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밀사 - 일본 막부 잠입 사건
허수정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른바 "팩션" 장르로 분류될 이 소설에서 Fact는 효종 6년인 1655년 정사 "조형", 부사 "유석", 종사관 "남용익" 등 총 485명이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4월20일 한성을 출발하여 이미 부산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본 "쓰시마 번"의 안내를 받으며, 6월9일 부산을 떠나 일본으로 향한다. 일단 "오사카"까지는 배로 이동을 했는데, 가는 도중에 "쓰시마" "시모노세키" "우시마도" "효고" 등 여러 곳에 정박하여 각 번의 번주들의 접대를 받았다고 한다. 막부가 있던 "에도"에는 10월2일에 도착하였고 이 때 국서를 전달하는 행사와 화려한 향연이 베풀어졌으며 11월1일에 귀도에 올랐다고 전한다.

성공적인 "팩션"의 관건은 일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지은이의 상상력에 기반한 "설정"이 얼마나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가에 있다. 이 소설의 설정은 효종의 "북벌"과 나이 어린 쇼군 "이에쓰나"를 둘러싼 권력 투쟁이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날 밤 효종은 종사관 "남용익"을 은밀히 불러 북벌에 대한 자신의 흉중을 털어 놓으며 북벌의 성공을 위해서는 후방의 적 일본을 우리편으로 돌려 놓을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현재 일본의 권력구도를 면밀히 파악하여 조선과 손을 잡을 수 있는 권력자에게 자신의 밀서를 전하라고 명령한다. 한편, 도쿠가와 막부의 4대 쇼군 "이에쓰나"는 1651년 11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그래서, 3대 쇼군의 이복동생으로 그의 신임을 받았던 "호시나 마사유키"는 막부체제 안정화와 어린 조카를 보좌하기 위해 막부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인물이다. 마치 조선의 "단종"과 "수양대군"을 연상시키는 관계이다. 또 한 명의 권력자는 역시 3대 쇼군의 총애를 받았고 그를 도와 막부체제를 확립하는데 큰 공을 세운 "마쓰다이라 노부쓰나"이다. 그는 어린 쇼군을 위해 "호시나"를 견제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통신사 일행이 교토에 도착하자마자 큰 사건이 터지고 만다. 막부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향연을 끝난 다음날, 쇼군의 무사인 "기요모리"가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 날 밤 술자리를 함께 한 사람은 "기요모리"외 젊은 유학자 "이토 진사이" 승려 "도겐" 그리고 조선의 종사관 "남용익"과 그의 통역을 맡은 역관 "박명준"이었다. 모두들 술에 취해 지난 밤의 기억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뜻밖에도 도겐은 남용익이 그를 살해했다고 증언한다. 남용익은 술자리에서 기요모리와 격한 언쟁까지 벌였던 터라 꼼짝없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억류되기에 이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남용익은 역관 박명준에게 왕의 밀서를 건낸다. 박명준은 남용익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조선통신사의 역관 "박명준"이란 인물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는 41살 중년의 사내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의 후예로 10살까지 일본에서 살았고, 조선으로 귀환하고 나서도 이런저런 일로 일본과 관계를 하며 살아와 누구보다도 일본의 사정에 밝은 인물이다. 그는 사대부 특유의 허위의식 없이 그를 살갑게 대해준 젊은 종사관을 위해 적극적으로 이 사건을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과거 자신이 일본에 있었을 당시에 인연을 맺었던 인물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그 배후에 조선과 일본을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음모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그 배경을 17세기 일본으로 확장한 짜임새 있는 팩션이고 흥미롭게 읽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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