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이미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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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모르는 관객이 자막이 뜨는 외국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동안 몇 번의 눈 운동을 해야 할까? 평균 1,200번이라고 한다. 화면 귀퉁이에 휙 스쳐 지나갔다 사라지는 자막을 읽으랴, 배우들의 표정이나 연기에 주목하랴, 배경 풍경을 따라가랴 쉴새 없이 눈과 귀를 열어 두어야 온전히 영화를 느낄 수 있다. 이럴 때면 외국어 (특히, 영어) 하나쯤 알아 듣지 못하는 처지가 한심하기 까지 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은이는 전문 영화 번역가이다. 90년대 이후 그의 손을 거친 영화들 몇 편만 나열하면 '포레스트 검프' '제리 맥콰이어' '아메리칸 뷰티' '인생은 아름다워' '뷰티풀 마인드' '굿 윌 헌팅'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식스 센스' '글래디에이터' 등 다양한 할리우드 영화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

지은이는 말하길, 자신의 생에 세 곳의 오아시스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길, 영화관, 영어 상영관이라고 한다. 이 책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쓴 '영화'에 대한 책이다. 자신의 번역작업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영화 번역의 여려움과 즐거움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내 인생의 영화'를 소개하고 예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삶의 지혜들과 영화를 통해 깨우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번역한 영화이야기 뿐 아니라 책 속에 나오는 숱한 영화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는 누구보다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느낄 수 있다.

누구에게나 한 편쯤은 자신의 마음 속에 간직한 영화가 있는 법이다. 나의 경우는 내가 태어난 해 세상에 나온 '더스틴 호프만' '캐서린 로스' 주연의 '졸업(The Graduate)'이다. 영화잡지를 사 모으던 교교시절 처음 알게 된 영화인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 있던 '더스틴 호프만'이 일상이 권태로운 연상의 유부녀의 유혹에 일시 굴복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찾아 쟁취하는 이야기"가 사이먼과 가펑클의 서정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펼쳐지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대학 1학년 시절, 당시 생활하던 학교 기숙사의 휴게실에서였다. 어느 날 조간 신문 AFKN 방송시간표에서 주말 심야시간에 방영되는 이 영화의 제목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기쁨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무도 없는 심야의 휴게실에서 영화를 보았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오랫동안 기다려 온 연인을 만나 듯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음악은 낭만과 청량함과 슬픔과 비애가 뒤범벅된 무엇이라 표현은 할 수 없었지만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꽉 차지는 느낌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즈음이면 누구나 '내 인생의 영화'를 마음 속으로 꼽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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