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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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_ 편혜영

(268p / 소설 / 한국소설 / 현대문학 / 현대문학 핀 시리즈)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첫 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은 내게는 한국문학의 맛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주로 읽기 편하면서도 그 속에 작가의 의도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일본소설을 읽던 나에게 미스터리, 스릴러 등의 장르소설이 아닌 순수 한국문학은 정말 어둡고 어렵기만 했다. 눈으로 읽어도 마음에 새겨지지 않았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느끼기는 커녕 그냥 겉으로 보여지는 글 그대로를 이해하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작가 '편혜영'의 이 소설은 문장도 어렵지 않으면서 가독성도 좋았고, 여전히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소설을 읽고 머릿속에 내 나름의 생각을 담을 수 있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인시는 조선업의 부흥과 함께 호황을 누렸지만 조선업의 몰락과 함께 도시 역시 말라버린 눈물 자국과 끝없이 내뱉어지는 한숨에 젖은듯한 암울함이 가득하다. 그리고 등장인물 '이석'은 경기가 좋았던 시절에 선도병원에 들어와 고졸임에도 불구하고 관리 부서에서 자리를 잘 잡은 인물이다. 하지만 조선업이 무너지고 골리앗 크레인이 해체되던 때 이석의 인생도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석이 무너지도록 나사를 하나 둘 풀어두었던 것은 무주였다.


갓 채용된 '무주'에게 이석은 가장 의지되는 선배였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일을 했지만 '관행'이라는 말에 과장의 지시대로 업무를 수행하다가 적발되어 모든 것을 혼자 떠안고 이인시로 오게된 무주. 훗날을 기약하는 과장의 말에 그는 모든 비난을 혼자 감내했지만 훗날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소개로 오게 된 선도병원에서 가장 의지하던 선배 이석을 비리를 제 손으로 드러내게 된다. 우정을 배신하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의 아픈 아들에게 병원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많았다.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고, 아들이 아프기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으며 아내가 임신을 하여서 자신의 아이에게 떳떳한 아빠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원칙주의자로 비춰진 그 행동에 대한 이유가 정말 그뿐이었을까? 이전 병원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과장의 지시에 끝까지 순종했던 것에 대한 억울함의 표시는 아니었을까? 혹은 모두 같은데 자신만 파렴치한 인물이 된 것 같아 그에 대한 분노였거나 공적인 업무에 사심을 담지 않고 원칙적으로 처리함으로 인해 지난날과는 달리 누군가에게로 향해야 하는 비난을 대신 감내하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장에 지시에 순응했던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관행이라지만 결국 그 자신의 선택일 뿐이었고, 자신은 '차비'만 받았을 뿐이라고 했지만 그의 아내에게 건낸 선물, 처리하지 못했던 서랍 속의 그것들은 비리의 증거로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송'이 그를 향해 무주라는 이름 대신 불렀던 '양수씨'. 무주는 이전 병원에서 양수씨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선도병원에서 보인 그의 모든 행동들은 과정이나 결과를 떠나 이전 병원에서의 자신의 행동이 떳떳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깔려있었다고 보여진다.


비리와 고발이 모두 담겨 있지만 권선징악의 냄새가 나는 사이다 소설은 아니다. 그 둘의 비리는 분명 잘못된 부분이지만 정작 주머니를 불린 자들은 따로 있었고, 그들이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고 이들로 하여금 비리를 저지르게 만든 그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상위 포식자들만이 살아남는 현실을 캐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 소설에서 '관행'이 자행되고 아랫사람에게 순응만을 강조하는 사회, 소위 잘나간다 싶으면 시기 질투를 서슴치 않는 이 사회 안에도 '양수씨'와 같은 인물도 있고, 그 흐름에 내맡겨졌다가도 어떤 의미에서건 다시 정의를 향해 용기를 내비추는 '무주'라는 인물도 있으며, 자신의 몰락을 예감했음에도 한때 자신을 따랐던 무주에게는 기회를 슬쩍 쥐어주고 돌아선 '이석'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다. 또한 그를 끊임없이 기다리다가 긴 기다림 끝에 서울로 향한 아내에게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모두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든 무주를 보며 답답하기만 했던 마음 한 구석도 조금은 해소가 되었던 것 같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에 이어 매달 25일 이어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의 첫 느낌이 너무 좋았기에 '박형서'님의 5월의 소설도 그 이후의 소설들도 모두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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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양수 씨라고 부를 작정이었어요. 언젠가는 왜 그러느냐고 물어볼 줄 알았죠. 그러면 어떤 사람은 부당한 일을 거절하기도 한다고 알려줄 생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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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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