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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탑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모리미 도미히코"는 1979년생으로 젊은 작가이다. 그는 2003년에 이 소설로 제15회 판타지노벨 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뷰하여 현재 "교토의 천재", "21세기 일본의 새로운 재능" 등의 찬사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일본 문단의 기대주이다. 그는 이 소설을 필두로 자신이 학창시절부터 살아 온 교토를 배경으로 괴짜 대학생들의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을 독특한 문체로 그려 낸 소설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이 소설 속 에피소드들은 실제로 작가가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이런 일이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이야기한 것을 동아리 노트에 긁적인 내용이었고, 주위 사람들이 읽고 웃는 모습을 보고 소설로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소설 속 여러 에피소드들이 어떤 줄거리를 가지고 이야기가 심화되어 가기 보다는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의 나열로 그쳐져, 소설의 내용 자체는 정말 별개 없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교토대학 농학부 휴학생인 "나"는 예전 애인이었던 "미즈오"를 연구하기 위해 관찰을 거듭하며 240장에 이르는 대작 리포트를 작성 중에 있다. 미즈오는 동아리 후배로 연애지상주의를 경멸하는 주인공이 한때 연애 착란상태에 빠져 부끄러운 줄 모르고 행복에 겨워하는 우를 저지르게 한 장본인이다. 그녀로부터 일방적인 결별을 통보받고 그는 자신의 조사능력과 연구능력, 그리고 상상력을 활용하여 계속 미즈오를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라는 것이 묘하여 주인공에게는 신성한 연구이지만 제3자 예컨데, "연적"이 보기에는 영락없는 스토커와 진배가 없다.
주인공의 주위에는 괴팍하고 희귀한 면에서는 결코 주인공에게 뒤지지 않는 친구들이 3명 있는데, 주인공을 포함하여 일명 "사천왕"이란 불리는 이들을 경박한 센티멘털이나 로맨틱한 상상은 배제하고 리얼한 일상을 과감하고 꿋꿋하게 살아가자고 맹세한 동지들이다. 주인공의 입을 빌어 이들 사천왕을 묘사하면, "한결같이 여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혹은 여성이 필요로 하지 않는 사내들로, 남자들만의 망상과 사색으로 한층 더 높은 곳을 지향하며 나날이 정진을 거듭해 오고 있는 중이다. 그리하여,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가 버린 탓에 이제 다시 내려올 수도 없고, 무서워서 도저히 내려올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남자들끼리만 미친 듯이 포크댄스를 춰 대고 있다." 돌려서 얘기하지 않고 바로 말하자면, 그들은 빼앗길 염려도 없는 순결에 전전긍긍하며 세계 평화와 건전한 사회질서를 위해 신작 성인비디오를 뒤적이고, 이율배반과 자기모순에 허덕이며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 우스꽝스러운 사내들이다.
이 소설은 시종 소위 "크리스마스 테러"를 앞둔 12월, 정말 별 볼일 없는 백수의 일상을 고상한 어휘와 의고체를 구사하여 고풍스럽게 묘사되고 있는데, 등장인물들의 비대해진 내면에 비해, 시시하고도 하찮은 일상이 주는 어긋남이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면서 펼쳐지고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러한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구조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지루하지는 않을 정도였고, 작가의 후속 작품도 읽을 생각이 들었다.
사실 "빛나는 청춘!" 어쩌고들 하지만 실제 우리들 청춘도 이렇게 시시하고 평범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