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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은경 옮김, 이애림 외 그림 / 이레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된 때가 언제부터였는지?
한글을 깨치고 난 후 나는 구슬치기, 딱지놀이보다 책 속의 인물들과 그들 앞에 닥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훨씬 재미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곧 바로 책 속의 세계에 매혹되었다. 70~8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내고 책 읽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 속에 있을 “계몽사” “금성출판사” “계림문고”와 가까워졌다. 때론 친구들과 “홈즈”냐 “뤼팽”이냐로 실랑이 하기도 하고, “쿠오레”에 나오는 아이들과 나의 학교생활을 비교하며 나름의 도덕관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 시절 그토록 나를 매료시켰던 책들이 “완역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십오소년 표류기”등 쥘 베른의 작품이 나오고, “걸리버 여행기” “홈즈시리즈” “뤼팽 시리즈” “아라비안 나이트” “서유기” 등이 아동용 축약본이 아니라 온전한 모습 그대로 출간되었고, 추억을 다시 읽듯 빠짐없이 새로 읽고 있다.
나는 “행복한 왕자”가 싫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행복한 왕자”가 그려낸 그 비극적 세계가 싫었다. 세상은 착은 사람과 악한 사람만이 있고 착한 사람은 결국 행복해야 한다는 동화적 세계관에 익숙했던 아이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씩 내어 놓고 자신을 도와주던 “제비”까지 죽음으로 이끈 그의 세계가 두려웠다. 단지 선생님과 엄마에게 꾸중 듣는 것이 “비극”의 전부였던 아이에게 행복한 왕자에서 그려낸 실제와 같은 생생한 비극의 세계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졌던 것 같다. “이봐, 소년! 인생은 결코 동화가 아니라네”라는 나지막한 속삭임에 귀를 막고 한사코 듣지 않으려 한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세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인용되고 널리 사랑받는다는 영국 작가이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 극작가로 이름을 떨쳤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단 한 편의 장편소설로 문학사에 기념비적인 존재로 남은 사람이다. 청년시절부터 사교계의 타고난 재담꾼으로도 이름 높았고 “유행어 제조기”라 할 정도로 재기발락하고 촌철살인의 경구를 구사한 인물이다.
다시 나온 “오스카 와일드의 환상동화”를 읽었다.
그는 “환상동화”에서 권선징악 구조를 가진 기존 아동용 “동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충격적인 결말을 통해 청교도적 질서와 기독교적 세계관에 갇혀있던 “개인”을 끌어내고 있으며, 그의 사회철학과 예술철학을 동화 속에 투영하고 있다.
먼저 “유미주의”이다. “별아이” “왕녀의 생일” “어부와 그의 영혼” “젊은 왕”의 주인공들은 모두 아름다운 것은 무조건 찬양하고, 추한 것은 혐오하며 짓밟는 유미주의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러한 유미적 취향은 이야기 속에서 결코 완전하게 충족되지 못하고, 오히려 주인공의 삶을 비극으로 몰아가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환상동화들에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동성애”적 결속감이다. “행복한 왕자” “나이팅게일과 장미” “이기적인 거인”에는 한쪽 캐릭터가 “제비” “나이팅게일”로 의인화되거나, “천사”라는 설정이기 하지만 주인공의 유대 관계는 점차 친밀함을 넘어 애정으로 발전한다.
이 책이 이미 나온 다른 “완역본” 기획들과 다른 점은 독특한 책의 “비쥬얼”이다.
스타일이 다른 4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각기 다른 해석으로 9편의 이야기에 그림을 입혀내었다. 책 속에 삽입된 일러스트는 원작의 이미지와 일러스트레이터의 독특한 개성이 살아 있는 “작품”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