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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이유정 ㅣ 푸른숲 작은 나무 13
유은실 지음, 변영미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평점 :
유은실 동화의 매력은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슬프지 않게 아프지 않게
질질 짜지 않고 '쿨'하게 풀어간다는 것이다.
'쿨'하기만 하면 매력이 없을텐데
거기에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엔 항상 코끝을 찡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마법사가 와서 도움을 주지도 않는, 화려한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서 멋진 활약을 하는 아이들이 아닌,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이들의 주인공이다.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써오라는 숙제를 해야하는 경수. 할아버지가 유명하고 훌륭한 사람이길 기대하지만 할아버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술주정뱅이, 노름도 하는 할아버지다. 경수는 처음에는 많이 실망하지만 평범한 우리 이웃인 할아버지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낼 줄 알게 된다.
4학년인데도 오른쪽과 왼쪽을 잘 구별 못하는, 그래서 집을 혼자 찾아가기도 힘든 '길치'인 유정이. 동생이 먼저 집에 가버려서 혼자 집을 찾아가는 여정.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길을 찾는데에서는 멀쩡하지 않은 유정이. 엄마와 함께 오른 손과 왼손 구별하는 노래도 지어 부르고 오른 쪽과 왼쪽을 구별하는 방법도 알아내고..나름대로 극복하기 힘든 단점이고, 어쩌면 '머리 나쁜' 아이로 취급받기 쉽상인 문제인데, 유정이는 그런 자신에 대해 열등감을 갖지 않고 아이다운 긍정성으로 이겨내며 집을 찾아가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유정이 같은 아이들이 이 동화를 보며 자신을 긍정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좋은 동화는 '새우가 없는 마을'이었다. 생활보호대상자인 할아버지와 살아가는 손자. 자장라면 말고 진짜 자장면을 먹고 싶어 하는 손자를 위해 할아버지는 빈병을 모아 드디어 진짜 자장면집으로 자장면을 먹으러 간다. 압권은 진짜 자장면 집에 가기 위해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는 장면.
< "음...짜장면 먹을 때는 이렇게 편하게 입는 거야."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니까 우리한테 옷이 많은 것 같았다. 꼭 좋은 옷을 많이 두고 평범한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보리차를 먹을 때의 장면, 할아버지와 손자가 자장면을 더 먹으려고 하는 장면은
묘사와 표현이 너무 재미있어서 웃다가 또 코끝이 찡해진다. 이런 면이 바로 유은실 작가의 흉내낼 수 없는 매력이다.
할아버지는 또 어떤가. 가난하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 느긋하고 온화한, 말 하나하나에 손자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할아버지. 이런 할어버지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유은실 작가의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이라고 하면 쿨한 유은실 작가에게 어울리지 않은 표현이 되려나.
엄마가 동생을 낳게 되어서 고모네 집에서 열흘 간 지내게 된 진이 이야기.
아빠가 죽고 엄마랑 살면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투덜대는 영지 이야기.
다섯 편의 단편이 마음을 울린다...
아들 녀석에게 새우가 있는 마을을 먼저 읽어주었다.
주인공이 진짜 자장면을 못 먹어봤다는 이야기에 아들 녀석 무진장 신기해한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 할아버지도 많고, 아이들도 많다는 말에 또 놀란다.
아들 녀석 왈
"아프리카 아이들만 굶는 줄 알았는데..."
"가난한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알아요. 그런데 자장면도 못먹어 봤을 줄은...."
요즘 아이들은 이런 가난은 없는 줄 안다. 상황을 알아야 주변을 돌아보는 마음도 생길 것이다.
아들 녀석은 나머지 단편도 다 읽어 달라고 한다. 유은실 작가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