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
박소정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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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상의원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왕실의 옷을 지어온 상의원의 어침장을 소제로 한 영화인데요,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라는 책은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를 소제로 한 책입니다. 향장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니 이런 글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궁중의 내의원(內醫院)과 상의원(尙衣院)에는 각기 네 명과 두 명의 향장이 있었다고 한다. 내의원은 의학을 다루는 부서이며 상의원은 의복을 관장하는 부서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향을 다루는 전문가인 향장이 있었을까. 그런 의문의 해답은 남아 있는 역사의 기록으로 대충 추측해 볼 수 있다. 내의원에서 다루는 약재의 태반은 향재 이다. 그래서 향 전문가가 필요했을 터이고 궁중에서 제 사 때나 의식에서 사용하는 향의 제조를 위해서도 향장은 필수 요원이었을 것이다. 또한 상의원의 의복제조에서도 조상의 지혜는 놀라웠다. 옷에 향기를 스며들게 하고 줄향이나 노리개에 향을 넣기도 했는데, 상궁이 찬 줄향은 멋뿐만 아니라 치료에 쓰이는 상비약으로서의 역할까 지 겸했다. 이렇게 향 자체가 문화였고 생활이었던 것은 조선 말기에 접어들면서 궁중제례의 소멸과 일제의 침략으로 우리의 향 역사는 더 이상 맥을 잇지 못하였다."

 

기록에 조향사라는 명칭이 정확히 적혀있지 않지만 향기를 담당한 신하가 있었다는 얘기죠. 책의 배경은 조선 효종 시대입니다. 고아로 태어났지만 최고의 향장을 꿈꾸는 수연이라는 인물이 운명을 개척해가는 과정에 봉림대군과 어려서부터 함께 한 오라버니 단의 사랑이 어울린 감각적인 소설입니다. 매년 교보문고에서 진행하는 퍼플로맨스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구요.

 

역사적 배경을 다룬 팩션이자 한 여인의 성장이야기입니다. 책 속에는 봉림대군과 송시열도 등장하고 청나라에 침략(병자호란)당한 후 볼모로 잡혀간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수연은 조선의 조향사가 되고 왕의 총애를 받는 여성으로 성장합니다.

 

사람의 오각 중 후각은 가장 예민하고 민감하다고 합니다. 아울러 향을 통해 기억력 회복을 돕고 정서적 심리치료에도 활용하며 치매예방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도 합니다. 그만큼 향이 가지고 있는 섬세함과 은은함이 가진 힘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의 문체 또한 섬세하고 은은합니다. 그리고 수연이 여러 가지 재료를 조합해 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신비롭습니다. 그런 부분이 일부분 개연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잘 감싸줍니다. 은은한 향기로요. 그래서 같은 향을 소제로 했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을 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을 줍니다.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부터 라임을 맞춘듯 한 시적인 느낌, 그리고 향기를 묘사하는 부분이 훨씬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책을 펼쳐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 작은 잔 하나에 술이 담기고, 한이 담기고, 어미가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도 눈송이가 되어 담겼다. (62p)

 

- “, 그럼 네가 좋아하는 기현 오라버니가 무엇을 닮았는지 찬찬히 생각해 봐.”

과일은 잘 모르겠다. 오라버니는 달지 않은걸. 그래도 꼽아보자면 과일 중에 제일 향긋한 과일! 그런데 그런 과일은 뭐가 있어? 바다보다는 산이 어울려. 청색보다는 옥색이 오라버니 얼굴을 더 환하게 해주고 그리고 조선에 있을 때 엄마가 해주신 톡 쏘는 자줏빛 갓김치 맛이 날 것 같아.” (133p)


- 백분갑을 여니 분꽃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수연은 눈을 감고 백분을 고루 두드렸다. 복숭앗빛 뺨이 하얀 백분에 덮였다. 입술에는 홍화꽃으로 만들어둔 붉은 연지를 펴 발랐다. 숯을 갈아 넣은 먹을 찍어 단정한 눈썹을 그린 수연은 화롯가의 불쏘시개를 달구어 속눈썹을 올렸다. 풍성한 속눈썹 아래 샘물처럼 맑은 눈동자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수연은 마지막으로 석류 향유와 녹차 향유를 찍어 발랐다. 그녀의 몸 전체에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지 않은 곳이 없었다. (153p)

 

- 동이 트고 있었다. 하루 중 가장 깨끗한 푸른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쉬면 그 쪽빛에 어울리는 향을 맡을 것도 같았다. 수연은 가슴 가득히 숨을 채웠다. 고단한 하루였다. 석류향과 녹차향이 맑고 부드럽게 섞이어 그녀를 위로했다. 이것이 저 쪽빛을 닮은 향이 될 수 있을까. 눈을 떠보니 신기하게도 바다 빛 하늘 가운데 홍실을 풀어둔 것처럼 해무리가 비쳐왔다. (156p)

 

- 쌉싸름하면서도 상큼한 금귤과 넝쿨 내음 물씬 풍기는 우아한 붉은 포도는 향기의 첫 인상. 가장 먼저 휘발되는 향이기에 수연은 하늘에 속하는 단계라 이름 붙였다.

  다음, 사람에 속하는 치자꽃과 측백나무. 이 단계를 고르기가 제일 어려웠다. 향수의 기둥이자 중심이 되어줄 향유를 선택해야만 했다. 작약으로 할까, 수수꽃다리로 할까, 그도 아니면 소나무가 좋을까. 여러 후보를 생각해봐도 흡족하지 않았다. 결국 수연은 항복하듯 치자꽃과 측백나무를 택했다. 그것이 단과 대군의 향기였으니까. 외면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눈에 밝히는 사람. 혹은 사랑들. (175~176p)

 

세계 최초의 알코올 향수는 1370년에 개발된 헝가리워터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조선에 술을 증류하여 얻은 주정으로 알코올 향수를 만든 여성 장인이 있었다면?’이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 아이디어에 사랑을 더해서 한권의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햇살 좋은 날 향기 좋은 꽃 주변에서 읽는다면 그 여운이 더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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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오브 스페인 101 - 스페인 최고의 지식가이드 이재환의 여행 토크. 꿈꾸듯 느리고 키스하듯 강렬한 스페인 여행 테라 베스트 시리즈
이재환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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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문 모 여행사의 스페인 지점장이 쓴 이 책은 스페인을 알차게 여행하기 위한 정보를 예술, 역사, 문화, 음식, 축제, 자연이라는 키워드로 해 101가지 꼭지로 요약해 소개합니다.


관광수입이 세계 Top3에 들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나라인 스페인을 101가지로 요약하는 게 오히려 쉽지 않았을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이 책은 가이드북과 여행에세이를 잘 절충한 느낌을 줍니다. 이 말은 곧 스페인여행을 준비하는 분께는 100% 가이드북 형식의 책도 필요할 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만, 요즘엔 인터넷이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도 교통정보 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부족하지 않은 기본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흔히 여행에세이에서 볼 수 있는 지나치게 주관적인 감상이나 미사여구 대신 역사나 문화, 유래 등에 대한 알짜배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유명 관광지라 해도 그 배경지식을 알고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겠죠. 이 책에 수록된 내용만 참고하셔도 여행에서 받는 느낌이 많이 달라질거라 생각됩니다.


책구성은 바르셀로나 근교, 마드리드 근교, 그라나다 & 안달루시아, 이렇게 지역별로 나뉘어 있으니 코스를 짜는 분께 좋은 참고가 될 겁니다.


책을 읽다보니 예전 스페인 여행 중에 무심코 지나쳤던 곳 중 지나쳤으면 안됐을 곳을 발견하기도 했고, 예전에 여행하며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보며 추억에 젖기도 했습니다. 제가 나름 스페인 명소를 참 많이 돌아다녔다는 생각도 약간 들더군요.



스페인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께는 자신이 보고 맛보고 즐긴 것과 책이 꼽은 101가지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테고, 다음 여행을 상상해보는 시간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을 계획중인 분께는 당연히 계획 짜는데 도움이 될테구요.


발렌시아가 빠진 점이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긴 하지만, 스페인과 관련된 책 중<스페인 이미지와 기억/지만지>와 더불어 상당히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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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비도프氏
최우근 지음 / 북극곰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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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daum)'에서는 <새로운 작가의 발견>,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보석같은 작가들>이라는 취지로 앞으로 주목하고, 꼭 기억해야 할 개성 넘치고 위트 있는 작가의 글을 소개하는 사이트 <7인의 작가전>을 운영중입니다. 201411월부터 7인의 작가전에 초대된 7명의 작가와 소설 중에는 요 네스뵈의 <데빌스 스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이트에서 책의 일정 분량을 보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매하셔야 하지만요.


작가인 최우근은 <경찰청 사람들>로 방송작가 활동을 시작하여,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록 달리다> <복서> <파랑새는 있다> <형사수첩>, 드라마 <강력반> 등을 집필하며 20여 년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했다고 하니 사실 많은 분들이 방송으로는 이미 최우근 작가의 글을 접해온 셈입니다.


투명인간을 소재로 한 독특한 소설입니다. 이 세상에는 투명인간이 살고 있고, 투명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설정입니다. 투명인간은 1897년에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투명인간, The invisible man)이 나온 이래 영화 소제로도 많이 쓰였고, 많은 분들이 어릴 적 한번쯤은 투명인간이 되면 좋겠다는 상상도 해보셨을 겁니다.


스포일러가 안 될 선에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투명인간이 되고 모든 생활이 혼란에 휩싸입니다. 여자 친구도 떠나고, 함께 살던 부모님도 결국 지방으로 내려가 버립니다. 그러던 중 주인공에게 의문의 엽서가 도착합니다.


보내는 사람: 불가리 익스트림 옴므

받는 사람: 다비도프 쿨워터맨

다비도프 쿨워터맨씨, 귀하를 우리들의 모임에 초대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주인공 외에도 투명인간은 존재하고 있었고, 다른 투명인간에게 투명인간 모임에 초대받게 됩니다. 향수가 등장하는 건 투명인간끼리도 서로 볼 수 없으니 향기로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투명인간 각자에게 하나의 향수가 지정되지요.


이와 함께 옆집 여자 안나, 조화백, 최형사 등 주인공 주변인물과 펼쳐지는 이야기가 흡입력 있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방송작가 경력 때문인지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내용이 머릿속에 영상으로 그려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SF 요소도 있고, 코미디 요소도 있고, 중간 중간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도 있습니다.



소설은 독자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죠. 이 책도 단순히 투명인간이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읽어도 좋고, 투명인간에 여러 의미를 부여해도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투명인간이 겪는 불투명인간들의 차별에 대해 소수자 문제를 생각해 볼 수도 있고, 후반부에 다시 불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깨우치는 부분(이것도 스포일러인가요...)에서는 윤리적인 문제를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까칠한 캐릭터긴 하지만 옆집 여자의 말 동등한 게 뭔지나 알고 하는 소리예요? 동등이라는 거는요, 내가 어디 있는지 그쪽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쪽이 어디 있는지 내가 아는 거, 그게 바로 동등한 거예요. 아니 동등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그거죠. 동등이요? 내가 그쪽이랑 어떻게 동등할 수가 있겠어요? 도대체 이 인간이 지금 어디 있나,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나, 늘 전전긍긍하면서 이렇게 최소한의 자구책에나 매달리는 처진데 말이에요.(92p)”도 묘하게 생각할 여지를 준 문장입니다.


부모님도 투명인간이 된 주인공을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결국엔 거실에 안방에 온 집안에 화장실에까지 CCTV를 달고 사는 기분이야. 뭐 특별히 숨길거야 없지만, 그래도 사람이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는데...”라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주인공이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나도 아무도 주인공의 뒷담화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게, standardnormal이 아니라는 게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투명인간을 말 그대로의 투명인간이 아니라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는 의미의 투명인간으로 보는 순간 또 다른 해석의 여지도 있을 겁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날카로운 풍자도 곳곳에 등장합니다.



- 분노의 단계가 시작됐을 땐 하필 선거철이었다... 어깨띠들에 아버지가 끼어 있다는 것에 화가 났고, 그날 저녁반찬으로 한우 불고기가 오른 것에 화가 났고, 그게 너무 맛있어서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는 것에 화가 났다. 우리 아파트 담벼락을 어지럽히는 선거 포스터에 화가 났고, 거기 적힌 후보자들의 좋은 일이란 좋은 일은 안 해본 거 없다는 식의 가짜 약력에 화가 났고, 조작된 약력을 부러워하는 내게 더 화가 났고, 특히나 별로 잘나지도 않은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뽑아준 인쇄소에 화가 났고, 뻔뻔하게 그걸 갖다 붙인 후보자들에 화가 났고, 셀카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는 내 현실에 무지무지 화가 났다. (35p)


- 입사지원서에 왜 굳이 사진을 붙이라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합격을 하면 매일 보게 될 얼굴이고, 떨어지면 평생 안 볼 얼굴이 아닌가? 언젠가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날 낮술을 먹고 한 회사 인사담당자에게 전화로 항의했다. 인사담당자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입사지원서 양식에 사진 붙이난 난이 인쇄돼 있어서요.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50p)


- 나는 통화거절 버튼을 누르고는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자료들을 모든 언론사에 보냈다. 물론 사장 이름으로. 예상과 달리 기사로 다룬 언론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58p)


- 나는 여태 진실은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진실은 하나가 아니었다. 어쩌면 인구 수 만큼의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또 하나를 알게 됐다. 힘 있는 자의 진실은ㆍㆍㆍ힘이 더 세다. (178p)


- 몇몇 목격자들이 포털 게시판에 거세게 항의했지만, 그 글들은 게시되는 즉시 블라인드 처리 되었다. 그리고 경찰에서 기획한 대규모 연예인 마약 사건이 터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모두 그리로 몰려갔다. (265p)


이 정도면 독서토론도 가능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어디까지나 해석하기 나름이니까요.


작가는 대학시절 연극을 하기도 했다는데 도입부 연극 관련된 내용은 작가의 경험담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가의 희곡집 <이웃집 발명가><옆집 발명가>로 패러디해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깨알 같은 재미도 있구요. 원작소설(스티븐 굴드 저)은 안 읽어봤지만 영화 <점퍼 Jumper>가 약간 연상되는 부분도 있었는데요, 여러 가지 맛이 담긴 음식처럼 다양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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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탄생 - 유럽의 살롱과 클럽과 카페 그 자유로운 풍경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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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마자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스오리엔트의 학자 50여명이 등장하는 이 그림에서 손으로 하늘 위 이데아 세계를 가리키는 플라톤과 현실의 세계인 땅을 가리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담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왼편에선 소크라테스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커피의 역사를 다룬 책들을 통해 카페가 토론과 여론 형성의 장이 되었고, 이 때문에 터키의 술탄 무라드 4, 영국의 국왕 찰스 2, 독일의 프리드리히 대제 등이 커피 금지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책은 유럽의 살롱과 클럽과 카페에서 담론 문화가 형성된 과정을 자세히 다룬 책으로, 유럽과 다른 문명권을 구별 짓는 담론의 문화가 '아테네 학당'에도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1<살롱과 클럽, 절도 있는 미학>에서는 프랑스,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의 살롱과 클럽의 역사를 소개하며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핍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영국에서는 살롱 대신 클럽이 모임의 장이 되지만, 명칭과 무관하게 사람을 모이게 하고 의견을 나누며 담론을 펼치게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국가별로 지닌 국민성이 다르듯 네 나라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오묘한 차이가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크게 보면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와 영국이 갈리는 느낌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여성들의 활약 여부인데요, 프랑스에서는 우아하고 교양 있는 귀부인이 살롱과 살롱 문화의 주인이었고, '파리의 여제'로 불린 조프랭 부인의 살롱은 18세기 지식인과 교양인의 사교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독일도 안나 아말리아 공비, 샤를로테 왕비, 크레옌 부인 등의 살롱과 함께 베를린 최초의 살롱을 만든 유대인 여성 헤르츠 부인, 또다른 베를린 대표 살롱을 만든 라헬 부인이 눈에 띕니다. 놀라운 점은 당시에도 유대인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학대받았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롱 문화를 주도했으며 문인학자가 언제나 성황을 이뤘다는 점입니다.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레리나 출신인 비젠탈 부인의 살롱은 히틀러 치하에서도 반독일적 모임을 지속했으며, 박해받는 사람들의 피난처이자 반나치활동가들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반면, 전통적으로 많은 여왕이 역사에 등장하는 영국은 여성의 커피하우스 출입이 금지되었을 뿐 아니라 영국 신사들의 전용 커피하우스인 클럽이 번성합니다. 자유로운 담론이 오가긴 했지만 클럽은 출신과 신분은 물론 종파나 정치적 일체감이 요구된 모임이었고, 이는 프랑스로 대표되는 궁정중심의 귀부인 문화와는 다른 영국 귀족의 상황과 맞물립니다. 영국의 클럽은 회원제로 운영되며 지켜야 할 규칙도 있었다고 하니, 가상의 인물이긴 하지만 셜록의 형인 마이크로프트는 이런 문화를 바탕으로 침묵이 규칙인 '디오게네스 클럽'이란 곳을 직접 창립하기에 이른게 아닌가 싶다는 엉뚱한 생각도 듭니다. 영국의 실제 클럽과 달리 그곳엔 담론이 존재하지 않았겠지만요.

 

저자는 "살롱과 살롱 문화는 국민적 심성, 멘털리티 그리고 문화전통에 따라 저마다 특유한 색채를 짙게 풍겼다(145p)"고 말합니다. 그리고 "살롱이나 클럽이라고 해도 나라와 도시, 시대에 따라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공통점은 살롱과 클럽이 배출한 프랑스의 오네톰, 영국의 젠틀맨에서 볼 수 있듯이 사교와 지성이 조화를 이루어 정파나 당파를 구성하더라도 슬로건을 내세운 이데올로기적 논리로부터 자유로웠다는 사실이다(116p)"라고 강조합니다.

 

안타깝게도 이와는 비교되는 우리나라 선비 사대부의 문화도 짧게나마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의 사랑방도 담론을 즐기는 장소였지만 여인 금지구역이었고, 그 담론이라는 것도 문벌과 학통, 정파가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이었음을 아쉬워합니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이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분명 최고의 살롱을 운영하는 귀부인이 됐을거라는 의견과 함께요.

 


저자는 반듯한 사회, 좋은 사회란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이며, 우리 모두의 바람직한 공동체, 진정한 이야기문화담론문화의 형성을 주제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의 담론문화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빠지지 않는데요, 깊이 생각해 볼 부분인 만큼 조금 길지만 전체를 옮겨 보겠습니다.

 

"국가의 품격을 지킨다는 것은 사회가 개인의 경우와 다름없이 서로 이웃에게 귀 기울이며 반듯한 말씨와 예절을 두루 갖추는 것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땅의 현실은 어떠한가. 비속어가 난무하고 절제를 잃은 표현이 판을 치며 대화와 담론을 거부하는 사회가 아닌가. 시대착오적 국가주의자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압박하고, 이데올로기적 슬로건이 그림자를 드리운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반듯한 담론문화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117p)

 


이어지는 2<카페, 도시 속의 열린 살롱>에서는 저자기 직접 방문한 도시들의 차, 커피, 카페에 얽힌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유럽 카페의 원형이 된 이스탄불의 카페부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인 '카페 플로리안'이 있는 베네치아 그리고 런던, 파리, 베를린, 빈까지 카페가 시대와 삶에 끼친 영향이 상당합니다.

 

차에 대한 이야기 중에는 차 상인이 많은 이윤을 내고자 최단 시간에 차를 많이 싣고 오는 선박을 물색하는 데 성패를 걸었고, 이 때문에 쾌속선에 의한 티 레이스가 펼쳐진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배들의 이름도 '번개', '파도의 물보라' 등이었다고 하는데, 마치 오늘날 DHLFedEx 간 경쟁을 보는 느낌입니다.

 

저는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이 등장하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말씀 드린대로 카페 플로리안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다보니 나름 커피애호가인 저는 베네치아에 갔을 때 카페 플로리안에 들렀습니다. 카페 플로리안이 많은 명사들의 단골 카페임은 알고 있었지만 혁명을 지지하는 국내외 지식인의 집합소 역할을 했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요, 관광객과 현지 손님들의 복장 외에는 시간이 멈춘 느낌을 준 카페 플로리안의 추억이 더욱 특별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역시 나라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담론이라는 주제는 모든 나라에서 동일했습니다. 이스탄불에서는 서민이 이용하는 카페와 고급카페가 나뉘긴 했지만 전 계층이 카페를 즐기며 담론을 나눴습니다.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차차 여성들에게도 개방되고, 민중의 열린 배움터이자 정보센터로, 근대 저널리즘 탄생의 요람으로 발전합니다. 계몽의 세기를 상징하는 파리 최초의 카페 프로코프에서는 신분과 종파, 이데올로기와 직업을 가리지 않고 담론을 즐기고 혁명의 중심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놀라운 점은 과거 담론을 주도했던 카페들이 아직까지도 운영되며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카페 플로리안에 갔던 것처럼 관광명소의 역할도 하고 있지만, 그곳에 심어져 있는 담론 문화 또한 세대를 넘어 전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부 내용은 전에 읽은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한길사><커피의 역사/우물이 있는 집>, <커피와 차/현암사>의 내용과 씨실날실로 엮이거나 보충해주는 부분이 있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더해 <차의 세계사/열린세상>이나 이 책의 저자인 이광주교수가 쓴 <동과 서의 차 이야기/한길사>도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해서 읽을 책 리스트에 올려놨습니다. 자꾸 리스트만 길어지고 있는 게 문제지만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카페는 어떠했는지 궁금한 분은 <다방과 카페, 모던 보이의 아지트/살림>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살림지식총서답게 두껍지 않지만 일제강점기 다방과 카페의 초기 모습을 접할 수 있습니다.

 

담론[談論]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논의한다는 뜻입니다. '주고 받으며'가 참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이야기 속에는 경청도 들어있고, 다양성도 들어있고, 상호존중도 들어있고, 새로운 방향의 합의나 발전 등 많은 게 담겨 있겠죠.

 


책을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살롱과 클럽, 그리고 카페가 사람들이 모이는 하드웨어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라는 생각. 자율성 개방성 다양성이라는 사회 문화 배경과 자유로운 담론 문화가 그것이겠죠. 우리나라도 하드웨어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소프트웨어가 문제인데요, 버그 없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이 있는 분이라면 책을 펼쳐서 저자가 전달하려고 하는 바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밑줄 그은 문장이 있는데, 전해드리며 마무리 하겠습니다.

 

"참된 문화, 반듯한 사회란 모든 계층이 일상적인 삶을 누리면서도 그에 더해 교양을 갖추기를 바라며 그 실현을 위해 정치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문화와 사회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전제로 각 분야의 상층 인사에게 기대되는 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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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십대를 위한 고전 콘서트 고전 콘서트 시리즈 2
김경집 외 지음 / 꿈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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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인기는 여전하고 고전읽기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큰 마음먹고 읽긴 하는데 별 재미도 없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고전에서 감동을 받거나 통찰을 끌어내는 분들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광고인 박웅현은 <여덟단어> 중 하나로 고전을 뽑습니다. 고전은 본질을 담고 있기에 시간과 싸워 이겨내고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시인 천양희도 <작가수업>에서 고전을 언급합니다.

"책은 인간이 만든 가장 훌륭한 발명품인 것 같다. 한 권의 책으로부터 한 사람, 나아가 시대와 인간을 읽는 것이다. 책 중에서도 고전(古典)은 책의 에베레스트이다."

 

고전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서울시교육청에서는 2013년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고전 읽기 강연을 개최하는데요, 이 책은 2014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강연을 정리한 책입니다. 참고로 2015년 고전 읽기 강연에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소로의 '월든',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주제로 열린다고 합니다.

 


이 책은 제목만으로 따지면 제게 맞는 책은 아니지만 수록된 책(어린왕자, 총균쇠, 데미안, 국부론, 햄릿, 역사란 무엇인가, 사기)을 십대들에게 어떻게 맞춰 전개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이해하기에 결코 쉬운 책들이 아닌데다 고전에 대한 이해는 저도 많이 부족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도 있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조차 갖지 않은 책도 있으니까요.

 

첫 번째 강연자인 인문학자 김경집은 왕따 문제로 강연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고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인문학자에게 고전은 반드시 옛날책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삶, 그리고 세상 속의 보편적인 문제를 대가의 시선으로 그려낸 책을 말합니다. 발표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해도요.

 

그리고 고전을 지식으로 읽지 말고, 시간과 공간 즉, 역사와 지리를 기반으로 해 대가의 시선으로 읽으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을 하며 고전을 대하라고 합니다. 질문하지 않고 읽기만 하면 줄거리만 기억할 뿐이지만, 질문을 던지다보면 새롭게 해석하게 되고 직접 경험하지 못한 지식도 질문을 만나면 새로운 지식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질문의 힘, 이것이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가르침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책 속 고전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처음으로 만나는 고전은 <어린왕자>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고전 중 가장 많은 독자가 읽었을 거라 예상됩니다. 강연자는 관계에 대해 말합니다. 강연자는 어린왕자의 '어린'을 단순히 나이가 어린 아이가 아닌 내 속에 살아있는 또 다른 나를 의미한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생명체는 넓게 보면 바로 ''의 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들과의 관계가 곧 나와의 관계이자 남과의 관계로 연결되죠.

 

강연자는 이어서 고독이라는 주제로 얘기해 보자고 합니다. 어린 왕자는 많은 만남을 거치지만 결국 혼자 남겨집니다. 그리고 고독을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인해 가며 삶을 바라봅니다. 이게 고독의 가치이며, 청소년들도 고독의 가치를 깨우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고전읽기 또한 중요한 일이겠죠. 강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독서는 혼자 하며 느끼는 일이고, 성찰도 이와 같으며, 그것이 고독의 값이며 나를 키우는 힘입니다."

 

아울러 강연자는 다른 사람의 해석을 무조건 따라가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소설가 김탁환은 <읽어가겠다>에서 생텍쥐페리의 다른 책들을 두루 읽고 나니, <어린 왕자>가 새롭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같은 책이라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이어지는 강연은 <, , >입니다. 사실 <, , >는 저도 읽다가 잠시 대기중인 책입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 책을 얘기하는 게 어렵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직장인보다 세계사를 더 잘 알고 있고(직장인의 기억은 많이 소멸됐을 테고), 더 흥미롭게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림 보는 걸 좋아해서 그림과 관련된 책 읽기를 좋아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쉬운 건 제가 그림을 즐기는 방법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조별 작가를 외우고, 이건 누구의 그림인지를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는 무엇을 담고자 했는지, 그 이전에 내가 보기에 이 그림은 어떤 느낌인지가 중요한데 말이죠.

 

마찬가지로 역사는 흐름을 알아야하는 영역이지 숫자를 외울 필요는 없는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연구자에겐 숫자가 필요하지만요. 그런 점에서는 교과서의 압축된 지식과 함께 <, , > 같은 책을 읽으며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독서가 중요한 거죠. 청소년에게 독서할 시간을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구요. 독서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토론과 논술을 중시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데미안>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는 먼저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펼쳐도 좋다고 말합니다. 너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책을 접하면 스스로 생각하며 읽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헤르만 헤세는 독서에 대해 "지적인 독자를 만나는 순간 문학의 신선함과 활기가 피어오른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지적인 독자는 많은 지식이 있는 독자가 아니라 '읽는 글에 대한 경외감', '이해하고 하는 인내', '수용하고 경청하려는 겸손함'을 가진 독자를 말합니다. 이런 원칙을 지키며 읽는 <데미안>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요?

 

강연자는 헤르만 헤세의 삶을 먼저 소개합니다. <데미안>은 헤세의 경험이 많이 투영된 작품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흔히 책날개에 있는 작가소개는 읽지 않고 넘어갑니다. 관심이 없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책에 질문을 던지고 잘 소화하기 위해서 고전이 쓰인 시대배경이나 저자의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을 알고 시작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이해할 때 데미안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아래 문장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는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다음으로 소개되는 책은 <국부론>입니다. 애덤 스미스하면 국부론과 보이지 않는 손이 떠오르죠. 흔히 보이지 않는 손이라 하면 시장경제체계를 대변하는 말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국부론은 '영국이 어떻게 국부를 증대시키고 세계를 재패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과 방법을 논한 책입니다. 아울러 개인의 이익에 포커스를 둔 게 아니라 이타적 이기심에 더 중점을 둔 책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다른 강연과 마찬가지로 <국부론>의 중요 포인트를 짚어나가는데요, <국부론>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도 영향을 미쳤고, 애덤 스미스의 선행 연구가 있었기에 한계혁명과 케인스혁명과 같은 혁명적인 경제이론도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결코 쉽게 이해되는 책은 아니죠. 하지만 매 강연 마지막 페이지에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 엄선되어 있으니 독자의 관심사와 이해를 넓히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다섯번째 강연의 책은 연극으로도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진 <햄릿>입니다. 줄거리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죠. 이 강연을 통해 햄릿이 쓰여진 시대의 극장 시설이 햄릿의 첫대사가 "거기 누구냐?(Who's there?, 상단 이미지 참고)"로 시작되는 이유가 됐다는 점이나 당시 여자가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점 등 재미있는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생각나기도 했구요.

 

흔히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대표되는 인간의 고뇌에만 집중하기 쉬운 작품인데, 강연자를 따라가다 보니 셰익스피어가 심어둔 많은 코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해석의 하나겠지만요.

 


이어서 <역사란 무엇인가><사기>에 대한 강연이 이어집니다. 앞서 소개된 <국부론>과 마찬가지로 보통은 대학생 이상에게 필독도서로 권해지는 책이라 쉽게 이해되는 책은 아니지만, <역사란 무엇인가>는 드라마 정도전(학교와 학원으로 바쁜 청소년들이 드라마를 볼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등 보다 잘려진 소재를 활용해서 설명합니다.

 

130권에 이르는 사마천의 <사기>를 짧은 강연에 담아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죠. 강연자는 사기 속에 담긴 사마천의 정신과 사기가 끼친 영향력을 중심으로 강연을 이어가는데, 강연 중에 인상적인 말이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세계사선생님께서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친구를 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는데, 강연자는 "삼국지를 백 번 읽는 것보다 사기를 한 번 읽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사기>에서 배울 게 많다는 뜻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사기>에 대한 강연은 청소년들이 역사에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고, 대학생이나 사회인이 된 후에도 책을 펼쳐보게 될 시작점이 되겠죠.

 


일곱 명의 강연자들은 책에 필요한 배경지식부터 책 속 핵심적인 부분을 뽑아내 자신들의 해석을 설명하고 청소년들이 고전을 읽을 때 필요한 포인트를 짚어 줍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배경을 설명하는 강연 앞부분을 읽은 후 그 이해를 토대로 고전을 읽고, 이후에 강연자가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며 자신이 소화한 내용에 강연자들의 설명을 융합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책 제목은 <질문하는 십대를 위한 고전 콘서트>지만 십대만을 위한 책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청소년에게만 질문의 힘이 필요한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요. 강연자들이 전달하는 내용을 정답인 양 수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자와는 다른 의문을 갖고 다른 해석을 통해 다른 관점과 다른 해답을 구할 수 있을테니까요. 이것이 강연자가 "고전에 저항하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 많이 놀란 것도 사실입니다. 책에 소개되는 책을 십대에 접하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매 강연 마무리 부분에서 강연자에게 던지는 질문의 내용이 아주 충실하고 정곡을 찌릅니다. 아마 책에 소개된 고전을 읽은 청소년들 중 같은 질문이 생각난 친구들도 많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교육환경이 하루아침에 변할 순 없습니다. 십대들이 고전을 대하는 태도도, 질문하는 힘도 쉽게 발전하진 않겠죠. 그런 점에서 이런 강연이 많이 생겨나고 책이 출간되는 건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특히 자녀가 십대인 분들께는 고전도 읽고 자녀와 책 내용으로 대화도 나누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주는 책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책과 질문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길에 다다르듯 한권의 책을 읽고 연관된 책을 찾아 읽다보면 길에 다다릅니다. 가족이나 친척 중 청소년이 있는 분, 또는 선배가 후배 청소년에게 이 책과 고전 한권을 함께 선물한다면 질문을 통해 답을 찾는 여정도 꼬리에 꼬리를 물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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