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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평점 :

마당이 있는 집 - 김진영
(338p / 한국소설 / 미스터리 / 스릴러 / 엘릭시르 / 문학동네)
마당이 있는 집... 구 년 전 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쭉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던 나는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괜히 부러웠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방마다 테라스도 있고... 자기만의 완벽한 공간이 갖춰진 곳이라는 생각에 아파트에서의 삶을 동경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마당이 있는 예쁜 집이 '완벽한 꿈의 공간'으로 등장한다. 다만 지독한 악취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두 여자가 등장한다. 외관부터 인테리어까지 완벽한 단독주택에서 부유한 소아과 의사 남편의 비호를 받으며 행복한 앞날만을 그리는 여자 주란. 제약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맞벌이를 하면서도 남편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전셋값을 걱정하며 사는 여자 상은. 두 여자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 서로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남편이 저수지에 빠져 죽은 상은과 이사간 예쁜 집 마당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 주란은 어느 순간 깊이 얽히게 된다.
주란은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이룬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자격지심과 낮은 자존감 덕분에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준 남편에게서까지 그러한 느낌을 받게 되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남편이 나를 버릴까봐 불안하기도 하고, 남편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남편에 대한 신뢰마저 사라진다. 증오와 닮은 어떤 감정을 품게 되는 것 같다. 상은은 자신을 약자이자 패배자로 만들어 자신의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남편에게서 도망치고 싶다. 이혼을 제안했던 그 날 성폭행과 다름 없는 관계를 갖고 임신을 하게 된다. 자식을 무척 원했던 남편은 아이가 생기자 절대 이혼을 하려 하지 않고, 아내를 향했던 폭력 또한 멈췄다. 그러나 상은을 깎아내리는 언행은 여전했다.
상은의 남편 김윤범, 주란의 남편 박재호가 얽힌 분홍색 휴대폰의 주인인 수민의 행방. 그 행방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두 여자의 행보에는 반전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상은은 결단력도 있고,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줄도 알지만 완벽한 집과 부유함, 거기다 예쁜 외모까지 갖춘 주란 앞에서 자신이 초라해 지는 것 같다. 반면 주란은 자신이 갖게 된 이 행복에 만족하며 고상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삶을 누리려는데 빈궁해 보이는 상은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결국에 서로가 갖고 있는 어떤 면을 탐하거나 이용하게 되는데...
애초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그 이후에도 바로잡지 못한 것들이 계속된 죽음을 불러 일으켰다. 끊임없는 의심과 죄를 덮어버리기 위한 꼼수들이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예쁜 꽃조차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예쁘게 보이기도 하고 소름 끼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바라 본 것이다. 든든한 울타리였던 남편이 어느새 성범죄자,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 자신과 아들을 구해야만 하는 주란. 과연 주란이 믿는 현실은 진실일까?
참으로 답답하다. 남편도, 주란도 매우 답답하다. 시원시원한 행보를 보인 상은도 안쓰러운 부분은 있지만 그 뿐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왜 그리 잘 읽힌 것일까? 정말 군더더기 없는 매끄러움을 갖춘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작은 의심 한 조각만으로 온 세상이 일그러지게 보이는... 그래서 타인을 자신의 생각대로 함부로 판단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이 우리 사회와 많이 닮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건 자체에 공감이 가는 것보다는 그들의 심리 상태에 묘한 공감을 느끼게 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