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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며칠 전인 4월 17일,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임직원 등 10명을 모두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일단락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10일 시작되어 99일의 수사 기간 중 총 255명의 삼성 관련 인사를 소환하고 54차례에 걸쳐 압수 수색을 실시했으며 1만 4713개의 계좌를 추적한 삼성 특검은 4월 22일에 해단식을 가지고 막을 내린다고 했다.
일단 이건희 회장을 불구속 기소로 정하고 보니 윗선은 불구속인데 이학수 부회장을 구속할 수 없어서 모두 불구속 기소하게 되었다는 특검의 발언은, 짜고 치는 고스톱임이 너무 솔직하게 드러나 있어서 차라리 우습다. 이에 많은 시민단체들은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수사 결과에 불복하고 재고발하겠다고 나섰다.
삼성그룹의 전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에서 비롯된 이번의 삼성 파동은, 그 이전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통한 편법 증여 의혹 사건, 무노조를 고수하는 삼성의 문화, 계열사 간의 순환출자를 근간으로 한 이건희 회장의 족벌체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잠깐, 여기에서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기업으로서의 삼성과 이건희 회장 일가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삼성특검 때문에 삼성그룹의 경쟁력이 떨어져서 상대적으로 일본의 전자 회사들이 반사 이익을 노린다는 식의 뉴스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금은 삼성그룹이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싸움이 아니라 그런 대기업을 일가의 족벌 체제로 묶어두고 있는 이건희 체제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싸움이다.
<프레시안> 특별취재팀이 엮은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삼성의 절대 권력에 맞서 싸운 사람들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김용철 변호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상조 교수, 노회찬 민주노동당 전의원, 심상정 민주노동당 전의원, 이상호 기자, 김성환 위원장이라는, 삼성이라는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각자는 여러 각도에서 삼성의 위치와 문제를 보여주는 열쇠가 된다. 우선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최초의 공익제보자로서, 그를 통해 이미 알려진 의혹을 뒷받침하고 새로운 의혹을 제기할 불씨가 되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모두가 부담을 지지 않으려 외면한 김용철 변호사를 믿고 문제를 제기하는 토대가 되어, 70~80년대의 민주화 투쟁을 이어 삼성을 사회 문제로 떠올렸다. 김상조 교수는 순환출자와 금산분리에 대한 삼성의 복잡한 지배 구조를 설명하며 삼성의 민주화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노회찬 전 의원은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때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전력이 있고, 삼성의 법조계 관리 실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심상정 전의원을 통해서는 '삼성의 금융 진출 의도와 삼성이 주력하는 관료 관리의 여파'를 분석했다고 한다. 이상호 기자는 안기부 X파일을 취재하고 고발하였으나 삼성의 언론 지배에 밀려 유죄를 선고받았다. 김성환 위원장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노조 탄압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해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각 장은 개인 또는 단체의 역사와 더불어 삼성과의 투쟁사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고 솔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느낌과 소신을 이야기한다.
법과 정의, 경제, 정치, 사회, 언론, 노조 등 다양한 분야를 대변하는 이들의 투쟁은, 책에서 나왔듯 삼성공화국이라고도 불리는 거대 권력에 맞설 만큼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 재력과 권력, 정보력으로 무장한 삼성은 이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위협하지만 옳은 것에 대한 신념은 그보다도 강했으니, 눈 똑바로 뜨고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과 필요성을 새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편하게 살아갈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7인의 게릴라들의 삶을 보면서, 아직은 우리에게 희망이 있으며 더이상은 무관심과 몰이해로 불법을 방관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대선과 총선의 결과가 많이 허탈하다. 그나마 진보라고 불리던 10년이 지나고 보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정부와 집권여당의 정치색으로 볼 때 삼성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이 눈 똑바로 뜨고, 지금처럼 불법과 탈법이 난무하지 않도록 감시단이 되자.
앞으로도 7인의 게릴라들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고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