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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9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작품집은 1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20~30대 여성들의 연애담이다.
이 연애담의 독특한 점은 "책"이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주요한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어떤 하나의 주제나 소재를 전면에 두고 여러 가지 빛깔로 변주해 내는 '옴니버스'식 구성은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
작가는 자기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담아 두었던 이야기 또는 테마를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독자는 눈 앞에 펼쳐진 다양한 이야기의 향연에 푹 빠졌다가도 그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 공통의 '정조'에 감동 받거나 공감을 한다.
'가쿠타 미쓰요'는 젊은 도시 여성의 초상을 섬세하고 날카롭게 잘 묘사하는 67년생 여성작가이다.
작품 속 여성들은 대개 현재 20대이거나 막 30줄에 들어선 여자들이다.
대개 대학진학 등으로 20대부터 독립생활을 시작하고 현재 자기의 일을 가지고 있다.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나기를 몇 차례 되풀이한다.
그 연애의 과정은 자연스럽고 이별의 장면은 쿨하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일상의 단면에서 날카롭게 포착한 감수성이 나쁘진 않았지만,
연애담으로서는 강한 임팩트가 느껴지는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라는 이 작품집의 또 다른 한 면이 좋았다.
9편 작품 속에서 책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자 기억과 관계의 복원을 위한 계기가 되는
소설적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책에 대한 에피소드와 주인공의 연애담이 잘 조화되어 있다.
이상하리만치 동일하게 갖고 있는 책이 많았던 책을 좋아하는 커플...
담담하게 이별을 준비하는 여자는 서로 공유하고 있던 책장에서 자기 책을 골라내며
실연의 눈물을 떨군다 (그와 나의 책장)
술을 사준 답례로, 집에 데려다 준 답례로 그냥 남자랑 자주는 여대생
헌책방을 떠돌아다니나는 '전설의 책'를 찾다가 만난 남학생에게서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다
(서랍 속)
애인과 싸우고 혼자 온 여행.
여관 방 서랍에서 발견한 시집 사이에 꽂혀 있는 보내지 않은 누군가의 편지 한편을 읽은 여자는
애인에게 전화하여 화해를 청한다.
"소중하게 마음에 품고 있던 추억들이 단어로 쓰이는 순간, 사는 냄새만 가득한 좀스러운 것이 될까"
(편지)
개인적으로는 유일하게 연애담이 아니고 남자가 화자인 '미쓰자와 서점'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어린 시절 동네 책방의 추억이 떠 올라 코끝이 시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