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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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 김진영

(338p / 한국소설 / 미스터리 / 스릴러 / 엘릭시르 / 문학동네)




마당이 있는 집... 구 년 전 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쭉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던 나는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괜히 부러웠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방마다 테라스도 있고... 자기만의 완벽한 공간이 갖춰진 곳이라는 생각에 아파트에서의 삶을 동경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마당이 있는 예쁜 집이 '완벽한 꿈의 공간'으로 등장한다. 다만 지독한 악취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두 여자가 등장한다. 외관부터 인테리어까지 완벽한 단독주택에서 부유한 소아과 의사 남편의 비호를 받으며 행복한 앞날만을 그리는 여자 주란. 제약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맞벌이를 하면서도 남편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전셋값을 걱정하며 사는 여자 상은. 두 여자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 서로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남편이 저수지에 빠져 죽은 상은과 이사간 예쁜 집 마당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 주란은 어느 순간 깊이 얽히게 된다.


주란은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이룬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자격지심과 낮은 자존감 덕분에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준 남편에게서까지 그러한 느낌을 받게 되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남편이 나를 버릴까봐 불안하기도 하고, 남편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남편에 대한 신뢰마저 사라진다. 증오와 닮은 어떤 감정을 품게 되는 것 같다. 상은은 자신을 약자이자 패배자로 만들어 자신의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남편에게서 도망치고 싶다. 이혼을 제안했던 그 날 성폭행과 다름 없는 관계를 갖고 임신을 하게 된다. 자식을 무척 원했던 남편은 아이가 생기자 절대 이혼을 하려 하지 않고, 아내를 향했던 폭력 또한 멈췄다. 그러나 상은을 깎아내리는 언행은 여전했다.


상은의 남편 김윤범, 주란의 남편 박재호가 얽힌 분홍색 휴대폰의 주인인 수민의 행방. 그 행방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두 여자의 행보에는 반전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상은은 결단력도 있고,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줄도 알지만 완벽한 집과 부유함, 거기다 예쁜 외모까지 갖춘 주란 앞에서 자신이 초라해 지는 것 같다. 반면 주란은 자신이 갖게 된 이 행복에 만족하며 고상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삶을 누리려는데 빈궁해 보이는 상은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결국에 서로가 갖고 있는 어떤 면을 탐하거나 이용하게 되는데...


애초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그 이후에도 바로잡지 못한 것들이 계속된 죽음을 불러 일으켰다. 끊임없는 의심과 죄를 덮어버리기 위한 꼼수들이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예쁜 꽃조차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예쁘게 보이기도 하고 소름 끼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바라 본 것이다. 든든한 울타리였던 남편이 어느새 성범죄자,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 자신과 아들을 구해야만 하는 주란. 과연 주란이 믿는 현실은 진실일까?


참으로 답답하다. 남편도, 주란도 매우 답답하다. 시원시원한 행보를 보인 상은도 안쓰러운 부분은 있지만 그 뿐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왜 그리 잘 읽힌 것일까? 정말 군더더기 없는 매끄러움을 갖춘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작은 의심 한 조각만으로 온 세상이 일그러지게 보이는... 그래서 타인을 자신의 생각대로 함부로 판단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이 우리 사회와 많이 닮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건 자체에 공감이 가는 것보다는 그들의 심리 상태에 묘한 공감을 느끼게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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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야 하는 밤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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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야 하는 밤 - 제바스티안 피체크

(소설 / 스릴러 / 공포 / 460p /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끊임없이 섬뜩함을 자아내는 스토리. 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을 읽은 것은 처음이지만 <눈알사냥꾼>, <눈알수집가>라는 소설의 표지를 본 적이 있었는데 제목과 표지가 주는 충격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잔뜩 긴장하고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죽어야 하는 밤>은 일단 꽤 두툼하게 느껴졌지만 뛰어난 가독성을 생각하면 두께가 주는 압박감 따위 가볍게 무시해도 좋을 듯 하다. 스토리가 시작되고 벤이 쫓기기 시작하면 소설을 읽는 독자 또한 누군가에게 쫓기듯 엄청난 속도로 읽어버릴 테니까...(내가 그랬다.)


"혹시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 (중략) ……

"저는 사냥의 여왕 다이아나예요. 자유롭게 딱 한 명을 죽일 수 있다면 누구를 죽이고 싶으세요?"

(p381)


8N8.

살인 복권.

8월 8일 8시 8분에 '8N8 사냥감'이 정해진다.

그리고 약 12시간 동안 이 사냥감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며, 이 사냥감을 사냥하는 사람은 상금 1,000만 유로를 받게 된다. 사냥에 성공한 사람이 본인일지라도...


사냥에 참가하는 비용은 단 1유로. 당연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살인 복권이 합법적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스타 변호사 크리스토프 마르크스는 방송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능력있는 변호사라면 사냥감을 죽이려 한 것이 합법적인 행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고 그렇다면 과실치사, 운이 좋을 경우 집행유예가 선고될 것이라고... 그렇다면 1유로를 투자해 1,000만 유로를 탈 수 있다는 어떤 심리적인 기대감으로 인해 그 정도는 감수하거나 그저 유명해져 관심 받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이들에게 뒤를 쫓기게 되는 벤. 딸 율레의 자살이 자살이 아닐 것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는 그에게 아내가 보여준 사진 한 장은 큰 충격을 가져온다.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데 연달아 터져버린 이 커다란 사건. 다이아나가 사냥감으로 정한 사람은 '아레추 헤르츠슈프룽'이지만 벤은 추가후보자였다. 게임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지만 규칙에 따르면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게임이 끝나게 된다. 둘 다 쫓기는 목숨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이 바로 아레추였다. 범죄 심리학을 전공한 아레츠는 사회심리학적 바이러스에 대해 연구를 한다. 이것은 어떠한 루머가 SNS에서 사람을 숙주삼아 마우스 클릭을 통해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번지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 사회심리학적 바이러스가 인터넷에서 어떻게 확산되는지 연구하기 위해 생각해낸 일종의 실험적 장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신이 낸 아이디어에서 왜 사냥감이 되어 쫓기고 있을까? 벤은 어째서 추가 후보자로 뽑히게 되었을까? 그들이 '어째서' 사냥감이 되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말도 안되는 게임을 향한 주변의 반응이다. 엄청난 사람들이 이들을 쫓기도 하고, 이들의 행적을 담은 영상을 올려 SNS로 돈을 벌 궁리를 하기도 한다. 목숨이 걸린 문제에 이렇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 끔찍했다. 이것이 소설 속 현상이라고만 볼 수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우리가 사는 현실을 들여다 보자. 종종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에 갑자기 누군가의 이름이 등장하면 다들 궁금해 클릭을 한다. 그렇게 검색어 순위에 오른 사람에 대해 오래된 사건부터 현재 집중되고 있는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뉴스, 블로그, 카페, 실시간SNS 등 모든 페이지를 뒤덮어 버린다. 진실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칼날이 될 수 있고, 그것이 거짓 루머라고 하면 그 파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과도한 소통 세계.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나에게 매우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면서도 끊임없이 섬뜩함을 가져다 주었다. 아마 나와 같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모두 재밌게 읽고, 경각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 모순이지만 솔직한 마음이 그렇다. 그만큼 재미도 의미도 주었던 소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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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맨
야프 로번 지음, 벤자민 르로이 그림, 강희진 옮김 / 어린이북레시피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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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줌맨 >>


글 : 야프 로번 / 그림 : 벤자민 르로이

출판사 : 북레시피




네덜란드의 작가이자 연극 연출자 '야프 로번'은 동시집 <숲을 만들어 볼까?>로 2008년 벨기에 '황금 부엉이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알사탕>으로 2011년 뮌헨 국제청소년도서관에서 선정하는 '화이트 레이번즈 상'을 수상했다. 아이들 책장에 전집을 넣어주기도 하지만 한 권 한 권 기발하고 유쾌한 단행본 읽는 재미를 놓치게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서 고르기도 하고, 아이가 원하는 도서를 주문해 주기도 하는데 이 책은 내 마음에 들어 아이들에게 읽어주게 된 그림책이다.




아이들은 만화속에 등장하는 멋지고 힘이 센 로봇도 좋아하지만 아주 고전적인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도 참 좋아한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적에는 슈퍼맨, 배트맨 망토가 붙어있는 우주복을 만날 입고 싶어했으며 아직도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놀거나 슈퍼맨 의상을 따라하기도 한다(쉿! 비밀!).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은 이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파이더맨, 슈퍼맨, 배트맨, 메가 신디 등의 슈퍼 영웅들이 잔뜩 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아이들에게 친숙한 '빈틈'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마도 이 그림책을 읽고 나면 아이들이 슈퍼 영웅을 저 높은 곳의 별처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작은 영웅이 등장한다. 이름하야 '오줌맨'!
오줌맨은 슈퍼 영웅이 아니다. 엄청난 괴력이나 초능력을 갖고 있지도 않고, 어마어마한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저 우리 아이들처럼 오줌을 누는 어린 아이다. 때로는 바지에 실수를 하기도 하고 말이다. 다만 정말로 급할 때 오줌으로 수영장을 가득 채울 수도 있고, 오줌을 한 방울도 튀지 않고 소변기에 똑바로 눌 수도 있다. 엄마들이 생각하기에 이건 정말 엄청난 능력이다! 부럽기도 하고 말이다 ㅋㅋ


어느 날 우리의 슈퍼 영웅들이 모두 출동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위험에 빠진 아기 곰을 눈사람 괴물로부터 구하게 되는 오줌맨. 이 작은 영웅이 아기 곰에게는 그 어떤 영웅보다도 위대했을 것이다. 오줌맨은 어마어마하게 큰 눈사람 괴물이 무섭지 않았을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우리집 삼형제가 잠들기 전 침대 아래에 앉아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 주었다. 아홉 살 형아부터 다섯 살 동생까지 모두 머리를 앞으로 내밀며 집중해 듣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아마 아이들은 그저 재미있고, 유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인 나에겐 많은 생각을 주는 그림책이었다.




오줌맨에게는 그 어떤 능력보다 더 멋진 '엄마'가 있었다. 오줌맨을 최고의 영웅으로 만든 엄마의 말 한 마디. 아이의 실수에 화를 내기 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로 위로할 수 있는 멋진 엄마. 우리 아이에게 나는 '그런 엄마'일까?


우리 아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엄마, 오늘 OO이가 나에게 언어폭력을 했어요. 나더러 바보라고 했거든요. 너무 속상했는데 우리 선생님이 말로 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라고 했다. 아이들에겐 친구의 말이 '폭력'이 될 수 있드시 엄마의 화가 섞인 말 한 마디도 평생 상처로 남을 수 있다. 반대로 엄마의 칭찬과 따뜻한 격려 한 마디가 우리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주고, 용감하고 자존감 높은 아이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영웅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를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알고, 자존감 높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란다. 아이의 얼굴에서 늘 행복이 뿜어져 나오는 밝은 아이로 자라나길 바란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사랑스럽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향해 늘 상냥하고 사랑스러운 말만 나가지는 않는다. 말투도 습관이다. 내 아이를 향한 언행에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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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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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_ 편혜영

(268p / 소설 / 한국소설 / 현대문학 / 현대문학 핀 시리즈)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첫 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은 내게는 한국문학의 맛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주로 읽기 편하면서도 그 속에 작가의 의도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일본소설을 읽던 나에게 미스터리, 스릴러 등의 장르소설이 아닌 순수 한국문학은 정말 어둡고 어렵기만 했다. 눈으로 읽어도 마음에 새겨지지 않았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느끼기는 커녕 그냥 겉으로 보여지는 글 그대로를 이해하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작가 '편혜영'의 이 소설은 문장도 어렵지 않으면서 가독성도 좋았고, 여전히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소설을 읽고 머릿속에 내 나름의 생각을 담을 수 있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인시는 조선업의 부흥과 함께 호황을 누렸지만 조선업의 몰락과 함께 도시 역시 말라버린 눈물 자국과 끝없이 내뱉어지는 한숨에 젖은듯한 암울함이 가득하다. 그리고 등장인물 '이석'은 경기가 좋았던 시절에 선도병원에 들어와 고졸임에도 불구하고 관리 부서에서 자리를 잘 잡은 인물이다. 하지만 조선업이 무너지고 골리앗 크레인이 해체되던 때 이석의 인생도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석이 무너지도록 나사를 하나 둘 풀어두었던 것은 무주였다.


갓 채용된 '무주'에게 이석은 가장 의지되는 선배였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일을 했지만 '관행'이라는 말에 과장의 지시대로 업무를 수행하다가 적발되어 모든 것을 혼자 떠안고 이인시로 오게된 무주. 훗날을 기약하는 과장의 말에 그는 모든 비난을 혼자 감내했지만 훗날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소개로 오게 된 선도병원에서 가장 의지하던 선배 이석을 비리를 제 손으로 드러내게 된다. 우정을 배신하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의 아픈 아들에게 병원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많았다.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고, 아들이 아프기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으며 아내가 임신을 하여서 자신의 아이에게 떳떳한 아빠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원칙주의자로 비춰진 그 행동에 대한 이유가 정말 그뿐이었을까? 이전 병원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과장의 지시에 끝까지 순종했던 것에 대한 억울함의 표시는 아니었을까? 혹은 모두 같은데 자신만 파렴치한 인물이 된 것 같아 그에 대한 분노였거나 공적인 업무에 사심을 담지 않고 원칙적으로 처리함으로 인해 지난날과는 달리 누군가에게로 향해야 하는 비난을 대신 감내하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장에 지시에 순응했던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관행이라지만 결국 그 자신의 선택일 뿐이었고, 자신은 '차비'만 받았을 뿐이라고 했지만 그의 아내에게 건낸 선물, 처리하지 못했던 서랍 속의 그것들은 비리의 증거로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송'이 그를 향해 무주라는 이름 대신 불렀던 '양수씨'. 무주는 이전 병원에서 양수씨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선도병원에서 보인 그의 모든 행동들은 과정이나 결과를 떠나 이전 병원에서의 자신의 행동이 떳떳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깔려있었다고 보여진다.


비리와 고발이 모두 담겨 있지만 권선징악의 냄새가 나는 사이다 소설은 아니다. 그 둘의 비리는 분명 잘못된 부분이지만 정작 주머니를 불린 자들은 따로 있었고, 그들이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고 이들로 하여금 비리를 저지르게 만든 그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상위 포식자들만이 살아남는 현실을 캐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 소설에서 '관행'이 자행되고 아랫사람에게 순응만을 강조하는 사회, 소위 잘나간다 싶으면 시기 질투를 서슴치 않는 이 사회 안에도 '양수씨'와 같은 인물도 있고, 그 흐름에 내맡겨졌다가도 어떤 의미에서건 다시 정의를 향해 용기를 내비추는 '무주'라는 인물도 있으며, 자신의 몰락을 예감했음에도 한때 자신을 따랐던 무주에게는 기회를 슬쩍 쥐어주고 돌아선 '이석'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다. 또한 그를 끊임없이 기다리다가 긴 기다림 끝에 서울로 향한 아내에게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모두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든 무주를 보며 답답하기만 했던 마음 한 구석도 조금은 해소가 되었던 것 같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에 이어 매달 25일 이어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의 첫 느낌이 너무 좋았기에 '박형서'님의 5월의 소설도 그 이후의 소설들도 모두 기대가 된다.




"

나는 계속 양수 씨라고 부를 작정이었어요. 언젠가는 왜 그러느냐고 물어볼 줄 알았죠. 그러면 어떤 사람은 부당한 일을 거절하기도 한다고 알려줄 생각이었어요.

"

(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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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선상의 아리스 - S큐브
마사토 마키 지음, 후카히레 그림, 문기업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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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선상의 아리스 - 마사토 마키

(일본소설 / 로맨스 / 380p / 소미미디어)



마사토 마키의 로맨스 '폐선상의 아리스'는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을 소설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실제 완독을 하고 난 뒤의 느낌도 그렇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굉장히 아름다운 장면을 많이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주인공인 유즈리하 로우가 소설의 초반부터 살고 있던 도쿄를 떠나 생부가 살고 있는 '카미코미나토'라는 곳으로 떠나는데 이 곳은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시골 동네다. 항구가 있었지만 화물선이 폐선된 뒤 선로 역시 폐선이 되어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돈을 벌기위해 떠난 것이다. 로우는 개인적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힘든 일을 겪고 더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다. 책으로 둘러쌓인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폐쇄적인 생활을 하다가 도쿄를 떠나 생부가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생부의 메시지뿐. 소설이 끝날때까지 메모와 음성으로만 출현하는 '카사이 토지'. 하지만 나름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그렇게라도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로우는 비록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 곳에서 폐선 위를 걷고 있던 한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아리스' 그것은 그녀의 이름. '아리스', '아리사'. 나나미의 말처럼 그녀의 정체는 과연 유령인 것일까? 유령 이야기라고 해서 뭔가 되게 소름끼치거나 서늘할 것 같지만 장르가 로맨스임을 기억하자. 로우는 유령이든 아니든 아리스를 만나서 그를 가두어 두었던 벽을 허물게 된다. 답답하고 갑갑했던 그에게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산소같은 존재가 바로 아리스였다. 그런데 아리스는 그가 그녀의 정체를 알려고 들지 않길 바란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 카사이씨의 서재에서 두 장의 사진을 발견하게 되고... 그와 그녀 사이에는 역시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먼저 네이버 책 장르로는 '라이트 노벨'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장르가 뭔지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소설만 보자면 로맨스로 봐도 무방할 스토리 같은데 유령 이야기가 등장해서 그런 것일까? 아무튼 가독성 좋고, 산만한 내용 하나 없이 한 길만 따라 제대로 흘러가는 소설이다. 마지막까지 한 호흡에 달릴 수 있고, 무언가 마무리가 명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것은 카사이씨의 입장에서나 그렇지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다고 메시지를 남긴 로우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감정이 명확했으니까 제대로 마무리가 되었다고 봐야겠다.


사실 나는 그와 그녀의 스토리 보다도 날씨에 따른 배경이나 그들이 내려다 본 풍경들... 처음 로우가 카미코미나토에 도착했을 때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모든 장면들이 너무 시원하고 아름답게 연상되면서 그 분위기에 빠졌던 것 같다. 꼭 애니메이션으로 만날 수 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일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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