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부츠
사와무라 린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가타부츠(カタブツ)'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 또는 착실하고 품행이 바른 사람'
이라는 뜻 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이러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연작 단편집이다.
이들이 처해 있는 현실적 상황과 경험하는 구체적인 사건은 제각각 다르지만,
6편의 이야기를 모두 읽고 책을 덮는 순간 '가타부츠'에 대한 구체적인 형상이 잡히는 듯하다.
내가 느낀 그들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 악의가 없는 선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이미 짝이 있는 두 남녀 '가타부츠'에게 어느 날, 운명과도 같은 '사랑'이 찾아온다.
누구도 불행해지길 원하지 않는 이 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작품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금기시하는 지극히 일본적인 사고방식을 극대화한 듯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바라보는 작가의 의도가 단순히 인물을 묘사하기 위한 수단에 머물렀다면
'범작'이고, 일본인들의 정신구조에 대한 신랄한 풍자라면 '수작'이라 평가할 수 있다.  

모든 게 제멋대로에 사고투성이인 쌍둥이 여동생을 따뜻하게 돌봐 주는 '가타부츠' 사내는
여자친구와 여동생 사이에서 원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소설의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제목만으로 주인공의 심정이 절절하게 이해가 되는
'주머니 속의 캥거루'는 정말 잘 지은 제목이다.

3년 전 이틀간의 행적에 대한 기억이 없는 '가타부츠' 사내는
여자친구의 집으로 인사를 가는 도중 우연히 들른 바닷가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그런데, 3년 전 기억을 상실한 바로 그 날, 이 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였다는 말을 듣게 된다.
분명 그 곳은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곳인데 낯 익은 풍경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수록작품 중 가장 미스터리 장르에 가깝고, 깔끔하게 잘 마무리한 좋은 단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정형적인 '가타부츠'는 '무언의 전화 저편'에 등장하는 '다루미 간토'이다.
우연히 발생한 살인사건에 연루된 그에게 주위의 엄청난 비난이 쏟아진다.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전말을 따지는 친구에게 그는
"나는 양심에 꺼릴 만한 일은 하지 조금도 하지 않았어"라고 꿋꿋이 말하지만,
매일 새벽 3시 8분이면 어김없이 걸려 오는 '말이 없는 전화'에 괴로워한다.
그를 좋아하는 친구는 그 날 '다루미'에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전화로 그를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캐기 시작한다.

지은이 '사와무라 린'은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일본의 독서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숨은 진주'라고 한다.
우주를 무대로 한 절대적 비폭력 사회에서 일어난 살인과 그것의 의미를 찾는 작품이라는
'리프레인'으로 데뷔하였고, SF와 판타지 장르의 몇 편의 작품이 있다고 한다.

이 작품집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소박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싶어서 쓴 것입니다.
 써내려 가는 동안에 제가 생각하기에도 저 자신이 성실한 사람들에게 성원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는지 점점 알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성실함'이 가진 특징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결과야 어쨌든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까지도 포함해서, 성실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경의를 담아
 여러분께 여섯 편의 이야기를 보내려 합니다"


이 작품집을 '일상의 미스터리' 장르에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순수하게 미스터리적 관점에서만 볼 때 미스터리의 강도는 국내에 이미 소개된 '와카타케 나나미'의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에 비하면 다소 약한 편이다.
오히려 등장인물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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