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아라비안 나이트
리처드 F. 버턴 지음, 김원중.이명 옮김, 마르크 샤갈 그림 / 세미콜론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신밧드, 알리바바, 알라딘 등 "아라비안 나이트" 속의 무궁 무진한 듯 펼쳐지는 이야기의 바다에 빠져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 개인적인 기억으로도 "아라비안 나이트" 속의 이야기들이 "그림 동화"나 "안데르센 동화"에 비해 몇 배는 더 재미있었다. 몇 년전 "범우사"에서 "리처드 버턴"판을 번역한 10권 짜리 "아라비안 나이트"를 손에 잡은 적이 있다. 동화의 당의정을 벗긴 "아라비안 나이트"는 과연 "고전"이었다. 겨우 2권만 중간 부분까지 읽는 것으로 중도포기하고 말았다.

다시 서점 신간 코너에서 "아라비안 나이트"를 만났다. 이번에는 "샤갈"이 함께 있었다. 얼핏 보면 미술책을 방불케 하는 책 판형과 환상적인 그림으로 장식된 양장본 표지까지 책이 참 이쁘게도 나왔다.
책 속에는 "샤갈"이 제작한 컬러 석판화와 드로잉 등 총 26점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환상적인 터치와 관능적인 판타지 그리고, 놀랄 만큼 생생한 색채가 어우러진 석판화는 194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판화상을 수상하였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 보기에도 충분히 아름답고도 황홀하다.

샤갈은 1920년대 프랑스의 판화 출판업자인 "앙브루아즈 볼라르"에게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삽화를 그려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의 정서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색 석판화를 써야 하는데 자신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 당시는 거절하였다고 한다. 샤갈이 다시 이 작업을 착수하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에 망명 중 자신이 원하는 색을 제대로 재현해 줄 "알버트 카르먼"이란 인쇄업자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내, 1948년에 샤갈이 제작한 13장의 아름다운 컬러 석판화로 삽화를 입힌 "아라비안 나이트의 네 가지 이야기"가 출판되었다.

샤갈은 300여편에 이르는 "아라비안 나이트" 이야기 중에서 자신의 인생과 삶에 있어 중차대한 의미가 있는 4편의 이야기를 선정하였다. 본래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와 미국을 떠 돌던 그가, 사랑하는 아내를 폐렴으로 잃고 난 후 삶의 공백 상태에서 선택한 이야기는 "연인 사이의 불가분의 연분과 유대", "사랑의 운명적인 요소", "연인들의 이별과 재회",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담은 이야기"였다.

비록 10권짜리 "아라비안 나이트"를 2권도 채 읽어 내지 못했지만, 이 책은 주말동안 단숨에 읽었다. 예전에 약간 질리게 했던 "시"와 "노래"가 여전히 군데군데 나왔지만, 정말 쉽게 쉽게 페이지가 넘어갔다는 느낌이다. 샤갈의 환상적인 그림이 부린 조화인가? 물론 이 영향도 있었지만, 비밀은 번역에 있는 것 같다. 첫번째 "흑단마" 이야기를 "범우사"판과 대조해 보니, 훨씬 이야기가 추려져 있었다. 즉, "범우사"판에는 있으나, 이 책에는 빠진 부분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스토리가 장황하게 이어지고 호흡이 길어 다소 지루하였던 범우사판 보다 이 책이 훨씬 더 잘 읽혔던 것이다. 물론 무거운 구식문체를 버리고 요즘 감각에 맞는 경쾌한 번역 문체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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