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운 게 뭔데? 창비청소년문고 43
저스틴 밸도니 지음, 이강룡 옮김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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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용감해야지, 똑똑해야지, 멋있어야지, 남자는 더 커야 해,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 차례만 봐도 어마무시하다. 내가 남자가 아니어서 더 그런지 혹은 남자가 아닌 이유로 좀 덜 그런지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저 이 책에서의 '남자'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이 책을 어떻게 감당하고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하게 된다. 이미 시작도 전에 저자는 남자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단호하게 말했고,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그럼에도 꼭 읽겠다고 나서는 나같은 사람들은 분명 있을 수밖에 없고 읽어버렸으니, 그 다음은 모두 나의 몫이 되었다. 가만히 이 책의 효용과 의미를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싶다.

우선, 이 책을 굳이 남자에 국한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 싶다. 이 책에서 '남자'라는 단어를 '여자'라는 단어로 바꾼다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되니까(왠지 '여자다운 게 뭔데?' 책이 곧 나와야할 것도 같은 느낌적인 느낌!). 아마 많은 부분의 내용과 사례는 달라져야 하겠지만, 본질적으로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의도는, 성의 구분을 통해 사회적으로 만들어내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져야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굳이 이 책을 '남자'로만 읽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면에서 남자 청소년들이 꼭 읽으면 좋을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다. 특히 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남자 아이들이 좀 잘 알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의 사회적 지식을 친구나 혹은 미디어를 통해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친구와 미디어가 언제나 올바른 이야기를 해준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아이들에게 누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줘야하는 사람들 역시도 '남자란'의 생각을 머릿속에 갖고 있으니, 얘기해줄 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진짜 남자 청소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책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긴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책에서 주의를 주고 있는 상황들은 굳이 '남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은 이 세상에 너무도 많고 그건 남자건 여자건 모두에게 벌어지는 일들이니까. 가령 남자만 뛰어내려야 용감한 것은 아니고 여자도 진짜 용기를 가져야할 일들은 너무도 많다. 그러니 이 책이 주고 있는 메시지는 남자만이 아닌 우리 아이들 모두에게 이 사회를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살아내야 하는지를 알려주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유연해질 수 있는 마음에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주변의 누군가가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주의를 주며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너, 이 약속 안 지키면 남자 아니다!' 이 말의 충격에 눈이 커졌고, 그 장면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언어 속에 얼마나 위험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우리 아이들이 성장해서 도달해야하는 가장 최종 목표는 사람이 되는 것일 거다. 남자 사람, 여자 사람, 이런 거 말고 그냥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나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것. 누군가가 입혀놓은 갑옷도 모두 다 벗어버리고 순수하게 나의 내면을 보여주며 다른 이와 관계맺을 수 있는 소통을 해 나갈 수 있는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이들이 가져야할 중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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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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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표지 그림이 예쁘다. 각 단편 시작할 때마다 들어가 있는 간지의 흑백은 컬러 표지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확실히 표지 그림에 먼저 눈길이 가는 책이다. 그리고나서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의자가 2개다. 누구와 누구의 자리일까. 의자의 방향도 완전 나란하지 않고 둘 중 하나는 비스듬하다. 두 사람이 앉는다면 살짝 서로를 향할 수 있을 정도로 틀어져 놓여 있다. 의자도 일반 식탁 의자가 아니다. 휴양지나 야영지에서 펼쳐놓고 앉으면 편안할, 그런 의자다. 누구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의자일까. 그리고 누구를 위해 차려진 테이블일까. 사람은 없고 사람을 기다리는 의자와 테이블 위의 음식들이 있을 뿐이다. 이곳에 앉으면 기분이 어떨까. 어떤 마음으로 이 공간을 찾아오게 될까.

표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게 된 이유는, 이 소설들의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이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결핍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는 나름 각 인물들이 흐트러지지 않으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잘 붙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분명 상처가 있고 쉽지 않은 삶의 여정을 겪었으며, 만족스런 현재를 살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한 두가지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헌데 이 소설들 속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특히나 더 깊은 우물을 마음 한켠에 만들어놓고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래서 마치 그 우물의 깊은 곳에서부터 울림이 차오르는 듯한, 서늘하고 차가우면서도 아득한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헌데 다행인 것은, 이들이 끌어안고 있는 우물에는 튼튼하고 긴 밧줄에 두레박이 매달려 있고, 그 두레박에 깨끗하고 맑은 물을 잔뜩 담아 끌어당기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는 것이다. 몰론 이 밧줄은 각 인물들이 스스로 찾아내고 엮은 것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의 식사나 카풀해준 후배와의 식사,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간 뒤 마주한 초등학교 동창과의 식사, 그리고 추워하고 배고파하는 후배와의 식사 등, 등장인물들의 식사 장면들을 보면 이들의 식사는 마치 그동안 인물 간 관계를 가로막고 있던 편견이나 큰 담을 한순간에 허무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마주보고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허물도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마음은 이미 식사를 통해 한결 편안해진 마음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의 무게나 짐, 마음에 갖고 있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어지는 그 시작이, 이런 식사였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인물들의 삶이 조금은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제목으로 쓰인 <가벼운 점심>이 어쩌면 우리 삶에서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꼭 격식을 차리고 대단한 식사를 하지 않아도, 가볍게 하지만 오래 그리고 솔직하게 하는 식사의 자리가 만들어 내는 시간이 우리의 삶을 조금은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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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어 문학동네 청소년 70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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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 내가 아는 그 생선, 복어?
<나는 복어>라는 제목이 신선했다. 여기서 '나'는 절대 호락호락할 인물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복어라고 했을 땐, 그 안에 '독'을 품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 독이 누구가를 향한다면 어쩌면 나쁜 쪽으로 튕겨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면 그걸 통해 자신을 보호하든지. 어느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든, 이 아이가 세상에서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괜히 시작 전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 한편으로는, 표지 그림 속 아이의 표정이 너무 단단해 보였다. 누구라도, 뭐라도 와 보라는 듯, 어떤 것에도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 보이는 다부진 표정. 괜히 그림 속 아이에게서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별명은 청산가리. 조폭은 아니다. 자현기계공고 하이텍기계과 2학년. 키는 164cm에 몸무게는 55kg. 김두현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간혹 뒤에서 나를 청산가리라고 부르는 놈들이 있다. 지금처럼.(5쪽)

<나는 복어> 제목에 이어, '내 별명은 청산가리.'라고 시작하는 소설이었다. 와! 복어에 청산가리! 뭔가 섬뜩한가 싶었지만, 이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두현이가 7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지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갔고, 그 옆을 함께 해준 친구 준수가 있어서, '금강복집'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셔서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런 두현이에게 재경이가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이들 눈에는 자신과 결이 닮은 아이들이 참 잘 보이는 법이니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아이들, 특히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은 어른이 책임져주지 못하는 문제들을 스스로 책임져 짊어지고 있구나. 그 많은 문제들을 잔뜩 안고 살아가느라 벅차지만, 또한 현명하게 혹은 저돌적으로 문제에 접근해 해결하려고 하고 있구나. 두현이도 준수도 재경이도, 그리고 강태도. 분명 어른들은 이 시기를 모두 지나왔는데도, 왜 어른이 되면 그 시기의 문제와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모두 퉁치고 넘기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기도 했다. 어른의 세계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니까.
어른들은 어른들의 판단과 결정으로 아이들을 종속시키려고 든다. 아이들의 마음까지도 제멋대로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어른의 입장으로 아이들에게 강요할 뿐 아이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떻게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지조차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 한다. 그저 회피하거나 어른의 힘과 권력으로 막기만 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골이 깊어지고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의 지점이 더욱 확연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힘 있는 어른 쪽에서는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또 하나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부모의 자살, 빚과 생계에 대한 부담,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사고. 이 소설 속 아이들이 감당해야했던 문제는 사실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두 어른들의 세계가 만들어낸 문제였고 그 문제의 해결 또한 어른이 하면 되는 부분이었다. 다만, 어른은 그런 노력을 안 했고 해야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이 힘들 수밖에. 힘들게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는 수밖에.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커 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건, 이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나아갈 마음과 각오를 다졌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늘 그렇듯,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어른들은, 그리고 이 사회와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늘 화가 나는 지점이지만.

덧-
재경의 말 중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 장귀녀 사장한테만 말고, 이 세상에 대고 크게 말했으면 좋겠는 말들이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용광로에 사람을 떨어뜨리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들이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사람이 끼여 죽게 만드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들이 콜센터 직원을 자살에 내몰리도록 내버려두고, 현장 실습생이 배에 붙은 따개비를 따다가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이 빌어먹을 세상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거라고,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할 자유를 허락해 주니 얼마나 고맙냐고 떠드는 거야. 뻔뻔하고 파렴치하게."
"이 개 같은 세상이!"
"돈이 최고라고 떠드는 이 개 같은 세상이 당신 편이어서 당신은 자기 말이 옳다고 믿는 거야!"
"나는 사과를 받아야겠어요. 사과해요. 우리 오빠한테."(107-108쪽)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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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기획, 박내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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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세월호 참사 10주기. 아직도 10년 전 그날의 시간과 공간, 장면을 기억한다. 어떤 감정으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그날의 날씨와 전해지는 감각까지 모두 기억한다. 그리고, 그날 세월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나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내 잘 기억하고 또 기억할 것이다. 이 세상에 '절대'라는 말은 사용하기 어렵다지만, 이 경우만은 예외로 둘 것이다. 나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고 내내 기억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무서운 것보다 더 피하고 싶어지는 것이 슬픈 것이다. 마음이 아프고 불편할 게 뻔한 상황이라면 제일 먼저 피하고 싶어진다. 나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아서, 그 감정 하나 나 스스로 어쩌지를 못해서, 그래서 우선은 맞닥뜨리지 않으려는 선택을 하곤 한다. 하지만 안다. 이런 마음이 참 어리석기 짝이 없다는 것을. 힘들고 고통스럽고, 그리고 마음 불편하다는 그 감정 하나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고개를 돌리려하는 짓이, 얼마나 한심한 짓인지를 말이다.

커다란 슬픔 곁에 함께하며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배우고 있다. '기억과 빛'이 이 광장에 있어야 하는 게 마땅한 일인 건, 슬픔을 추방한 삶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어둠을 간직하지 않은 빛은 오롯한 빛이 아니기 때문이다.(163쪽)

늘 밝은 쪽만을 향해 걷고 나아가는 것이 진짜 우리의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슬픔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그 슬픔을 온전히 내 삶으로 가져올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슬픔에 제대로 슬퍼할 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내 눈앞에서 슬픔을 몰아내는 것으로 내 삶을 지킨다는 것은, 그저 피하려고만 하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숨쉬는 이곳에 슬픔의 자리를 만들고 기꺼이 슬퍼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고 불편하면, 아프고 불편한대로 마음을 내맡기면 된다. 결국 그 마음들이 모여 다시 그 다음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되고 희망의 씨앗이 될 테니까. 많은 것을 발벗고 나서서 하지 않아도, 그저 그 마음만으로도 괜찮아질 수도 있을 테니까.

우리가 원하는 거는 돈도 아니고, 정쟁도 아니에요. '힘들었지? 고생 많았다' 하고 우리 마음 알아주는 거예요. 위로해 주는 게 그렇게 힘든가요.(262쪽)

그러니까 말이다. 위로가 뭐 그리 힘들다고, 그동안 위로에 그토록 인색했는지. 겁쟁이처럼 뒤로 숨고 피하려고만하지 말고, 여전히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직접 눈앞에 두고 다루고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삶 안으로 기꺼이 끌어들여 함께 살아가야할 것이다. 그리고는 안부를 묻고, 위로를 건네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계속 기억을 하고 거기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해나가면 문제 해결 방법도 떠오르고 책임 당사자도 거기에 답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질문과 기억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114쪽)

질문과 기억 멈추지 말아야겠다. 잊지 말아야겠다.

덧-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만 나오면 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눈물이 고여와 여러번 닦아야만 했다. 익히 아는 슬픔, 잘 알고 있는 마음 불편함이지만, 기꺼이 울고 또 바라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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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재봉사의 옷장 숲속 재봉사
최향랑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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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철'이란 단어를 아이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제철'이란 단어를 잘 몰랐다. 철 따라, 철마다 등으로 흔히 쓰이는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이때의 '철'이란 단어도 생소해 했다. 계절이란 단어로 바꿔 주어서야 겨우 아~ 하고 반응해주었다. 그러니 '제철'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만큼 자연을 더이상 계절과 연관지어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반가웠다. 각 계절마다의 옷장을 열면, 꼭 맞는 옷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봄엔 산철쭉, 괭이밥, 민들레, 금낭화.
여름엔 패랭이, 수레국화, 물봉선화, 수국.
가을엔 산딸나무, 코스모스, 떡갈나무, 은행나무, 남천나무.
겨울엔 박주가리, 목련 봉오리, 억새, 으아리꽃.

계절에 맞게 짝을 지어 보세요, 문제를 만들면 과연 모두 다 알맞게 줄을 그어 연결시킬 수 있을까? 많이 틀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우리가 계절을 쉽게 잊고 살고 있는 것이겠구나 싶다. (물론 또 그만큼 뚜렷한 사계절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런 면에서 더욱 땅 가까이에 시선을 두고, 주변을 둘러보며 지금의 계절에 어울리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눈여겨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찾아보고 들춰보며 숲속으로 한걸음 걸어들어가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 아니면 금방 놓쳐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지금 마주할 수 있는 계절을 있는 그대로 느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딱, 한창 봄의 기운이 가득한 시기의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흔히 고개를 들어 나무 위에 내려앉아있는 꽃들에 시선을 빼앗기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때로는 시선을 아래에 내리고, 작은 풀숲 가장자리 혹은 깊은 곳에서 이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만나게 되면 숲속 재봉사를 불러, 나에게도 꼭 맞는 옷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지. 그 옷을 입고 이 친구들과 함께 낮에도 밤에도 놀면 좋겠다. 그렇게 실컷 놀고 들어와 이불 속에서 빠져드는 나른하고 포근한 잠은, 더할나위 없이 달콤하고 행복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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