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닥콩닥 빨간 엉덩이 - 어린이 릴레이 그림책
김지우 외 글 그림 / 예림당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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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 빨가면 사과 - 사과는 맛있어 - 맛있으면 바나나 - 바나나는 길어 - 길면 기차 - 기차는 빨라 - 빠르면 비행기 - 비행기는 높아 - 높으면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말잇기 놀이는 많은 사람들이 해 봤을 것이다. 중간에 내키는 대로 단어와 설명을 바꾸면 천차만별의 말잇기가 끝없이 이어질 수도 있으니, 아이와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놀이이다. 그렇지만 내 기억으로 그 시작은 언제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였다. 이제 원숭이 엉덩이가 어떻게 해서 빨개졌는지 <콩닥콩닥 빨간 엉덩이>(2008, 김지우 외 지음, 예림당 펴냄)을 통해 알아 보자.

해님을 너무 사랑해서 해님을 만나고 싶었던 원숭이는 코끼리와 해바라기의 비웃음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해님을 만날 방법을 찾아다닌다. 원래 반짝반짝 빛나는 별님이었던 불가사리에게 해님을 만나는 방법을 물어보는 원숭이. 불가사리는 바나나를 쌓아 올려서 하늘까지 닿는 긴 사다리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바나나를 쌓아 드디어 해님에게 닿은 원숭이는 너무 기뻐 해님을 와락 껴안았다. 그랬더니 해님이 너무 뜨거워서 원숭이의 온몸이 빨갛게 되어버렸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 차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해님을 좋아했던 그 마음은 지금까지도 빨간 엉덩이로 남아 있다는 원숭이의 전설 되겠다.
주변의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끝내 이룬 원숭이의 순정과,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해님에 대한 사랑은 참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그림을 그리고 만들어낸 선생님과 아이들의 사진과 제작 과정이 나온다. 이 그림책은 평면 그림, 또는 입체 모형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 장 안에 평면과 입체가 공존한다. 색깔 크레용으로 색칠하고 위에 검은 크레용으로 덧칠한 다음 이쑤시개로 긁어내는 스크래치, 찢어 붙이기, 오려 붙이기, 마블링, 판화 등 아주 다양한 미술 기법들이 사용되었고, 재료도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종이, 헝겊, 모래, 종이컵, 과일 등 여러 가지이다.
맨 뒷장에는 개미 만들기, 스크래치, 새, 물고기 만들기를 과정마다 사진을 찍어 소개함으로써 따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원색이 많이 사용된 데다 기법도 다양하다 보니, 지금껏 단조로운 그림책에 익숙한 내 눈에는 약간 심란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창의성과 활용성 면에서는 더없이 열린 그림책이라는 만족감이 든다. 그림책을 다 읽고 덮었으면, 이제 스케치북과 종이와 크레용을 꺼내 그리기와 만들기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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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 세상의 변화를 읽는 디테일 코드
팔란티리 2020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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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터넷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97년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만 해도 흑백 모니터에다 전화모뎀을 사용하여 천리안, 하이텔에 접속하던 시절이었다. 인터넷을 하고 있을 때 누가 전화 수화기를 들면 바로 접속이 끊기던 기억이 난다. 도스를 기본으로 사용했고 상위, 하위 디렉토리 식으로 되어 있고 순 텍스트로만 이루어졌던 그 시절, 이제는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초고속 인터넷과 펜티엄4, 인터넷이 되는 휴대폰과 PDA라는 하드웨어적인 발전과 포털, 카페, 홈페이지, 블로그, 쇼핑몰과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발전은 정말 따라가기 어려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NHN의 오픈 네트워크형 연구조직 NORI에서 다양한 학자들로 구성한 프로젝트 그룹인 팔란티리 2020이 2007년에 진행한 포럼의 결과를 펴낸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2008, 웅진윙스)에서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알아보자.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란 '작고 사소한 힘이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회로서, 네트워크 환경의 변화로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작은 신세계를 일컫는다'라고 저자들은 정의하고 있다. 전형적인 인터넷 세상의 특징이다.
1인 미디어인 블로그, 신문고 또는 여론 제조의 역할을 하는 다양한 포털의 게시판들, 개인들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이메일과 메신저, 신속한 뉴스의 보급과 해석을 겸비한 포털,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 등 우리는 이제 인터넷과 시간과 돈만 있으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일을 하고 의식주까지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여섯 단계만 거치면 사람들이 모두 이어진다고 했는데, 어떤 실험에서는 네 단계만 거쳐도 될 정도로 세상이 좁아졌다고 한다.

팔란티리 2020은 정체성, 프라이버시, 지식, 경제, 놀이, 권력, 예술문화라는 7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각 카테고리들을 풀어낸다. 정체성은 '나는 몇 개인가?'라는 제목 하에 네트워크속 개인과 인간관계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다양한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나의 분신들은 어떤 것이 진정한 나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영화 <매트릭스>의 무한증식하는 미스터 스미스, <스파이더 맨 3>의 빨간 스파이더맨과 검은 스파이더맨의 대결 등과 같이 다양한 예시로 설명된다. 이 질문은 결국 '나는 무엇인가?'라는 주체 형성에 대한 구상주의적 질문이 뒤따라 나올 수밖에 없는 (27쪽) 철학적인 국면으로까지 반복된다. 이런 개인의 정체성은 네트워크화되면서 더 복잡해지는데, 소집단 커뮤니케이션과 휴대전화, 스몰토크, 싸이질과 결혼제도까지 연관된 이야기로 계속 퍼져 나간다.
주제마다 마지막에 실린 인물들은 실제로 현실에서 그 주제들을 다루는 다양한 사람들로서, 이들의 인터뷰는 그 주제의 이야기를 끝마치는 데 참 적절해 보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생각나게 한다. 지금껏 별다른 생각이 없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니까 나도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 존재의 이유는 알지 못하고 잘 이용하려고만 했던 여러 변화의 배경에 어떤 의식이 있었는지 새삼스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뒤늦게 인터넷을 접하면서 파워 유저는 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중학생인 조카를 보면 버디버디와 MSN 메신저 창이 몇 개나 띄워져 있고 개인 홈페이지를 관리하며 카페 활동도 하는 등 인터넷이 자연스럽게 체화된 모습을 보인다.
앞으로 웹 2.0이라는 경향에 따라 더 심해질 마이크로 소사이어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속담처럼 많이 알아야 하겠다. 현실에서 유리된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더 일찍 반영하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에 대해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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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 초밥장인 안효주의 요리와 인생이야기
안효주.이무용 지음 / 전나무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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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만화를 좋아하는 터라 <미스터 초밥왕>, <중화일미>, <불꽃의 요리사 주부덕>, <대사각하의 요리사> 등 만화 요리책을 즐겨 보았다. 어떤 책이든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인데, 만화 요리책은 특히 요리대회나 대결 구도를 통해 주인공이 해답을 얻고 진일보하는 내용이 많다. 특히 미스터 초밥왕의 쇼타는 지방대회와 전국대회를 거치면서 초밥의 기본이 되는 쌀과 물, 생선과 초밥 재료들에 대해 눈을 뜸과 동시에 모든 것의 기본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음을 배워간다.
<미스터 초밥왕>의 한국편에 인삼초밥으로 등장하여 한국의 미스터 초밥왕으로 불리는 안효주 님은 일식 요리에 대해 책 3권을 낸 30년 경력의 일식 요리사이자 초밥 전문점의 CEO이다. 그는 <손 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라는 이 책을 통해, 그간의 요리 인생과 초밥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책은 다섯 가지 '일', 요리로 교감하다, 맛의 드라마를 연출하다, 초밥의 기본을 말하다, 초밥의 매너를 말하다, 행복한 요리사를 꿈꾸다로 나뉘어져 있다.
음식에도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있어서 요리사와 손님 사이에 몇 단계를 거치는 것이 대부분인 요즘, 각 손님의 입맛과 기호에 맞추어 초밥을 만들어 대접하는 스시 바는 아주 생생한 교감의 현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것이 바로 '요리로 교감하다'를 가장 처음에 둔 저자의 마음일 것이다. 밥과 배합초와 생선과 고추냉이의 만남은 요리사의 정성이라는 양념이 들어가서 간결하고도 다양한 맛을 낸다.
이 다양한 맛들은 바로 뒷장, '맛의 드라마를 연출하다'에서 12가지 재료로 만든 초밥들의 향연에서 생생하게 맛볼 수 있다. 3장과 4장의 초밥의 기본과 매너는 초밥을 이해하고 즐기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들이다. 최고의 소금을 찾아다니고 쌀과 물을 관리하는 것에서는 쇼타의 모습이 비치는 듯했다.
저자의 초밥 인생 이야기는 마지막 5장에 나온다. 권투로 프로 데뷔를 하려다가 좌절하고 군대에 다녀온 후, 권투를 하던 시절 일식집 아르바이트를 했던 계기로 일식집에 취직하게 된 것이 아주 우연한 초밥 인생의 시작이었다.
요리사는 쇼타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엄격한 도제 생활이다. 배우고 익히려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선배들 사이에서 하나라도 배우고 연습하려고 노력하던 이야기, 평생의 멘토인 이보경 스승님을 만난 이야기, 처음 직장에서 신라호텔로, 신라호텔에서 지금의 가게를 세우기까지의 선택 이야기는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는 듯했다.  

짧은 머리에 흰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손님을 향해 띄우는 웃음은 밝고 훈훈하다. 그러나 요리 면에서는 엄청나게 엄격한 편이니, 초밥 재료를 고를 때나 요리를 하는 마음의 기본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엄한 모습을 보여준다. 가볍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대신 묵묵히 지켜보는 시선으로 믿음을 보여주는 저자의 모습은, 처음 다가가기는 어렵지만 친해지고 나면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친구처럼 듬직해 보인다.
날생선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초밥의 묘미를 잘 느끼지 못했는데, 초밥의 기본과 매너, 12첩 반상을 차린 듯한 맛의 드라마를 보면서, 게다가 윤기나는 초밥 사진들까지 눈으로 맛보면서 처음으로 초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그의 가게에 가서 바에 앉아 그가 권하는 초밥을 먹어보고 싶다. 물수건으로 손을 씻고 생선이 왼쪽으로 가도록 집어서 생선 쪽에 간장을 묻혀 입에 넣는다. 생선과 밥이 고르게 풀어지면서 느껴지는 초밥의 맛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걸고 있는지 교감을 시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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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이 있는 풍경
이상엽 사진.글 / 산책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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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선생님의 <인간연습>에는 사상을 인생의 지상 과제로 생각하고 북한에서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체포되어 장기간 옥살이를 하고 전향한 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회주의 사상이 붕괴되어 소련이 몰락한 것은, 주인공에게는 가족과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상이 무너지는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런 주인공이 결국 삶의 의미를 찾게 된 것은 아이들과 나누는 인간적인 사랑과 행복이었다. 이 주인공 만큼은 아닐지라도 한때 운동권이었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의 몰락은 어느 정도 아픔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소련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개방되면서 냉전의 위기는 사라졌고, 급속히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풍경에서 '혁명의 추억, 추억의 혁명을 느끼다]라는 설명을 단 <레닌이 있는 풍경>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이상엽 님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9,938킬로미터를 달리며 들른 9개 도시의 풍경들과 생각들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표지와 제목에서 드러나듯 소비에트의 상징인 레닌의 동상에서 시작된다.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레닌의 이상은 인민을 배반했으나 인민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고 작가는 적고 있다. 그 상징으로 레닌의 동상은 여전히 굳건하게 여기저기에 우뚝 서 있고 그의 미라는 공개되어 여전히 추모객들의 참배을 받고 있다. 레닌의 뒤를 이은 스탈린의 흔적은 이미 거의 파괴되어 찾을 수 없는 것에 비교하면, 레닌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혁명가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 듯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여행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역'에서 시작된다. 이 역은 1917년 4월 16일, 오랜 망명 생활을 마친 레닌이 헬싱키로부터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임을 기념하여 여전히 남아 있다. 레닌은 그해 10월 혁명을 완수했다. 이처럼 저자는 들르는 도시마다 그 도시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사연 없는 노래가 어디 있으랴. 특히 격동의 시기를 겪은 도시들에는 저 멀리 콘스탄티노플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얹혀 있다. 거기에다 종교와 사람이라는 많은 이야기들이 맞물려 러시아의 도시들은 저마다의 특색을 지닌다.
러시아 연방 자치공화국과 자치주 들 중에서 부랴티야 공화국의 우리와 꼭 닮은 사람들,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러시아가 얼마나 우리와 가까운 곳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사진들도 풍부하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오른편에는 레닌의 묘, 중앙에는 바실리 성당, 왼편에는 명품 브랜드로 가득찬 굼 백화점이 있다. 그 사진 한 장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러시아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레닌 동상 뒤로 보이는 일본의 SANYO 간판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상대적 개념을 무색하게 만든다. 밝고 화사하기보다는 어둡고 채도가 한 단계 낮은 사진들은,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백야와 맞물려 사라져 버린 혁명을 잘 나타낸다.

지금 공사중인 경의선이 완공되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갈 수 있고, 신의주에서 단둥까지 가서, 단둥에서 몽골 횡단열차로 센양, 베이징, 울란바토르, 울란우데까지 가면, 울란우데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수 있다. 또다른 루트는 경원선으로, 지금은 서울에서 철원까지이지만 언젠가 원산까지 이어진다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연결되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수 있단다.
언젠가 우리가 대륙으로 이어지게 되면 그때는 그가 추천해준 책을 한권쯤 챙기고 이 열차를 타서 끝없는 대륙으로의 확장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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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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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인 4월 17일,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임직원 등 10명을 모두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일단락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10일 시작되어 99일의 수사 기간 중 총 255명의 삼성 관련 인사를 소환하고 54차례에 걸쳐 압수 수색을 실시했으며 1만 4713개의 계좌를 추적한 삼성 특검은 4월 22일에 해단식을 가지고 막을 내린다고 했다.
일단 이건희 회장을 불구속 기소로 정하고 보니 윗선은 불구속인데 이학수 부회장을 구속할 수 없어서 모두 불구속 기소하게 되었다는 특검의 발언은, 짜고 치는 고스톱임이 너무 솔직하게 드러나 있어서 차라리 우습다. 이에 많은 시민단체들은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수사 결과에 불복하고 재고발하겠다고 나섰다.

삼성그룹의 전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에서 비롯된 이번의 삼성 파동은, 그 이전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통한 편법 증여 의혹 사건, 무노조를 고수하는 삼성의 문화, 계열사 간의 순환출자를 근간으로 한 이건희 회장의 족벌체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잠깐, 여기에서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기업으로서의 삼성과 이건희 회장 일가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삼성특검 때문에 삼성그룹의 경쟁력이 떨어져서 상대적으로 일본의 전자 회사들이 반사 이익을 노린다는 식의 뉴스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금은 삼성그룹이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싸움이 아니라 그런 대기업을 일가의 족벌 체제로 묶어두고 있는 이건희 체제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싸움이다.

<프레시안> 특별취재팀이 엮은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삼성의 절대 권력에 맞서 싸운 사람들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김용철 변호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상조 교수, 노회찬 민주노동당 전의원, 심상정 민주노동당 전의원, 이상호 기자, 김성환 위원장이라는, 삼성이라는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각자는 여러 각도에서 삼성의 위치와 문제를 보여주는 열쇠가 된다. 우선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최초의 공익제보자로서, 그를 통해 이미 알려진 의혹을 뒷받침하고 새로운 의혹을 제기할 불씨가 되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모두가 부담을 지지 않으려 외면한 김용철 변호사를 믿고 문제를 제기하는 토대가 되어, 70~80년대의 민주화 투쟁을 이어 삼성을 사회 문제로 떠올렸다. 김상조 교수는 순환출자와 금산분리에 대한 삼성의 복잡한 지배 구조를 설명하며 삼성의 민주화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노회찬 전 의원은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때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전력이 있고, 삼성의 법조계 관리 실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심상정 전의원을 통해서는 '삼성의 금융 진출 의도와 삼성이 주력하는 관료 관리의 여파'를 분석했다고 한다. 이상호 기자는 안기부 X파일을 취재하고 고발하였으나 삼성의 언론 지배에 밀려 유죄를 선고받았다. 김성환 위원장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노조 탄압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해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각 장은 개인 또는 단체의 역사와 더불어 삼성과의 투쟁사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고 솔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느낌과 소신을 이야기한다.
법과 정의, 경제, 정치, 사회, 언론, 노조 등 다양한 분야를 대변하는 이들의 투쟁은, 책에서 나왔듯 삼성공화국이라고도 불리는 거대 권력에 맞설 만큼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 재력과 권력, 정보력으로 무장한 삼성은 이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위협하지만 옳은 것에 대한 신념은 그보다도 강했으니, 눈 똑바로 뜨고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과 필요성을 새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편하게 살아갈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7인의 게릴라들의 삶을 보면서, 아직은 우리에게 희망이 있으며 더이상은 무관심과 몰이해로 불법을 방관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대선과 총선의 결과가 많이 허탈하다. 그나마 진보라고 불리던 10년이 지나고 보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정부와 집권여당의 정치색으로 볼 때 삼성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이 눈 똑바로 뜨고, 지금처럼 불법과 탈법이 난무하지 않도록 감시단이 되자.
앞으로도 7인의 게릴라들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고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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