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선, 표지 그림이 예쁘다. 각 단편 시작할 때마다 들어가 있는 간지의 흑백은 컬러 표지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확실히 표지 그림에 먼저 눈길이 가는 책이다. 그리고나서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의자가 2개다. 누구와 누구의 자리일까. 의자의 방향도 완전 나란하지 않고 둘 중 하나는 비스듬하다. 두 사람이 앉는다면 살짝 서로를 향할 수 있을 정도로 틀어져 놓여 있다. 의자도 일반 식탁 의자가 아니다. 휴양지나 야영지에서 펼쳐놓고 앉으면 편안할, 그런 의자다. 누구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의자일까. 그리고 누구를 위해 차려진 테이블일까. 사람은 없고 사람을 기다리는 의자와 테이블 위의 음식들이 있을 뿐이다. 이곳에 앉으면 기분이 어떨까. 어떤 마음으로 이 공간을 찾아오게 될까.

표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게 된 이유는, 이 소설들의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이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결핍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는 나름 각 인물들이 흐트러지지 않으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잘 붙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분명 상처가 있고 쉽지 않은 삶의 여정을 겪었으며, 만족스런 현재를 살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한 두가지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헌데 이 소설들 속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특히나 더 깊은 우물을 마음 한켠에 만들어놓고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래서 마치 그 우물의 깊은 곳에서부터 울림이 차오르는 듯한, 서늘하고 차가우면서도 아득한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헌데 다행인 것은, 이들이 끌어안고 있는 우물에는 튼튼하고 긴 밧줄에 두레박이 매달려 있고, 그 두레박에 깨끗하고 맑은 물을 잔뜩 담아 끌어당기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는 것이다. 몰론 이 밧줄은 각 인물들이 스스로 찾아내고 엮은 것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의 식사나 카풀해준 후배와의 식사,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간 뒤 마주한 초등학교 동창과의 식사, 그리고 추워하고 배고파하는 후배와의 식사 등, 등장인물들의 식사 장면들을 보면 이들의 식사는 마치 그동안 인물 간 관계를 가로막고 있던 편견이나 큰 담을 한순간에 허무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마주보고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허물도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마음은 이미 식사를 통해 한결 편안해진 마음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의 무게나 짐, 마음에 갖고 있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어지는 그 시작이, 이런 식사였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인물들의 삶이 조금은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제목으로 쓰인 <가벼운 점심>이 어쩌면 우리 삶에서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꼭 격식을 차리고 대단한 식사를 하지 않아도, 가볍게 하지만 오래 그리고 솔직하게 하는 식사의 자리가 만들어 내는 시간이 우리의 삶을 조금은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