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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작가 '마키메 마나부' 자신이 학창 시절을 보낸 도시 '교토'를 배경으로 스물 언저리 청춘들의 연애담 여섯 편을 묶은 연작 단편집이다. 청춘들의 연애담은 풋풋하고 작가의 문장은 깔끔하다. 복잡하고 심각한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고 싶을 때든지 뭔가 상큼한 기분전환용 읽을거리가 필요할 때 읽으면 좋을만한 작품이다.
대학에만 들어가면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 멋진 연애를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부푼 적이 있었을 것이다. 막상 대학생이 되어서는 곧, 그 허황된 꿈을 접고 말지만... 첫번 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다코'와 '쇼코'라는 두 명의 여학생도 마찬가지였다.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가 말이 통할 수 있는 사이임을 직감하고, 둘은 단짝친구가 된다. 변변한 연애 한 번 해 보지 못한 채로 맞은 크리스마스 이브, 둘은 술김에 모종의 맹세를 하지만 그 맹세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화자는 '사토시'라는 고등학생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새로 들어 온 '후미'는 촌스러운 외모에 목소리도 작고 말수도 적은 한마디로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런 타입이다. 그런데, 점점 연상의 그녀에게 마음이 끌리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기만 하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에피소드가 좋았는데, 전차 안에서 한 눈에 반한 여학생에게 '키이츠'의 시집을 찢어 한 편의 시로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모짱'이라는 인물도 마음에 들었고, 예기치 않은 '반전'도 괜찮았다.
네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도모코'는 자신이 재수를 하는 동안, 먼저 대학생이 되어서는 새 여자를 사귀고 너저분한 변명까지 늘어 놓는 남자친구와 헤어졌었다. 그런데, 새로 사귄 여자와 잘 되지 않는지 자기에게 뻔질나게 전화질을 해대고 있는 뻔뻔한 전 남자친구를 냉정하게 대하지 못한다.
다섯 번째는 직장 동료의 주선으로 나간 미팅에서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알았던 사람과 재회한 에피소드인데, 시간이 흐른 후 용맹한 '창'과 같았던 남자는 온후한 신사로, 차가운 '방패' 같았던 여자는 부드러운 숙녀로 변해 있었다.
여섯 번째는 여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다마미'가 창고에서 발견한 오래된 나무 궤를 매개로 비슷한 또래의 남자와 시공을 초월한 신비한 접속을 가진다는 에피소드인데 위의 이야기들과는 다소 이질적이었다.
작가가 포착한 젊음의 단편들과 연애 에피소드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고, 발랄한 묘사와 경쾌한 문체도 비슷한 유형의 소설들에서 익히 보아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여섯 편의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호루모'라는 판타지적인 장치일 것이다.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고 특별한 '동아리' 회원에게만 보인다는 몸길이 20센티 정도의 귀신을 부려서 겨루는 비밀스러운 '호루모'라는 경기가 천 년이란 긴 세월동안 이어져 왔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을 작가는 시치미를 뚝 떼고 천연덕스럽게 독자들에게 내민다. 그리고는 '호루모'에 관계된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과 지극히 현실적인 연애담을 경쾌하고 유머스럽게 묘사한다. 그러므로,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이 서로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함께 이러한 부조화야말로 오히려, 이 소설을 매력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