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선생
조흔파 지음 / 산호와진주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전집류 세계 명작은 거의 다 읽어 치우고, 새로운 읽을 거리를 찾을 무렵 어디에서 처음 보았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학원 명랑소설이라는 요상한 책을 발견하고는 곧 그 세계에 매혹되었다. 하드 커버로 근사했던 명작동화와는 달리 얇은 표지에 종이 질도 별로 좋지 않았던 그 책들은, 동화 속 세계가 아니라 마치, 나와 내 주위에서도 있을 법한 현실 속 이야기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시절에 걸쳐 좋은 벗이 되어주었던 그 책들이 나에게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부모님이 판단하여 사 주신 책이 아니라, 나의 돈으로 내가 직접 고른 최초의 책 들이었다는 것이다. 책을 고르는 즐거움, 책을 사는 기쁨을 알려 준 책들이었다.

참 많이도 읽었었는데, 조흔파, 최요안, 오영민 작가 선생님의 이름이 생각 난다. 아마도 조흔파, 최요안 선생의 작품 속 주인공은 나 보다 일찍 태어난 듯 했고, 요영민 선생의 주인공은 나와 비슷한 듯 했다. 아무튼 얄개전, 억만이의 미소, 아스팔트에 트는 싹, 쌍무지개 뜨는 언덕, 나는 둘, 남궁동자, 무지개 꽃 등 아직도 그 제목들과 등장인물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런데, 조흔파 선생의 "에너지 선생"이 복간되어 출간되었다. 반가운 마음이 얼른 집어 들고 와서는 느긋한 마음으로 읽었다. 천방지축 개구쟁이 소년 "수동이"네 집으로 새해 첫 날에 에너지 선생이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첫 장면부터 지극히 70년대적이다. 아버지의 은사이자, 결혼식 주례자이자, 네 아이의 이름까지 지어준 에너지 선생은 집안의 가풍을 바로 잡는다면서 몇 가지 포고령을 내린다. 그 때문에 등교할 때면 항상 타고 다니던 자가용 대신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게 된 수동이는 버스 안에서 예쁜 여학생을 만나게 되고, 단 번에 반해 버린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미나"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자기집 자가용 기사 아저씨의 딸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수동이와 미나의 이야기를 큰 축으로 하지만, 수동이의 가족들을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개구쟁이 소년 수동이의 요절 복통한 사건들이 어우러지며 전개된다. 그리고, 사건의 중심에 에너지 선생이 턱하고 버티고 서 있음은 물론이다.

어쩌면 스무 몇 해 전에 이미 깔깔거리며 읽었을 지도 모르는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며 오래 전 친구를 다시 만나는 듯 즐거웠다. 그와 동시에 이제 더 이상 20세기가 아니고, 21세기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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