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마치다 준 지음, 김은진 옮김 / 삼인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각하'라는 말을 독점했던 장군들의 시대가 저문 요즘은 '각하'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각하'라는 단어에 각인된 나의 기억은,
액자사진 속 절대권력자의 굳게 다문 입,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울려 펴지는 국기강하식,
군대식 질서정연함, 그리고 폭력이다.

정치풍자 소설 또는 정치우화 정도를 예상했는데, 책을 펴 보니 의외로 그림이 나온다.
딱히 만화로도, 일러스트로도 보기에 애매한 그림과 함께 함축적인 짧은 글이 어우러진 형태이다.     

그림은 마치 습작노트 속의 캐릭터처럼 단순하고 어설픈 팬터치 이지만
저자가 말하려는 메시지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한 저자의 내공을 보여준다

국민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 줄까 하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얼마나 빨리 이루어지느냐에
더 관심이 있는 안하무인의 각하의 캐릭터는 두더지이다.
두더지는 땅을 파서 굴을 만들어 지하에서 살기 때문에 시력이 퇴화된 동물이다.
그래서 그림 속 각하는 낮과 밤 구별없이 검은 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각하의 곁에서 끊임없는 아부와 조언으로 각하의 대책없는 행동들을 더 부추기고,
그러면서도 각하보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며,
필요할 때는 각하의 뒤통수도 치기도 마다하지 않는 잔머리 장관은 족제비이다.
적당한 민첩성과 야비함이 느껴지는 족제비의 이미지에 딱이다.

이 환상의 콤비는 멋진 조화를 이루며 폭소를 유발한다.

폭소의 근원은,
세계의 경찰국을 자임하며 테러와 전쟁을 선포한 절대강국의 오만,
자국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최빈국을 무차별 폭격하는 강대국과
그 희생을 보고도 눈을 돌리는 또 다른 강대국,
나날이 연출되는 테러의 위협 등 국제 정세에 대한 풍자에도 있고

무능한 절대권력자와 그에 빌붙은 자들의 행태 및 권력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블랙코미디에서도 나온다.

"추운 날씨에 저자들은 왜 밖에 모여 있는 거야?  불순분자들 아냐?"
"각하 살 곳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진짜야? 그렇다며 어디 빈 건물 찾아서 빌려 주지 그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부 시설이 남아돌잖아"

"여긴 내 집무실이잖아"
"내 각하. 쓸모없는 곳이라고......"


위의 에피소드는 독재권력의 무능함에 대한 풍자이지만
아래의 에피소드는 독재자의 내면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간 인식이 느껴진다.

"각하, 보시는 바와 같이 형무소는 어딜 가나 만원입니다."
"그 만큼 반란분자가 많다는 건가.
 그런데 묘하게도 즐거워 보이는군....."

"길거리엔 아무도 없는 거야?"
"네, 각하. 거의 체포되었으니까요"

"거리에 사람들이 없으니 쓸쓸하군......"
"우리도 형무소에 들어가서 지낼까?"
"아, 네...... 각하 ......"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불량배 국가 이미지를 벗기 위해 각하와 장관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선글라스와 안대를 벗고 나서 한 말

"이러니까 딱 늙은 두더지와 병든 족제비잖아"

그렇다. 절대권력자에게 드리운 두터운 권력의 옷을 벗기고 나면
그도 그저 초라한 한 인간임에 불과하다는 권력자에 대한 개인숭배의 허망함을 나는,
어린 시절 하늘같이 숭배해야 했던 선글라스를 즐겨 썼던 과거 한 권력자의
별로 영예롭지 못했던 죽음 후에 일찌감치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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