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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시 - 한시 학자 6인이 선정한 내 마음에 닿는 한시
장유승 외 지음 / 샘터사 / 2015년 9월
평점 :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간혹 시를 즐겨 읽는 분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닌데 시를 좋아한다는 한마디가 참 특별하게 들립니다. 시 읽기가 주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는 선뜻 읽히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제가 일상에서 접하는 시라고 해봐야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적힌 시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시를 더 가까이 하고자 이번에 과감하게 선택한 책은 시 중에서도 한시(漢詩)에 관한 책입니다. 한시라고 하면 절개, 안빈낙도 등의 단어가 떠오르고 양반층에서 향유한 소위 상류층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런데 책에 실린 101편의 한시를 읽다보면 옛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표지에 “옛사람도 그러해서 시를 읊었다”라는 문장과 뒤표지에 “옛사람도 당신 같은 마음에 이 시를 읊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는데, 책을 읽고 난 제 느낌을 그대로 담은 문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동저자인 장유승이 머리말에서 밝히듯 한시는 어렵습니다. 한자 자체도 어려운데, 시로 쓰인 그 의미를 파악하는 건 당연히 어렵겠죠. 그리고 제가 한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처럼 고리타분하다는 이미지 또한 한시에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한시가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이 낭만만을 담은 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사회의 현실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고 이러한 깨달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를 지닌다고 말합니다.
여섯 명의 한시 학자가 선정한 한시들입니다. 다행히 저처럼 한시에 무지한 독자를 위해서 한 편의 한시에서 두 구절, 또는 네 구절만 뽑아 아주 쉽게 설명해줘서 전혀 지루하지 않게 101편의 한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안다면 잘못 없애야 진정 약이 되니
그저 알기만 한다면 어찌 안다고 하리오
- 윤봉구, <잘못을 알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50세가 되면 지난 49년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 시도 윤봉구가 50세 되던 해에 지은 시라고 합니다. 잘못을 아는 것과 잘못을 고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죠.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이유는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50세가 되려면 그래도 꽤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만, 과연 그때 제 인생을 돌아보기 전까지 잘못을 아는 것 이상으로 고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는 시입니다.

사람들 가마 타는 즐거움만 알고
가마 메는 괴로움 모르고 있네
- 정약용, <가마꾼의 탄식>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 실린 시입니다. 얼마전 TV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소개된 중국 가마꾼이 생각나기도 했는데요, 글자 그대로 가마꾼만을 지칭한 건 아니겠죠. 갑질논란 또한 상대를 살피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기에 발생하는 것이고, 뉴스에 등장하는 갑질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어떤 부분에선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시가 우리에게 주는 효용이 여러 가지겠지만, 이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을 짚어주는 부분이 책 읽는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물론 교훈을 주는 한시만 소개되는 건 아닙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 싶은 한시 한 편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아내는 아이 보기 힘든 줄도 모르고
내가 논다면서 자꾸 아이를 맡기네
- 김립, <늙은이>
이 시를 지은 김립은 방랑 시인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인데요, 조선시대 남성들은 육아에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한시에 이렇게 생활과 밀접한 내용이 등장하는 것도 신선했지만, 육아를 분담하는 요즘 남자 직장인들 간의 대화를 보는 느낌도 들어 살짝 미소가 지어지는 시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는데, 한시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며 한 편 두 편 한시를 읽어 나가니, 한시도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는 참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그 안에서 옛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알아가니 제가 지금껏 한시에 대해 가져왔던 선입견 또한 사라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