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오기하라 히로시는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이라는 소설에서 처음 만났다.
순박하고 우직한 시골 사람들과 도시의 때가 적당히 묻어 있는 광고쟁이들이 뭉쳐서
깡촌 마을을 살리기 위해 '공룡'을 출현시킨다는 대단한 프로젝트를 런칭한 후 벌어지는 소동을
시종 유머스러운 필치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재미있는 작품이었지만,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을
꼭 읽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의 큰 반향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출간되자 마자 손에 잡은 이유는 '하드보일드'라는 제목 때문이다.
오랫동안 추리소설 애호가로써 이 소설의 제목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하드 보일드'는 '계란을 완숙하다'라는 뜻의 형용사이지만,
'비정 혹은 냉혹'이란 뜻의 문학 용어로 전의(轉義)되었다.
장르로서 '하드보일드'는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 또는
도덕적 판단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비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하는 것이다.
소설작법상 불필요한 수식은 일체 배제하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이러한 기법은 추리소설에서 '추리(퍼즐 풀기)'보다는 행동에 중점을 두는 유형으로서
'하드보일드파'를 탄생시켰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대쉴 해밋'의 1929년작 '플라이 페이퍼(Fly Paper)'에서 출발하였으나,
래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가 이 장르를 대표한다.

"필립 말로 시리즈는 정직한 한 인간이 부패한 사회에서 고귀하게 살아가려는 분투를 담고 있습니다.
 그 분투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는 빈털터리가 되거나 시니컬해지거나 삶에 관한 경구를 내뱉거나 간혹 정사를 즐기게 될 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는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처럼 사악해지고 남의 비위나 맞추며 무례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말로' 또래의 젊은 남자가 고상하게 부를 누릴 수 있을까요.
 부정하지 않고서야 성공할 수 없는 냉혹하고도 분명한 현실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타락시키지 않고
 말입니다" (챈들러가 존 하우스만(영화제작자)에게 보낸 편지中)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 필립 말로에게 배웠다'다 생각하는
하드보일드적인 삶을 꿈꾸는 서른세 살의 탐정이다.
하지만, 현실의 그는 '말로'처럼 멋있게 술을 먹지도 못하고, 애송이 젊은 양아치에게 조차 얻어맞을
정도로 싸움도 지지리 못하며, 다어너마이트 바디(body)를 가진 여자들이 곁에 붙지도 않는다.
그에게 떨어지는 탐정일이란 집 나간 애완동물 찾기 80%에 나머지는 불륜남녀 뒷조사가 전부다.

말끝마다 입에 올리는 필립 말로의 '어록'은 모조리 현실의 그와는 동떨어져 있다.
그런 그가 '다이너마이트 바디'에 대한 흑심으로 뽑은 여비서는 분위기 있는 목소리가 무색하게도
여든도 한참 넘은 할머니이다.

자칭 하드보일드 탐정과 다양한 경험과 내공이 있는 듯 없는 듯 아리송한 할머니 여비서 콤비는
길 잃은 개 '꼬맹이' 찾기에서 시작하여 우연히 살인사건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되고,
야쿠자까지 등장하는 본격 하드보일드적인 사건에 직면한다.

이 소설의 제목은 '하드보일드'이지만 가볍고 유쾌한 '코지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지은이는 등장인물 사이에서 오고 가는 대화와 행동들의 묘사를 통하여
독자들의 입가에서 시종 미소를 떠나지 않도록 하게 하는 글 쓰기를 구사한다.
유쾌함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미덕은 한 때 우수에 찬 한 사립탐정을 순수하게 좋아하였던
지은이의 독서편력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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