 '필독서 리스트'를 만들어 책을 읽게 한 어머니의 특별한 훈육으로 문학,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지적 경험을 쌓으며 성장하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폭 넓은 경험과 지식이 주인공 '블루'를 '르네상스맨'과 같은 인물로 형상화시킨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이야기의 흐름은 천재소녀 블루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전국을 떠돌며 지낸다. 저명한 정치학자인 아버지는 "여행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라든지, "가만히 있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어리석음은 곧 죽음이다"라는 신조를 실천하는 인물로 이 때문에 블루는 여섯 살부터 십 년 동안 미국 서른세 주의 서른아홉 군데 도시를 떠돌며 살았다. 마침내, 대학 진학을 앞두고는 '스톡턴'이라는 조그만 도시에 정착하여 명문이라는 '세인트 골웨이 고등학교'에서 3학년을 맞는다. 이 곳에서 블루는 이전과 다른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친구들은 블루를 자신들의 모임인 '블루블러드'에 초대한다. 블루블러드의 일원이 된 블루는 이 모임을 은연중에 조정하는 '한나' 선생을 만나,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도 눈을 뜨고 아버지가 '한심한 10대들의 일탈'로 치부하는 여러 가지 사건도 경험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의 집에서 열린 가면무도회에 초대받은 '스모크 하비'라는 남자가 익사하는 사건이 일어나다. 얼마 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떠난 캠핑에서는 나무에 목이 매달린 채 죽어 있는 한나를 발견하게 되어, 두려운 마음에 한밤 중에 혼자 산을 뛰어 내려오다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까지 하고, 친구들에게 따돌림까지 당하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한나의 죽음을 조사하던 와중에 그녀의 전부와도 같은 존재인 아버지마저 실종되기에 이른다.
이 작품은 시종 현학적인 대화와 방대한 주석, 복잡한 플롯과 다양한 등장인물에도 불구하고 문장은 경쾌한 문체와 기발하고 재기 넘치는 비유가 잘 구사되어 있으며, 시니컬한 유머가 깔려 있다. 본격 미스터리로 읽기에는 미스터리 구조가 다소 약한 면이 없지는 있지만, 미스터리로 읽지 않더라도 초반부만 잘 넘긴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