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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
박소정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2월
평점 :
얼마 전에 상의원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왕실의 옷을 지어온 상의원의 어침장을 소제로 한 영화인데요,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라는 책은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를 소제로 한 책입니다. 향장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니 이런 글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궁중의 내의원(內醫院)과 상의원(尙衣院)에는 각기 네 명과 두 명의 향장이 있었다고 한다. 내의원은 의학을 다루는 부서이며 상의원은 의복을 관장하는 부서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향을 다루는 전문가인 향장이 있었을까. 그런 의문의 해답은 남아 있는 역사의 기록으로 대충 추측해 볼 수 있다. 내의원에서 다루는 약재의 태반은 향재 이다. 그래서 향 전문가가 필요했을 터이고 궁중에서 제 사 때나 의식에서 사용하는 향의 제조를 위해서도 향장은 필수 요원이었을 것이다. 또한 상의원의 의복제조에서도 조상의 지혜는 놀라웠다. 옷에 향기를 스며들게 하고 줄향이나 노리개에 향을 넣기도 했는데, 상궁이 찬 줄향은 멋뿐만 아니라 치료에 쓰이는 상비약으로서의 역할까 지 겸했다. 이렇게 향 자체가 문화였고 생활이었던 것은 조선 말기에 접어들면서 궁중제례의 소멸과 일제의 침략으로 우리의 향 역사는 더 이상 맥을 잇지 못하였다."
기록에 조향사라는 명칭이 정확히 적혀있지 않지만 향기를 담당한 신하가 있었다는 얘기죠. 책의 배경은 조선 효종 시대입니다. 고아로 태어났지만 최고의 향장을 꿈꾸는 수연이라는 인물이 운명을 개척해가는 과정에 봉림대군과 어려서부터 함께 한 오라버니 단의 사랑이 어울린 감각적인 소설입니다. 매년 교보문고에서 진행하는 퍼플로맨스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구요.
역사적 배경을 다룬 팩션이자 한 여인의 성장이야기입니다. 책 속에는 봉림대군과 송시열도 등장하고 청나라에 침략(병자호란)당한 후 볼모로 잡혀간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수연은 조선의 조향사가 되고 왕의 총애를 받는 여성으로 성장합니다.
사람의 오각 중 후각은 가장 예민하고 민감하다고 합니다. 아울러 향을 통해 기억력 회복을 돕고 정서적 심리치료에도 활용하며 치매예방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도 합니다. 그만큼 향이 가지고 있는 섬세함과 은은함이 가진 힘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의 문체 또한 섬세하고 은은합니다. 그리고 수연이 여러 가지 재료를 조합해 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신비롭습니다. 그런 부분이 일부분 개연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잘 감싸줍니다. 은은한 향기로요. 그래서 같은 향을 소제로 했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을 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을 줍니다.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부터 라임을 맞춘듯 한 시적인 느낌, 그리고 향기를 묘사하는 부분이 훨씬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책을 펼쳐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 작은 잔 하나에 술이 담기고, 한이 담기고, 어미가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도 눈송이가 되어 담겼다. (62p)
- “자, 그럼 네가 좋아하는 기현 오라버니가 무엇을 닮았는지 찬찬히 생각해 봐.”
“과일은 잘 모르겠다. 오라버니는 달지 않은걸. 그래도 꼽아보자면 과일 중에 제일 향긋한 과일! 그런데 그런 과일은 뭐가 있어? 바다보다는 산이 어울려. 청색보다는 옥색이 오라버니 얼굴을 더 환하게 해주고 그리고 조선에 있을 때 엄마가 해주신 톡 쏘는 자줏빛 갓김치 맛이 날 것 같아.” (133p)
- 백분갑을 여니 분꽃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수연은 눈을 감고 백분을 고루 두드렸다. 복숭앗빛 뺨이 하얀 백분에 덮였다. 입술에는 홍화꽃으로 만들어둔 붉은 연지를 펴 발랐다. 숯을 갈아 넣은 먹을 찍어 단정한 눈썹을 그린 수연은 화롯가의 불쏘시개를 달구어 속눈썹을 올렸다. 풍성한 속눈썹 아래 샘물처럼 맑은 눈동자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수연은 마지막으로 석류 향유와 녹차 향유를 찍어 발랐다. 그녀의 몸 전체에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지 않은 곳이 없었다. (153p)
- 동이 트고 있었다. 하루 중 가장 깨끗한 푸른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쉬면 그 쪽빛에 어울리는 향을 맡을 것도 같았다. 수연은 가슴 가득히 숨을 채웠다. 고단한 하루였다. 석류향과 녹차향이 맑고 부드럽게 섞이어 그녀를 위로했다. 이것이 저 쪽빛을 닮은 향이 될 수 있을까. 눈을 떠보니 신기하게도 바다 빛 하늘 가운데 홍실을 풀어둔 것처럼 해무리가 비쳐왔다. (156p)
- 쌉싸름하면서도 상큼한 금귤과 넝쿨 내음 물씬 풍기는 우아한 붉은 포도는 향기의 첫 인상. 가장 먼저 휘발되는 향이기에 수연은 하늘에 속하는 단계라 이름 붙였다.
다음, 사람에 속하는 치자꽃과 측백나무. 이 단계를 고르기가 제일 어려웠다. 향수의 기둥이자 중심이 되어줄 향유를 선택해야만 했다. 작약으로 할까, 수수꽃다리로 할까, 그도 아니면 소나무가 좋을까. 여러 후보를 생각해봐도 흡족하지 않았다. 결국 수연은 항복하듯 치자꽃과 측백나무를 택했다. 그것이 단과 대군의 향기였으니까. 외면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눈에 밝히는 사람. 혹은 사랑들. (175~176p)
세계 최초의 알코올 향수는 1370년에 개발된 ‘헝가리워터’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조선에 술을 증류하여 얻은 주정으로 알코올 향수를 만든 여성 장인이 있었다면?’이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 아이디어에 사랑을 더해서 한권의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햇살 좋은 날 향기 좋은 꽃 주변에서 읽는다면 그 여운이 더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