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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명화 이야기
니시오카 후미히코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3월
평점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흔히 명화를 다루는 책들이 화가의 천재성이나 예술적인 붓 터치, 색채의 아름다움이나 화가의 개인사와 인간 관계 등을 다루는데, 이 책은 그림 뒤의 자본주의, 돈, 권력, 그리고 욕망이 엮혀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총 8가지의 에피소드를 통해, 명화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경제적 맥락과 철저히 맞물려 탄생한 기획의 산물이였던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미술사에 끼친 영향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성당을 장식하던 화려한 성화와 조각들이 ‘우상 숭배’로 몰려 파괴되었다. 그에 따라 화가들은 최대의 후원자였던 교회를 떠나야하고 생계의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위기는 역설적이게도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열게 된다.
교회와 왕실 대신 화가들은 새로운 소비층인 시민 계급을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웅장한 신화나 성경 이야기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풍경, 정물 등 거실에 걸어둘 수 있는 친숙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주문을 받아 그리는 대신, 먼저 그려놓고 시장에 내다 파는 ‘기성품 전시 판매’ 방식이 등장했다.
메디치 가문의 예술 후원 이면에는 고리대금으로 쌓은 죄악을 씻어내려는 종교적 속죄와 권력 과시의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나폴레옹은 회화의 ‘프레젠테이션 기능’을 영리하게 활용한 권력자였다. 그는 자신의 영웅적인 모습을 화폭에 담아 대중을 선동하는 강력한 정치적 홍보 매체로 활용했다.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렘브란트는 대형 공방을 운영하며 제자들에게 자신의 화풍을 복제하게 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철저한 사업가였다.
인상주의 미술의 성공 비결은 예술성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들은 초기만 해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이 작품들을 ‘명품’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탁월한 화상이자 마케터였던 폴 뒤랑뤼엘이었다.
그는 인상주의 그림에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금테 액자’를 씌우고, 당대 유행하던 곡선형의 카브리올 레그 가구와 함께 배치해 전시했다. 화려한 포장과 배치 덕분에 단숨에 귀족적인 예술품으로 둔갑한 것이다. 포장과 마케팅의 힘을 여기에서 극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미술사 뿐 아니라 경제사이자 정치사, 인간 심리까지 살펴볼 수 있다.
앞으로 미술관에 걸린 명화들을 볼 때 그림에 대한 감상 뿐 아니라 이 그림 뒤의 숨겨진 욕망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