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 세상의 변화를 읽는 디테일 코드
팔란티리 2020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내가 인터넷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97년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만 해도 흑백 모니터에다 전화모뎀을 사용하여 천리안, 하이텔에 접속하던 시절이었다. 인터넷을 하고 있을 때 누가 전화 수화기를 들면 바로 접속이 끊기던 기억이 난다. 도스를 기본으로 사용했고 상위, 하위 디렉토리 식으로 되어 있고 순 텍스트로만 이루어졌던 그 시절, 이제는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초고속 인터넷과 펜티엄4, 인터넷이 되는 휴대폰과 PDA라는 하드웨어적인 발전과 포털, 카페, 홈페이지, 블로그, 쇼핑몰과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발전은 정말 따라가기 어려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NHN의 오픈 네트워크형 연구조직 NORI에서 다양한 학자들로 구성한 프로젝트 그룹인 팔란티리 2020이 2007년에 진행한 포럼의 결과를 펴낸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2008, 웅진윙스)에서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알아보자.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란 '작고 사소한 힘이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회로서, 네트워크 환경의 변화로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작은 신세계를 일컫는다'라고 저자들은 정의하고 있다. 전형적인 인터넷 세상의 특징이다.
1인 미디어인 블로그, 신문고 또는 여론 제조의 역할을 하는 다양한 포털의 게시판들, 개인들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이메일과 메신저, 신속한 뉴스의 보급과 해석을 겸비한 포털,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 등 우리는 이제 인터넷과 시간과 돈만 있으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일을 하고 의식주까지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여섯 단계만 거치면 사람들이 모두 이어진다고 했는데, 어떤 실험에서는 네 단계만 거쳐도 될 정도로 세상이 좁아졌다고 한다.
팔란티리 2020은 정체성, 프라이버시, 지식, 경제, 놀이, 권력, 예술문화라는 7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각 카테고리들을 풀어낸다. 정체성은 '나는 몇 개인가?'라는 제목 하에 네트워크속 개인과 인간관계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다양한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나의 분신들은 어떤 것이 진정한 나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영화 <매트릭스>의 무한증식하는 미스터 스미스, <스파이더 맨 3>의 빨간 스파이더맨과 검은 스파이더맨의 대결 등과 같이 다양한 예시로 설명된다. 이 질문은 결국 '나는 무엇인가?'라는 주체 형성에 대한 구상주의적 질문이 뒤따라 나올 수밖에 없는 (27쪽) 철학적인 국면으로까지 반복된다. 이런 개인의 정체성은 네트워크화되면서 더 복잡해지는데, 소집단 커뮤니케이션과 휴대전화, 스몰토크, 싸이질과 결혼제도까지 연관된 이야기로 계속 퍼져 나간다.
주제마다 마지막에 실린 인물들은 실제로 현실에서 그 주제들을 다루는 다양한 사람들로서, 이들의 인터뷰는 그 주제의 이야기를 끝마치는 데 참 적절해 보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생각나게 한다. 지금껏 별다른 생각이 없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니까 나도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 존재의 이유는 알지 못하고 잘 이용하려고만 했던 여러 변화의 배경에 어떤 의식이 있었는지 새삼스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뒤늦게 인터넷을 접하면서 파워 유저는 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중학생인 조카를 보면 버디버디와 MSN 메신저 창이 몇 개나 띄워져 있고 개인 홈페이지를 관리하며 카페 활동도 하는 등 인터넷이 자연스럽게 체화된 모습을 보인다.
앞으로 웹 2.0이라는 경향에 따라 더 심해질 마이크로 소사이어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속담처럼 많이 알아야 하겠다. 현실에서 유리된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더 일찍 반영하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에 대해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