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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고진하 글.사진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그냥 길 떠나는 여행이 아니야, 巡禮야"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배낭을 등에 지고 길을 나서며 시인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시인이 향한 곳은 거대한 대륙 '인도'였다. 시인이 영혼의 순례를 위해 인도를 찾는 것이 흔하지는 않지만,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시인 '고진하'는 신학을 전공한 현직 '목사'이기도 하다. 목사의 신분으로 기독교 성지가 아닌 인도를 향해 영혼의 순례 운운하면, 정통파를 자처하는 힘 있는 사람들은 벌써 눈초리가 곱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삼십대에는 성서와 더불어 老莊에 탐닉했고 사십대부터는 '우파니샤드'의 깊은 맛에 빠져 들었다고 한다. 그는 종교간의 경계를 넘어 광활한 영성의 바다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유영하며 살기를 원하는 인물이다. 인도어 중에서 "나마스카!"라는 말의 뜻은 '내 안의 신성이 당신 안의 신성을 알아봅니다' 라는 뜻의 인사말이라고 한다. 자유로운 영혼이 유영하기에 '인도' 만한 영혼의 대지가 또 있을까?
일견 여행기의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인도의 심원한 정신세계를 탐구하고자 그는, 자신을 매혹시켰던 '우파니샤드'를 활자에서 빼어 내어 인도의 살아 있는 풍경과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연과 뒤 섞어, '으뜸의 가르침'의 고갱이를 온몸으로 만나고 자신 속에 내면화를 시도한 순례의 기록이다. 그는 "활자와 풍경이 내 안에서 포개질 때 나는 '앎'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고, 활자와 풍경이 포개지지 않고 어긋날 때에도 '모름'의 신비 앞에 내 가슴을 닫지 않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우파니샤드'는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물음에서 시작된 인도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특유의 사유체계이다. 가까이(Upa) 아래로(ni) 앉는다(sad)는 의미 그대로, 스승이 아끼는 제자를 가까이 앉히고 은밀히 전해주는 지혜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는데, 기원 전후로 성립 되어 오랜 세월 인도의 정신세계와 결합하여 현재 전해지는 종류만 해도 200여 가지나 된다고 한다. 다른 문명을 대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과 지혜의 가르침을 갈구하는 고단한 발길을 따라 가다 보면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조금은 '우파니샤드'의 몸통을 더듬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인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상반된 인상을 '신들의 나라'와 '인간의 땅'으로 절묘하게 표현한 지은이의 사유의 깊이가 믿음직하다. 그리고, 지나친 꾸밈없이 안정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필력도 좋다. 가독성이 좋은 읽기 쉬운 글이지만, 가령 "바람처럼 떠돈다 하여 '바울'이라 불리는 음유시인들! 신의 사랑에 미쳐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며 노래하고 춤추는 광인들!"과 같은 문장은 시인이 쓴 글임을 실감하게 한다. 아름다운 여행기이자,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 에세이로 읽는 내내 즐거움을 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